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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이야기

강개토 2008. 9. 16. 11:17




커피의 성장과정


 


1.발아
눈이 나오면 내과피(퍼치민트)에 쌓여 있는상태로 키가 자라게 된다.

2.이식
묘목은20~50cm 정도로 자라면 넓은 농원으로 이식이 된다. 0.5~3.5cm간격으로 이식이 된 나무는 묘목별로 알맞은 깊이로 이식하게 된다.

3.이식
종자를 심은 후 5개월에서 1년후 우기에 20~50cm정도로 자라는 묘목을 이식한다.

4.개화
순조롭게 자란 나무는2~3년 정도가 지나면 커피꽃을 피우게 된다.

5.결실
개화 후 이내 작은 연두색 열매가 열리며.6~7개월이 지나면 �은색으로 익이 수확이 가능하다.


유럽인들이 커피가 경작되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한 남부 아라비아 반도(현재의 예맨)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커피는 기원전 800년경부터 거래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주장은 이 시기에 예맨과 이디오피아 사이에 실지로 무역이 행해지고 있었다는 것과 커피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시기에는 약물로 복용)을 알고 있던 무역상들이 커피를 매매하려고 시도했을 것이라는 주장, 예맨에서는 야생에서 커피가 자라고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을 볼 때 다소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커피가 남부 아라비아로 전달된 특별한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이디오피아가 525년 남부 아라비아를 침공한 것으로 보아 이때 아라비아에 커피가 처음 전파된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이 많다. 몇몇 역사학자들은 아프리카를 침입했던 노예상들에 의해 기원전 1000년경 아라비아에 전파되었다고도 한다. 이 후 터키로 전달된 커피는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널리 음용되지만 외부로의 유출은 철저히 금지되었다. 십자군 원정에 의해 유럽에 전파된 커피는 처음에는 이교도의 음료라 하여 배척을 받지만 결국에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1616년 네덜란드의 한 상인이 인도의 순례자로부터 원두를 입수해 처음으로 유럽에 도착한 커피는 이 후 네덜란드의 식민지에서 경작되기 시작하였다. 프랑스의 국왕 루이 14세는 암스텔담의 시장으로부터 어린 커피 나무를 하사 받았는데 후에 마르티니크 섬과 기아나로 널리 퍼져나갔다. 커피의 인기가 전 유럽으로 번져나가자 오늘날 카페의 전신인 커피하우스가 생겨나 만남의 장소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여 17세기 말엽에는 영국,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도처에 생겨났다. 1650년 야콥이 영국에서는 처음으로 옥스포드에 커피하우스를 개장했다. 곧 이러한 장소는 수백개로 불어났고 페니유니버시티(penny universities)로 불리워졌는데 그 이유는 입장할 때 페니를 지불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커피하우스는 종종 부유한 단골 고객들의 열띤 토론장이 되기도 하였는데 어떤 곳은 오늘날 금융기관의 토대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도 지니고 있었는데 정치적인 음모와 모함의 장소로 활용이 되었던 것이다. 이에 조심성 많은 찰스2세 국왕은 1676년에 커피하우스를 모두 폐쇄시키려 하였으나 시민들의 항의가 너무 거세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더욱 융성하기에 이르렀다. 17세기에는 또한 영국으로부터 미국 버지니아 지방에 커피가 전파되었다. 그 당시 차의 인기가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1773년에 발생한 한 사건은 그 판도를 완전히 바꾸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보스톤 차 사건(Boston Tea Party)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영국에서 수입되는 차에 세금을 부과한 타운젠트법안이 통과되면서 보스톤 주민들이 영국 상선에 실린 차를 모두 바다에 내던짐으로서 발생했는데 이후 커피의 인기가 차의 인기를 앞질렀다.

 

 

 

 

 

커피의 역사

이디오피아와커피나무 발견에 대한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는

칼디(Kaldi)에 관한 것이다. AD3세기경 홍해에 가까운 수도원

근처의 언덕에서 양들을 돌보고 있던 양치기 칼디는 어느날

그의 양들이 흥분해서 날뛰는 것을 보고 원인을 찾던 중 그곳에서

자라는 덤불의 열매가 그 원인임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들은 승려는 그 열매를 수도원으로 가져가 끓여 먹은 후

밤에 장시간 기도를 할 때도 잠이 오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커피는 여러 사원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커피의 기원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는 중병에 시달리던

왕의 딸을 치료한 후 그녀와 사랑을 하다 왕의 미움을 사

오쟈브라는 예맨의 산으로 추방당한 사제 오마(Ali bin Omer)의 이야기다.

어느날 허기져 있던 오마는 숲속에서 작은 새 한 마리가 즐겁게 지저귀는 것을 보고

그 근처로 갔다가 하얀 꽃과 빨간 열매가 열린 나무를 발견하였다.

그는 그 열매를 따서 달여먹자 원기가 솟는 것을 느끼고 그 열매를 즐기게 되었다.
그 후 메카로 순례를 갔다가 전염병으로 고생하는 순례자들을 가지고 간

그 열매로 치료를 하게 되고, 이로 인해 면죄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커피의 어원

커피열매를 처음으로 먹기 시작한 사람들은

발효된 커피로 술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커피를(Coffee)뜻하는 아랍어 카와(qahwa)가

원래는 술(wine)이란 뜻으로 쓰였기 때문에

아마도 잘 못 해석된 것으로 여겨진다.

와란 단어를 잘못 해석하는 바람에 커피의 기원에 대한 시점을 잡는데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다른 아랍어 쿠와(quwwa)에서 비롯된 오해도 있다

그 단어는 힘 또는 강함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기운을 돋우는 커피의 효과를 연상시키므로 커피의 어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 밖에도 커피가 처음 발견된 이디오피아의 지명 카파(KAFFA)에서 유래했다는 설,

커피나무를 처음으로 이용했던 이디오피아 여인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설 등

여러가지 주장이 있다.

커피라는 말의 뿌리는 에티오피아의 카파(caffa)라는 '힘'을 뜻하고

커피나무가 야생하는 곳의 지명이기도 한 아랍어에서 유래 이 말은

힘과 정열을 뜻하는 희랍어 'kaweh'와 통함

이것이 아라비아에서 'gahwa'(와인의 아랍어)가 되고

터키에서 '카베'(kahve)로,

유럽에 건너가 카페(cafe)로 불려지게 됨

영국에서 첨에 '아라비아 와인'으로 불리다

1650년경 블런트 경이 커피라고 부른 것이 계기가 되었다

 

 

커피의 기원

커피의 경작은 AD575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고는 하나

문서로 남겨진 가장 오래된 기록은

10세기의 아라비아 내과의사 라제스(Razes)에 의한 것이다.

그가 기록한 문헌에 의하면

''커피는 소화나 강심, 이뇨에 효과가 있다''라고 하는

상세한 임상결과가 남겨지고 있어서,

이것은 커피에 관한 가장 중요한 초기의 문헌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커피의 전설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커피가 마호메트(Muhammad)에 의해 알려졌다는 것으로,

그가 병상에서 알라신에게 기도할 때

천사 가브리엘(코란을 전해 준 천사)이

검은색의 음료(as black as the Kaaba of Mecca)를 가져다 주었는데

그것을 마시고 나자 40명의 남자를 말안장에서 떨어뜨리고

40명의 여인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한다

(enough strength to unseat

40 men from their saddles and make love to the same number of women).

 

 원산지 에티오피아에서는

농부들이 자생하는 커피열매를 끓여서 죽이나 약으로 먹었다.

 9세기 무렵 아라비아반도로 전해져 처음 재배되었으며

나중에는 이집트·시리아·터키에 전해졌다.

이곳에서는 커피열매를 끓여 그 물을 마시거나 열매의 즙을 발효해서

카와라는 알코올 음료를 만들어 마셨다.

이 음료는 13세기 이전까지는 성직자만 마실 수 있었으나

그 이후부터 일반대중들에게도 보급되었다.
한국에서는 1895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고종 황제가 처음 커피를 마셨다.

민간에서는 독일인 손탁이 정동구락부에서 커피를 팔기 시작한 이후

1920년대부터 명동·충무로·종로 등지에 커피점들이 생겨나면서

소수의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그 뒤 8·15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미군부대에서 원두커피와 인스턴트 커피들이 공급되어

대중들이 즐기는 기호음료가 되었다.

 

커피 열매를 십만년 전에도 먹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는 이디오피아의 고산지대에서 발견된

십만년 전 사람의 배설물에서 커피원두가 발견된 것인데,

물론 커피열매는 당분이 많아 달고 영양학적 가치가 있기는 하나 상당히 흥미롭다.
우간다를 처음 탐험한 유럽의 탐험가는

우간다 사람들이 건조된 로부스타 원두를 씹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하는 기록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커피원두를 잘게 갈아서

지방과 섞어 작은 공모양으로 만든 후

장거리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의 식사로 이용했다고 한다.
서는 수 백년간 커피원두를 볶지 않은 상태로 씹어먹었다고 한다. 놀랄만한 사실은 이디오피아 사람들이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

우리 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것은 조선 고종 19년 때인 1895년의 일입니다.
당시의 커피는 요즘처럼 원두 커피나 인스턴트 커피 같은 것이 아니라,

모난 설탕 덩어리 속에 커피 가루가 들어 있는 것 이었는데,

그 설탕 덩어리를 더운 물에 몇개 넣으면, 먼저 설탕이 녹고

그 속의 커피 가루가 퍼지며 색깔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왕족들이 마셨는데, 손탁 호텔이 문을 연 다음부터

일반인도 커피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이 호텔이 문을 닫자,

일본 사람이 경영하던 청목당이라는 양식당에서

커피를 비롯하여 양주와 양식을 팔았습니다.

소공동에 조선 호텔이 생기기 전까지 청목당은

서울에서 가장 첨단을 걷는 양식당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고 하죠.
그러다가 3.1 운동 직후인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커피를 파는 다방들이 생겨나 손님들을 끌기 시작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