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돈 화백은 보기 드물게도, 신문 지면에서보다 인터넷 지면을 통해 더 주목받고 인기몰이하고 있는 시사만화가이다. 이미 7년 째 경기 인천 지역 유력 일간지인 <경인일보>에서 만평을 연재하며 나름대로의 영역을 구축해 온 김 화백이지만, 그가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게 된 것은 <오마이뉴스>에 '김상돈의 시사만평'을 연재하면서부터 였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독특한 색깔과 뚜렷한 주장으로 채워진 자신의 만화를 선보이면서 전국의 수많은 네티즌들을 자신의 독자들로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상돈 화백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지면 변화를 일찌감치 꿰뚫었던 대표적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김상돈 화백이 오프라인 지면까지 박차고 나와 독자들과 직접 대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개인 전시회를 열었다. 수원역사에 소재한 애경백화점 M1층 통행로에 마련된 특별 전시 공간에서 그간 연재했던 만화들의 원화를 추려 독자들에게 선보인 것이다. (관련기사) 사람들이 오고가는 통로에 전시회를 기획한 것에 대해 김 화백은 "독자들과 직접 만나는 전시회 취지에 부합하기 위해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를 찾다 보니 백화점 전시가 추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러 시사만화를 찾아 보러 오는 소수의 관람객들보다, 오고가던 발길을 멈추어 전시회에 관심을 갖는 다수의 관람객들과 만나는 대중성에 더 큰 의미를 두었다는 얘기였다. 전시회의 외견상 격식이나 형식보다는 독자들과의 효율적인 소통에 주안점을 두는 모습에서 김상돈 시사만화의 지향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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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작품들을 한 눈에 보면서 시사의 흐름을 쫓을 수 있는 기회다. ©이광열 | "시사만화는 무엇보다도 메시지가 중요하다. 작가가 독자들에게 가장 강하게 전하고 싶어하는 메시지의 요지를 집약해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배경을 주로 생략하고 인물을 부각시켜온 자신의 시사만화 스타일에 대해 김상돈 화백은 "주제의 핵심을 부각시키고, 메시지에 독자 시선을 모아내기 위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등장 인물의 발목 아래를 생략하는 것 역시, 만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캐릭터의 얼굴에 시선을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서라는 해설도 곁들였다. 김상돈 화백 작품의 특징인 단순한 선 위주의 그림체도 주제의 효과적인 전달이라는 목적에서 비롯된 특징이었던 셈이다. 전시회 구성과 구체적인 작화 활동에서, 군더더기라고 여겨질 만한 것들을 생략하는 과감함과 최대한의 내실을 기하는 알찬 자세가 엿보였다.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김상돈 화백이지만, "진보"라는 이름 아래에 각 개별 사안 사이의 차이가 무시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김 화백은 조흥노조의 파업이나 한총련 소속 학생들의 미군기지 진입 시위 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의 만화를 보인 바 있다. 김상돈 화백은 "기본적으로 노조나 한총련에 대해 호의적"이라고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고, 그러나 "명분만큼 방법도 중요한데, 이들은 명분이 옳다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밀어부치려 했던 측면이 있었다"고 지적하며, 자신의 만화는 "국민정서"와 어긋난 이들의 몇몇 행동에 대해서 비판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화백이 설명했듯 이러한 비판은 기본적으로 애정을 가지고 가하는 것이지만, 간략한 표현으로 인해 메시지가 부각되는 김 화백 특유의 그림체 탓에 만화의 인상이 강렬해져 독자들에게는 애초의 의도보다 더 신랄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말하자면 일단 비판에 포커스가 맞추어지면, 김 화백이 애정을 품고 있다고 해도 그림에서만큼은 그것이 철저히 배제되는 셈이었다. 김 화백은 "시사만화에서는 가부간에 입장을 보여 줘야지, 애매하고 양비론적 시각을 보이고 싶지 않다"며 자신의 확실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까닭에 노조나 학생운동을 비판하는 만화는 물론, 노 대통령을 비판하는 만화에 대해 더러 독자들은 격앙된 반응을 드러내기도 한다. 반면, 김상돈 화백은 칭찬이든 욕설에 가까운 비판이든 간에 일단 독자들로부터 나오는 반응들은 몹시 기쁘게 받고 있었다. 사실 <오마이뉴스>에 연재를 시작했던 것도 <경인일보>를 통해 접하는 독자의 반응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 화백은 <오마이뉴스> 연재 기간 동안 접했던 다양한 독자들의 반응이 자신의 작화 활동 발전에 톡톡히 덕을 주었다며 독자들과 <오마이뉴스>에 감사의 인사를 남기기도 했다.
김상돈 화백은 쌍방향 소통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작가였다. 그가 지역 일간지 연재에 안주하지 않고 온라인 매체에 눈을 돌린 것도, 흔치 않은 시사만화 개인전을 갖게 된 것도 모두 독자들과의 소통이 그 목적이었다. 독자들로부터 피드백을 받고 그것을 다시 자신의 작품에 반영해 스스로의 발전을 도모하는 김상돈 화백의 자세는, 안 그래도 충분히 날카로운 그의 예봉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어줄 것이다.
김상돈 화백 시사만화 따라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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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돈 화백을 만났던 17일은 <김상돈 시사만평전>이 개최하는 날로, 이 날 김 화백은 경인일보사에 월차 휴가를 냈던 날이었다. 따라서 이날 <경인만평>을 그릴 일은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날은 <뉴스툰>의 '데스크카툰'을 마감해야 했던 날. 김 화백은 잠시 짬을 내어 경인일보사에 돌아가 '데스크카툰' 작업 과정을 보여주었다. 전시회 때문에 차려입은 불편한 양복 차림으로 작화하는 것을 김 화백은 영 어색해 했다.
경인일보 편집국 김상돈 화백의 자리에 함께 찾아갔을 때 우선 눈에 띄었던 것은 좋은 작업 환경. 앞서 탐방을 했던 다른 작가들의 경우와 비교했을 때 넓은 책상과 여유있는 공간 등의 작화 환경이 너무나도 좋았다. 김 화백은 "시사만화와 화백의 중요성을 인정해주는 경인일보사와 사장의 배려"라며 회사에 각별한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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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화백 역시 만화 아이템을 찾는 주요 뉴스 소스는 인터넷 신문이었다. ©이광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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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를 찾는 과정은 늘 고역... ©이광열 | 인터넷 신문으로 소재를 찾으며 앞의 빈 종이에 몇 가지 만화 소재가 될만한 이슈들을 메모해 나가기 시작하던 김 화백은 거칠게 가스케치를 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 날의 아이템은 미국의 파병 요청을 두고 고민하는 노 대통령. 이번에 파병을 하게 되면 그나마 비판적으로라도 지지하던 정부 지지층이 남지 않을 것이라는 개념에서 접근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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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낌 없이 거칠게 샤프로 스케치해 나가기 시작. ©이광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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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케치 뒤에 새 종이를 꺼내 그 위에 이번에는 조금 더 꼼꼼하고 정성껏 스케치를 해 나간다.. ©이광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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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뎃생은 비교적 꼼꼼했다. 캐릭터를 그릴 때에도 기본기에 충실한 뎃생을 해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광열 | 연필 뎃생으로 어느정도 윤곽이 잡히자 옆 쪽 책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실 이렇게 넓은 책상을 쓰는 작가들도 흔치 않은데, 김 화백은 여기에 두 개의 책상을 소유하고 있었다. 옆 책상은 마커들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 작화 책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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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천리로 조속히 펜작업에 진입하는 듯 했으나.... ©이광열 |
앗, 그런데 사고가 터졌다. 막 만화 속 노 대통령의 말풍선 내용을 쓰고 쓰던 펜을 바꾸려는 차에 펜을 떨어뜨려 그만 원화에 잉크가 튄 것이다. 만화 속 코멘트대로 그야말로 "환장"할 일이었다. 이런 일이 가끔 일어나기도 한다며 김 화백은 새 종이에 스케치부터 다시 시작했다. 새 스케치는 처음의 스케치처럼 꼼꼼한 뎃생을 하지 않고 첫 번째 스케치를 흘끔 흘끔 보아 가며 구도를 그대로 베끼는 식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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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 정도에서 다시 그리게 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건지.. ©이광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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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튈까 노심초사해 가며 좀 더 차분히..조심..조심..조심.. ©이광열 | 요즘에는 펜촉을 이용하는 작가들이 많이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힘 조절에 따라 다양한 펜선을 맛 볼 수 있는 펜촉만의 고유한 매력이 있는 법이다. 김상돈 화백의 능숙한 펜 사용을 보자면, 역시 그림을 펜으로 그려야 맛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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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쓴 글자는 수정액으로 지우기도 하고... ©이광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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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가 마르길 기다렸다가 지우개로 연필 선도 깨끗이 지운다. 이 처럼 김 화백도 모든 작화 공정이 손으로 이뤄졌다. ©이광열 | 원화에서 수정액으로 수정된 텍스트를 여전히 여백으로 남겨둔 상태에서 김 화백이 갑자기 복사기 쪽으로 향했다. 복사를 한 뒤 복사지에서 계속 작화해 나가려는 참이었다. 이유는 두가지였다. 수정액 위에 잉크가 먹히지 않는 까닭이기도 했고, 지우개질로 표피가 긁힌 원화 위에는 마커로 하는 채색 효과가 좋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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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지로 완성된 작품을 본다면, 이 복사지가 원화일까? 아니면 복사되기 전의 그림이 원화일까?? ©이광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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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해온 '원화' 위에 텍스트를 마저 마무리 짓고... ©이광열 | 채색이라고는 하지만 마커의 색깔 종류는 달랑 두 종류였다. 브라운 계통과 그레이 계통의 마커였는데, 농도가 제각각이어서 종류는 다양했다. 기본적으로 흑백으로 지면에 나가기 때문에 채색은 음영이나 무늬를 넣는 차원에서 쓰이고 있었다. 다양한 색깔을 쓰지 않는 편이었지만. 의외로 채색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사이의 차이가 컸다. 겨우 두 종류의 색인데도 색깔 보는 맛이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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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자루의 마커 중에서 필요한 것만 뽑아서... ©이광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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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성된 작품을 보며 자가 검토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될 것인가가 주안점. ©이광열 | 애초에 스케치 한 작품대로 펜 작업과 채색 작업이 끝났는데, 김 화백의 표정이 밝지 못하다. 뭔가 뚫어지게 생각하더니 김 화백은 주제의 전달을 더 잘 해주기 위해서 인물을 둘 정도 더 그리기로 했다. 즉석에서 스케치를 해치우고 빠른 손놀림으로 두 캐릭터를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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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끝. 더 미진한 부분이 없나 완성작을 꼼꼼히 살피는 김 화백. ©이광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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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인터넷을 통해 <뉴스툰>에 보내졌고, 18일 <뉴스툰> 데스크카툰으로 나갔다. ©이광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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