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바보 노무현'이 우리 곁을 떠나 영면의 길로 갔다.
수백만 명의 국민이 분향소를 찾아 그를 조문했고, 수십만 명의 국민이 '지못미'를 외치며 가슴을 쳤다.
이와 같은 추모 열기는 비록 그는 '사람 사는 세상'을 떠나 먼길을 갔지만,
그의 꿈은 국민의 가슴 속에 깊히 새겨져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를 떠나 보낸 지금, 이제는 차분히 그의 죽음의 의미를 톺아볼 때이다.
<오마이뉴스>는 25일 머리기사에서 '이명박의 정치 보복이 노무현을 죽였다'고 썼다.
내가 보기에 이 명제를 입증할 객관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100가지가 넘는 심증은 있다.
수사기관이 아닌 언론은 심증만으로도 기사를 쓸 수 있다.
사실 '이명박의 정치보복이 노무현을 죽였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다 알지만 아무도 안 썼다.
<오마이뉴스>는 아무도 안 쓴 것을 썼을 뿐이다.
독자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고 맺힌 것을 풀어준 것이다.
'이명박의 정치보복이 노무현 죽였다'는 절반의 진실
그러나 '이명박의 정치보복이 노무현을 죽였다'는 명제는
어쩌면 절반의 진실을 담고 있을 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간
'박연차 게이트'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정관계 로비의혹) 수사는
국세청의 태광실업 특별세무조사 및 검찰 고발로 시작된 것이다.
박연차 전 회장은 정치인 노무현의 오랜 후원자였다.
박 회장은 한나라당의 후원자(재정위원)이기도 했다.
태광실업 세무조사와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지휘한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임채진 검찰총장은
모두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권력기관장이다.
그러나 노무현 자신이 임명한
국세청장-검찰총장의 세무조사 및 고발과 수사로 인해
도덕성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자살을 택했다고 해서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이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또 살아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죽은 권력에는 강한
검찰 조직의 생리가 이 대통령의 허물을 덮어줄 것도 아니다.
두 사람(검찰총장, 국세청장)은 노 전 대통령이 임명했지만
이 대통령 밑에서 더 많은 일을 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의 뒤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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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이 23일 한-EU 정상회담을 마친 뒤 오찬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제공 청와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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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조사를 맡았다.
재벌도 아니고 매출 규모 620위권 규모의 지방 신발공장을 털기 위해
재계의 저승사자라 불리는 조사4국이 나선 것이다.
모기 잡으러 장검을 빼 든 격이다.
누가 봐도 표적 조사였다.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이 잡듯이 뒤졌다.
겁이 난 박연차 회장은 MB의 남자인 추부길 전 비서관에게 SOS를 쳤다.
사돈인 김정복 전 중부국세청장과 이종찬 민정수석 그리고 MB의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게도 SOS를 쳤다.
이들은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한 대책회의를 했다.
이 세무조사 대책회의 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세무조사 결과는 국세청장이 민정수석까지 배제한 채 직접 대통령에게 독대 보고했다고 한다.
그해 11월 태광실업은 탈세(242억 원) 혐의로 고발되었고 세무조사 자료는 고스란히 검찰에 넘겨졌다.
설령 MB의 지시가 없었더라도, 정황상 국세청장은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해 태광실업을 세무조사한 것으로 보인다.
또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사실관계 파악에 머물지 않고 최소한 국세청의 고발을 묵인했다.
한상률 청장은 지난 3월 검찰 수사가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자 미국으로 돌연 출국했다.
그를 둘러싼 그림 상납 의혹 수사는 흐지부지됐다.
그후 국세청장 자리는 다섯 달째 공석이다. 국세청장 자리가 이렇게 장기간 비어 있기는 건국 이후 처음이다.
모든 것이 석연찮다. 정치보복 의혹은 그래서 나온다.
검찰, 사돈네 팔촌까지 주머니 뒤지고 강금원 2번 구속
검찰 수사는 어쨌나.
국세청의 태광실업 고발사건은 수사과정을 검찰총장에게 직보하는 대검 중수부에 맡겨졌다.
국세청 고발은 연 수백 건이 넘지만 대검 중수부가 맡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검찰은 즉각 박연차 전 회장을 구속하고 이어 노건평씨도 구속했다.
검찰은 올 1월 중수부 인력(검사)을 5명에서 13명으로 보강했다.
이는 검찰의 칼끝이 전직 대통령을 향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이후 넉 달 동안 중수부 검사와 베테랑 수사관들이 노무현의 친구의 친구와 사돈네 팔촌까지 돈 주머니를 이 잡듯 뒤졌다.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난 노건평씨는 27일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을 이렇게 토로했다.
"검찰이 사위(연철호) 부모 계좌추적까지 하고, 전화도 몇 통씩 넣었다.
또 여기저기서 친한 사람들이 계속 검찰 수사 받고 있다고 이야기 나오니깐, (노 대통령이) 그때부터 말문을 닫고 고심했다."
확실히 검찰 수사는 여느 때와 달랐다.
검찰은 박연차 회장에 이어 노 전 대통령의 친구이자 또다른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도 구속했다.
같은 돈이라도 강 회장의 돈은 성격이 달랐다.
강 회장 회사는 주식회사가 아닌 개인회사다.
개인회사 돈이라고 마음대로 가져다 써선 안 되지만 주식회사보다는 덜 엄격하다.
그런데도 검찰은 강 회장을 탈탈 털어 2번이나 구속했다.
한 번은 재임 중에, 한 번은 퇴임 후에. 노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17일 홈페이지에 올린
'강금원이라는 사람'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비통함을 썼다.
"강 회장은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은 것이다. 이번이 두 번째다. 미안한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는 23일 남긴 유서에도 이렇게 썼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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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전 대통령이 1일 새벽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검찰조사를 마치고 귀가하고 있다. |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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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노무현의 대척점에 서 있다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검찰의 독립성을 해치는 권력 남용이다.
이래라저래라 했다는 증거도 없다. 심증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백번 양보해 여기까지가 모두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의 팔자소관이고 제도와 관행에 따른 것이라고 치자.
그러나 전임자의 죽음으로 그 업보가 후임자에게는 평생의 굴레가 되어버렸다.
남상국 회장의 죽음이 노무현의 업보라면, 노무현의 죽음은 이명박의 업보가 되어버렸다.
그것이 이명박의 팔자소관이고 운명이다. 그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다.
17대 여당 국회의원으로서 노무현의 철학과 정신에는 동조하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은 호되게 비판했던 최재천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대의 모순을 끌어안고 용서와 관용을 부탁하며 꽃잎처럼 흩날렸다"면서 이렇게 썼다.
"우리 사회 대부분을 차지하는 돈 없고, 힘 없고, 빽 없고, 못 배운 비주류들의 이익을 위해,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와 소외된 자들의 공익을 위해 처절한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극단적이고 강고한 모순과 함께 했습니다. 오로지 노무현 전 대통령 뿐이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 대척점에 서 있다. 자신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는 이제 돈 많고, 힘 있고, '빽' 있고, 많이 배운 주류의 이익을 위해,
우리 사회의 강자와 다수파와 가진 자들의 사익을 위해 애쓰는 대통령이 되어버렸다.
사실 억울할 것도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년여 동안 보여준 '강부자'-'고소영' S라인 인사, 부자 감세, 촛불 탄압과 미네르바 구속,
인터넷과 언론 탄압 등으로 상징되는 총체적인 민주주의의 후퇴가 '국민들과 소통하고, 국민 편에 서려 했던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의 존재가치와 선명하게 대비되어 도드라지게 드러났을 뿐이다.
이명박, 바꿔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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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의 굴레 입관식에서 남편을 떠나보내는 권양숙 여사 사진과 이명박 대통령이 떠안아야 할 평생의 짐을 그린 만평을 대비시킨 한겨레 26일자 2면. |
ⓒ 한겨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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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여를 보라.
누구는 홍보사진을 찍기 위해 자전거를 타지만,
노무현은 마을 이장처럼 온동네를 타고 다녔다.
누구는 얼굴에 회칠을 하고 모내기를 했지만
노무현은 맨얼굴로 진짜 농사를 지었다.
대중은 정치인을 이미지로 기억한다.
노무현의 죽음은 그것을 더 각인시켰다.
그것이 이명박의 운명이다.
그가 짊어져야 할 평생의 짐이자, 십자가다.
설령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고 해도,
전임자의 비극은 후임자가 져야 할 역사의 굴레다.
그것은 지난 민주정부를 '잃어버린 10년'으로 부정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더해 승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지난 정부에서 합의한
6.15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실용의 가치를 더해 새로운 민족공영의 합의로 진전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 편에 서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본디 시민의 것이었던 광장을
시민의 품에 돌려주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현직 대통령이 희생의 제의(祭儀)에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전직 대통령과 진정으로 화해하는 길이다.
국민은 이미 지난 4·29 재보선에서
이명박 정부에 첫 번째 정치적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국민 상당수는 전직 대통령 노무현의 5·23 투신을
두 번째 경고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그의 투신 이후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크게 동반 하락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촛불정국 때처럼 강할 때는 머리를 숙였다가
약할 때 때려잡는 얄팍한 술수로 위기 국면을 돌파하려 한다면
오산이다. 국민은 한 번 속지 두 번 속지 않는다.
시간이 약이라는 깔아뭉개기와 부작위의 꼼수도 이번에는 통하지 않는다. 물론 사람은 망각의 존재다.
대중은 1년 365일 노무현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 정권엔 불행(?)하게도 그의 기일(忌日)은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운동 기간과 겹친다.
어쩌면 내년 지방선거는 세 번째 경고이자 심판의 장이 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독선과 불도저 리더십에서 소통과 거버넌스의 리더십으로 바꿔야 한다. 그것이 대세다.
아니, 바꿔야 산다.
당위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그것이 이명박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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