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경향신문-목수정의 파리통신] 프랑스 작가가 살아가는 법

강개토 2011. 3. 5. 13:45

이웃에 소설과 시나리오를 쓰는 한 작가가 산다.

그의 책들은 모두 프랑스 최고 권위의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3000권 이상 팔린 적은 없다.

당연히 인세로만 살지 못한다.

그러나 파리 마레지구에 있는

월세 1000유로(약 150만원)의 아파트에서

그리 궁색하지 않은 작가의 삶을 수십년째 영위하고 있다.

무슨 수로?

몇 년 전부터 그는 매년 지방 소도시에 머물면서,

그곳을 배경으로 소설을 쓴다.

그리고 1주일에 두 번 주민들을 위한 글쓰기 교실을 연다.

1년의 계약기간 동안 지자체는

그에게 생활하면서 글을 쓸 수 있는 공간(레지던스)을 제공하고,

한 달에 2000유로를 지급한다.

글쓰기 교실에 참여하는 이들은

교사, 전직 간호사, 의사, 보험회사 직원 등 다양한 직업과 연령층의 사람들이다.

저녁 8시에 열리는 글쓰기 교실의 열기는 종종 자정에 이르도록 식을 줄 모른다.

사람들은 수업이 끝나도 작가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고,

글쓰기를 통해 발견한 이 새로운 세상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느끼고자 한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읽는 것.

그래서 그는 마을 도서관의 장서를 재정비한다.

인구 3000명이 채 안되는 이 작은 도시의 도서관에는 정식사서가 없고,

도립도서관에서 임의로 보내는 책들로 서가는 채워졌다.

작가는 며칠 동안 도립도서관에 가서, 필요한 책들을 고르고,

없는 책들은 주문해서, 마을 도서관의 장서들을 새롭게 구비시킨다.

이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반응은 열렬했다.

한 중년 부인은 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하고,

집에서 만든 산딸기잼이며, 오이피클 따위를 조심스럽게 내밀기도 했다.

매주 일요일 장이 서면,

거기서 마을사람들이 직접 가꾼 과일과 야채를 사면서 종종 그들의 삶을 듣는다.

그는 이 모든 삶을 바탕으로 애잔한 사랑얘기를 쓸 수도 섬뜩한 스릴러를 쓸 수도 있다.

전적으로 작가의 권한이다. 다만 이 작은 도시가 배경으로 등장할 뿐.

한때 칸영화제 커미셔너로 일하기도 했던 그는,

그 시절에는 앵테르미탕(공연·영화·방송 분야에서 비정기적으로 일하는 사람들로,

10개월간 507시간을 계약에 의해 일하면 나머지 기간에 실업급여를 탄다)의 지위로 살아갔고,

그때와 대학에서 강의하던 시절에 납입했던 소박한 규모의 국민연금을 올해부터 탄다.

프랑스국립영화센터(CNC)는

지원을 결정한 독립영화들의 시나리오를 그에게 보내,

촬영 전 마지막 손질을 의뢰하기도 한다. 소위 스크립트 닥터의 역할이다.

조만간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파리 4구로부터 임대주택을 제공받게 된다.

임대주택의 우선권은 아이들이 많은 가정에 주어지지만,

지자체들은 예술가들이 그 지역에 있는 것이 다른 주민들을 위해

좋은 영향을 준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몫도 남겨둔다.

5년째 대기자로 있던 그에게 드디어

올가을, 지금 집세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멋진 아파트가 주어질 거라고

구청이 알려왔다.

한 작가의 존재는 사회 전체를 향해 명확하게 기능한다.

그는 사람들의 정신을 고양하고, 그들 속에 있는 토양을 일구어 열매 맺도록 자극한다.

작가의 역할을 인정하는 사회는,

지자체·국가·출판사가 일자리·주거·실업급여·연금·

느긋한 기다림 등 각각의 방식으로 작가가 작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공조한다.

 

프랑스 좌파연대 대표 멜랑숑은

“내가 모든 직업의 급여를 정할 수 있다면,

난 시인에게 가장 높은 급여를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자유와 해방을 꿈꾸는 사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예술가들을 예술가로 살게 하는 것이다.

  칼럼가 목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