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계 큰 별' 최동원 별세
(서울=연합뉴스) 한국 프로야구계의 큰 별이 또 졌다. 경기도 일산병원은 1980년대 프로야구 초창기를 개척한 '불세출의 투수' 최동원 전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이 지병으로 별세했다고 14일 발표했다. 향년 53세. 한화 코치로 있던 2007년 대장암 진단을 받은 고인은 한때 병세가 호전돼 2009년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감독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병세가 나빠져 경기도 포천 등지에서 요양해 왔다. 사진은 지난 2009년 7월 4일 한국야구위원회 경기운영위원시절 프로야구 SK 대 롯데 경기에서 롯데유니폼을 입고 고향 마운드에 올라 시구하는 모습. 2011.9.14 photo@yna.co.kr |
(서울=연합뉴스) 천병혁 기자 / 한국 프로야구계의 큰 별이 또 졌다.
경기도 일산병원은
1980년대 프로야구 초창기를 개척한
'불세출의 투수' 최동원 전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이 지병으로 별세했다고 14일 발표했다.
향년 53세.
한화 코치로 있던 2007년
대장암 진단을 받은 고인은 한때 병세가 호전돼
2009년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감독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병세가 나빠져 경기도 포천 등지에서 요양해 왔다.
유족 측은
"최근 병세가 급격히 악화해 일산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왔다"고 전했다.
고인은 지난 7월22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경남고와 군산상고 간의 레전드 매치에 경남고 대표로 참석했으나
더그아웃을 지켰다.
그는 당시 수척한 모습이었지만
"다음에는 꼭 던지겠다"며 병마를 극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올해 출범 서른 돌을 맞은 프로야구는 '영원한 3할 타자'인
장효조 전 삼성 2군 감독이 별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당대 최고의 투수인 최동원마저 잃게 되자 비통에 빠졌다.
shoele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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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 최고 투수 최동원 별세, 그가 걸어온 53년 야구 인생
[TV리포트 남승원 기자]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 투수로 평가받던 故최동원이 14일 세상을 떠났다.
시속 150㎞의 강속구와 낙차 커브를 던진 최동원은
특히 1984년 롯데가 창단 후 처음으로 프로야구를 제패할 때
한국시리즈 4승을 혼자 거둔 투수로도 유명하다.
그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경남고 재학시절이던 전국우수고교초청대회에서 경북고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 유명세를 떨쳤다.
그는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
1981년
미국프로야구(MLB)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을 체결했지만
병역 문제로 진출할 수 없었다.
이후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우승 멤버로 활약한 최동원은 이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데뷔 이듬해인
1984년
그는 51경기에 등판, 14차례 완투를 곁들이며
27승13패 6세이브에 방어율 2.40을 기록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특히 삼성과
1984년 한국시리즈에선 총 5차례나 마운드에 올라 홀로 4승을 이뤘다.
하지만 그는
현 프로야구선수협회의 모태 격인 선수협의회 결성을 추진하면서
1988년 11월 삼성 간판투수 김시진과 맞트레이드 형식으로 롯데를 떠났다.
결국 그는
1989년 후반기에 삼성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다시 올랐으나
8경기 1승2패의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이듬 해 6승5패1세이브를 올린 뒤 현역에서 은퇴했다.
은퇴한 후
1991년 지방의회 선거 때 무선 서구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방송사 해설위원 등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렇게 야구계를 잠시 떠나있던 최동원은
2001년 한화 이글스 투수 코치로 돌아와
2006년부터 3년간 한화 2군 감독을 지냈다.
하지만
2007년 대장암 진단을 받고
2009년 회복하는 듯 했으나 최근 병세가 다시 악화돼
경기 일산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
사진=한화이글스 홈페이지
남승원 기자 qqq7740@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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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승한기자hongsfilm@ |
한국 야구의 큰 별이 또 졌다.
지난 7일 전설의 왼손타자 장효조 삼성 2군감독이
암 투병 끝에 55세를 일기로 별세한 지 꼭 1주일 만에
한국프로야구 '불세출의 투수' 최동원 전 한화 2군감독마저 팬들 곁을 떠났다.
운명하기 직전까지 야구공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그라운드 복귀 의지를 불태웠지만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경기도 일산병원은
최동원 전 한화 2군감독이 14일 오전 2시2분께 지병(직장암)으로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향년 53세.
한화 코치로 있던 2007년 대장암 수술을 받은 고인은 병세가 호전돼
2009년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운영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지난해부터 병세가 나빠져 경기도 포천 등지에서 요양해왔고
최근 자택 인근 일산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했다.
최 전 감독의 동생 최수원 KBO 심판은
14일 빈소가 차려진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형님은 의식을 잃기 직전까지 야구를 보시며 회복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투병 중에도 항상 야구 이야기를 하셨는데 특히 올시즌 관중이 많이 늘어 '참 좋다'며 웃으셨다.
어머니께서는 의식을 잃은 형에게 현역시절 던지던 야구공을 손에 쥐어주며 회복을 빌었는데
끝내 병마에 쓰러지고 말았다. 형님은 운명 직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야구공을 쥐고 있었다"
고 말했다.
병세는 지난 7월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고인은 지난 7월 22일 목동에서 열린
군산상고와 경남고의 레전드 리매치에 출전하기도 했는데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모습을 보여 많은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최 심판은
"레전드 리매치 출전 당시 형님의 몸상태는 매우 안 좋았다.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서고 싶어 참가한 것 같다"
고 말했다.
경남고와 연세대를 거쳐
프로야구 롯데에서 활약한 최동원은 한국야구 100년사의 최고 투수 가운데 한 명이다.
경남고 2학년이던
1975년 경북고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해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고,
이듬해 군산상고를 상대로 탈삼진 20개를 솎아내 초고교급 투수 반열에 올랐다.
실업야구 롯데에 입단한
1981년에는 최우수선수(MVP)와 다승왕, 최우수신인상을 싹쓸이했다.
1982년 한국의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에 기여한 뒤
1983년 프로야구 롯데에 입단해 삼성을 거치며
통산 103승74패 26세이브 방어율 2.46을 기록했다.
그는 은퇴 후
지방의원 선거에 출마해 낙선했고
해설위원, 방송인 등으로 다양하게 활동하다가
10년 만인 2001년 한화 코치로 야구 현장에 돌아와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07년에는 한화 2군감독을 지냈다.
그러나 고인이 마지막으로 희망했던 현장 복귀와 고향팀 롯데 지도자의 꿈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고,
발인은 오는 16일 오전 6시.
장지는 경기도 자유로청아공원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신현주씨와 군 복무 중인 아들 기호씨가 있다.
김경윤기자 bicycl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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