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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 초기에 재협상에 나서야 했다. 그런데 정부는 계속 국민과 싸웠다. 협상주체는 자존심 때문에 잘못된 협상을 시인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검역주권 문외한이다. 촛불 든 국민을 반정부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건 옳지 않다. 더 이상 국민은 '판단착오 정부'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소통하면 5년 내내 어려울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산파노릇을 했던 전직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작심한 듯 고언을 쏟아냈다. 지난 대선 이명박 후보 선거캠프에서 농업분야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윤석원(55)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취임 100일도 안 돼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레임덕에 빠져버린 이명박 정부를 향해 거침없이 비판했다.
11일 경기도 수원 농업진흥청의 한 회의실에서 만난 윤석원 교수는 "검역주권이 뭔지도 모르는 청와대와 외교부, 통상교섭본부가 이번 쇠고기 사태의 가장 큰 책임자"라며 "광우병이 발생해도 수입중단도 못하도록 협상하고 온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격노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검역주권 문제에 밝은 농림수산식품부가 이번 협상에서 버텼어야 했다"며 최후의 저지선을 방어하지 못한 채 무작정 끌려간 "정운천 전 장관은 역사적으로 그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가 촛불시위를 반정부세력으로 규정한 점과 관련, 윤 교수는 "먹는 문제에 좌우가 어디 있느냐"며 "농식품 안전에 대한 국민적 경고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일갈했다.
이어 "자기 잘못은 덮어둔 채, 추가협상 했으니 촛불집회가 잘못됐다는 식으로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광우병 위험을 알리는 전문가들을 향해 당신 주장 틀렸으니 촛불 끄라는 식의 우격다짐으로는 오히려 더 큰 화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를 '판단착오 정부'로 규정하고 "부시 정권 내에 한미FTA가 처리될 거라고 착각하거나, 한 달도 안 남은 17대 국회를 향해 한미FTA 비준을 요구하는 것 등은 가능성 제로에 도전하는 무모한 행위"라며 "중대국면에서 계속 판단착오하는 이명박 정부는 정치를 모르는 일개 교수만도 못하다"고 비판했다.
윤 교수는 "국민과 대치하는 현 상황이 지속되는 것보다는 '정부와 시민사회'가 만나 대화하고 논의하는 기구를 만들어 토론하는 편이 생산적"이라며 "광우병 대화기구를 만들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윤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선거에서 농업부문 총책임자였던 내 말도 전혀 듣지 않았다"며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더니, 한나라당과 정부는 집권 이후 얼굴을 바꿨다"고 씁쓸해하기도 했다.
다음은 윤석원 교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이명박정부는 농업전문가와 농민단체 의견을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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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나.
"나는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선거대책본부에서 농업부문 정책자문을 했다.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과 내 생각은 달랐지만, 그래도 정권을 이끌려면 생각이 다른 사람도 필요할 거라고 판단했다.
지나친 시장주의, 경쟁력 지상주의에 대한 균형 차원에서도 나 같은 이의 도움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더 본질적으로는 대선결과가 빤한 상황에서 '농업 마인드'가 부족한 그들이 집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걱정돼 최소 나 같은 사람이 동참하면 정책변화가 있지 않겠나 생각했다. 지금 와 생각하면, 결국 선거용으로 활용했나 싶기도 하다."
- 취임 5개월을 맞이한 이명박정부 정책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보는 건가.
"새 정부 출범 5개월간 벌어진 사태를 보면, 선거를 도운 나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적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광우병 위험 한미 쇠고기 협상, 농업을 보는 정부의 시각, 농업정책 등 MB 후보 시절 만들어놓은 정책조차 상당부분 폐기했다.
농정을 농민과 함께 협의하는 농정회의소도 폐지됐다. 통일농업도 포기했다. 농가부채도 공약의 큰 줄거리였는데 유야무야됐다. 이 가운데 일방적으로 쇠고기협상을 추진하다 결국 오늘과 같은 광우병사태를 낳았다. 고민, 고민했다. 결론은 '이건 아니다'하는 생각이다. 한미 쇠고기 협상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치달을 때도 이명박정부는 농업전문가들과 농민단체들의 의견을 거의 반영하지 않았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이명박정부의 농업부문 총책임자였던 내 말도 전혀 듣지 않았다. MB 지지선언을 했던 농업학자들, 농민단체 관계자들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더니, 한나라당과 새 정부는 집권 이후 얼굴을 바꿨다. 쇠고기협상 초기에 농민여론과 농업계 입장을 초기 단계에 수렴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거다. 많은 농업전문가들이 있었는데 왜 MB정부는 활용하지 않았을까, 답답하고 매우 아쉽다."
"청와대와 외교부, 통상교섭본부는 '검역주권 문외한'"
- 광우병 사태의 본질은 뭐라고 보나.
"첫째는 농업에 대한 현 정부의 인식 문제다. 농업문제를 소홀히 취급한다. 검역주권 포기하면서 미국에 한국 쇠고기 시장 다 내줘도, 그저 축산농민 다독이면 그만!이라는 사고가 잘못됐다. 농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편협하다. 21세기 농업문제는 단순 산업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중진국 이상의 국가에서 농업을 산업으로만 생각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 농업은 '생산-유통-가공-소비' 단계 모두와 연관돼 있다. '농장부터 식탁까지' 안전이 얼마나 중요해졌나. 그런데 이 인식이 너무 빈약하다."
- 또 어떤 문제가 있나.
"최근 식량위기에서 나타나듯 국민들에게 안전한 식량을 안정적으로 잘 공급하는 것도 농업문제의 핵심이다. 농업을 단순 산업으로 판단해 경쟁력만 제고하면 된다는 식은 매우 좁은 인식이다. 경쟁력 제고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산업으로서 품질과 가격 등의 경쟁력을 높여 국민에게 좋은 물건을 제공하고, 수출도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농촌 현실에서 경쟁력을 통해 발전 가능한 농가는 5%정도다. 나머지 95%의 소규모 영농집단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점이다. 이에 대해 이 정부는 정말 철학이 없다."
- 검역주권에 대해 문제제기했는데.
"이명박정부는 검역주권이 뭔지도 몰랐다. 청와대와 외교부, 통상교섭본부는 '검역주권 문외한'이다. 따라서 이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이명박 대통령과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에 있다. 이들이 검역주권도 모르면서 협상을 밀어붙일 때 농림수산식품부는 버텼어야 옳다. 광우병이 발생해도 수입중단 못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검역주권 문제는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강력 거부했어야 했다. 정운천 전 장관은 역사적으로 그 책임을 면키 어려울 거다."
- 또 다른 문제는 어떤 게 있나.
"판단착오다. 국가를 이끌어가는 정부는 미래에 대한 예측과 판단을 잘 해야 한다. 그런데 1개월도 안 남은 17대 국회에 한미FTA 비준을 요구했다. 들어줄 턱이 없다. 미국에 한국 쇠고기 시장을 대폭 내주면, 부시정권 임기 내 한미FTA 비준동의안이 처리될 거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제로다. 이명박정부는 중대 국면에서 계속 판단착오하고 있다. 정치를 모르는 일개 교수도 이런 판단을 하는데, 현 정부는 일개 교수만도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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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정국 무리수로 촛불 꺼진다? 판단착오 그만해라"
- 해결방안은 뭐가 있겠나.
"다수 국민은 재협상 이외에 해법은 없다고 말한다. 이 인식에 동의한다. 정부가 재협상 없이 이 국면을 풀려고 하니까 자꾸 무리수를 둔다. 공안정국을 형성하고, 사람들을 가두고. 그러나 또 이 국면에서 재협상이 가능한가,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정부는 국민적 요구가 분출하기 전에 미리 재협상을 선포했어야 했다. 촛불시위 초기에 협상은 분명 잘못됐고, 바로 재협상하겠다고 선언했어야 했다. 그런데 정부는 계속 국민과 싸웠다. 죽어도 재협상은 없다고 했다. 협상주체들은 자기 자존심이 훼손될까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았다."
- 현 단계에서 재협상이 가능하겠나.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재협상하겠다는 정도의 진정성을 가지고 중지를 모아나가야 한다. 재협상을 요구하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와 전문가집단을 매도할 게 아니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 자기 잘못은 덮어둔 채, 추가협상 했으니 촛불집회가 잘못됐다는 식으로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광우병 위험을 알리는 전문가들을 향해 당신 주장 틀렸으니 촛불 꺼라?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면 더 큰 화가 닥칠 수 있다."
- 정부는 촛불시위를 막으면 대충 끝나지 않겠나 생각하는 것 같은데.
"천만의 말씀. 그러니까 내가 '판단착오 정부'라는 거다. 촛불은 절대 안 꺼진다. 차라리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논의할 기구를 만들어라. 앞으로도 광우병 문제와 관련해서는 엄청난 사건들이 터질 거다. 이때 현실적으로 함께 풀어갈 수 있는 대화기구를 마련해야 한다."
- 이번 촛불시위에 아쉬운 점은 없나.
"농식품에 대한 안전성을 강화하는 계기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나, 우리 농업과 농촌의 중요성은 부각되지 않아 아쉽다. 우리 국민건강문제가 사실은 우리 농업과 직결된 문제다. 농업과 생태, 환경은 곧 안전한 농식품 문제로 연결된다. 이걸 적극 알렸으면 좋겠다. 정부에 새로운 농정철학이 세워지기를 바란다. 경쟁력 지상주의로 우리 농업이 안정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걸 제발 깨달았으면 좋겠다. EU와 미국이 엄청난 농업보조금을 쓰면서도 농업을 유지하는 이유를 좀 알아야 한다."
- 농업 이외의 부분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잘못하는 것은 뭔가.
"민주주의 역사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 운운하지만 옳은 표현이 아니다. 잘났던, 못났던 과거 역사를 부정할 수는 없는 거다. 사실 노무현정부가 한미FTA 원흉 아닌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쇠고기 문제를 4대 협상안에 넣어놓아 오늘날 이렇게까지 큰 문제를 만든 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무리 미워도 부정할 수 있는 역사인가. 잃어버린 10년 자체가 난센스다."
"먹는 문제가 좌우가 어딨나...이런 식이면 나라 어렵다"
- 정부와 한나라당은 최근 '미국산 쇠고기'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가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나 '쇠고기 수입재개 문제는 국민의 안전과 안심을 염두에 두고 과학적 근거에 따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이 보인 태도와 참 다르다. 후쿠다와 같은 인식은 없더라도, 국민 앞에서 미국산 쇠고기가 맛있다고 쇼를 해야 하나. 이런 식으로 하면 정말 이명박정부는 5년 내내 어려울 거다."
- 촛불시민들을 반정부 좌파세력으로 몰아붙이는데.
"먹는 문제에 좌우가 어딨나. 정부는 국민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이걸 요구하는 국민들을 향해 좌파 빨갱이 하는 것은 우매한 인식이다. 쇠고기 먹는 데도 좌우가 따로 있나. 농식품 안전에 대한 국민적 경고를 이런 식으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 정부의 산파노릇을 했던 한 사람으로 정말 잘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런 식이라면 나라가 어려워진다."
- 미국산 쇠고기 판매량이 점증한다. 한우농가에 미칠 영향은.
"매우 심각하다. 경제는 가격이나 수급량만 갖고 결정되지 않는다. 축산농가 생산농민에게는 당연 큰 영향을 끼친다. 내가 갖고 있는 소를 지금 팔아야 하나, 조금 더 있다 팔아야 하나 걱정하게 마련이다. 송아지 가격도 많이 하락했다. 한우가격도 낮아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료값도 폭등했다. 국제곡물가 폭등 때문이다. 도산 농민도 많아질 거다."
- 한우농가 사정이 어떤가.
"한우농가는 외국과 달리 1호당 평균 9마리를 갖고 있다. 몇십~몇백마리를 보유한 대규모 축산농민도 있지만 90% 이상이 소규모다. 이 90%의 한우농가가 문 닫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정부는 경쟁력만 강조한다. WTO, 신자유주의와 연계돼 경쟁력 지상주의만 강조하면 결국, 90% 이상의 농민은 죽으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
- 미국산 쇠고기 시장 개방으로 한우농가에 미칠 가장 큰 피해는 뭔가.
"농민의 심리적 공황이 제일 걱정이다. 농업은 한번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한다. 그런데 젊은 농민들이 계속 할지 말지 고민하게 됐다. 심리적 공황 상태가 지속되는 문제와 후계 인력 부족이다. 적어도 30~50만명은 농업에 종사해야 농촌이 유지되는데 걱정이다."
"강만수 장관은 경질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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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출범 초부터 농업문제가 배제된 이유는 뭐라고 보나.
"이명박 대통령과 경제장관의 인식 때문이다. 리더십 문제도 있다. 경쟁력 강조가 만고의 진리인 양 하지 않나. 나도 기독교 신자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기독교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 성경에는 낮아져야 높아지고, 남을 섬겨야 자기가 섬김을 받는다고 돼 있다."
- 강만수 장관의 경질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전폭 동의한다. 농업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진 분이 장관을 하면 농업문제를 풀기 어렵다. 또 농식품부 장관이야말로 농민 편에 서야 한다. 특히 농업관련 장관은 정부 안에서도 좀 다른 소리를 내야 한다."
- 한미FTA는 어떻게 전망하나.
"농업쪽 피해가 뻔한 상황에서 한미FTA를 동의할 수 없다. 국익에 도움 되니까 추진해야 한다는 논리를 대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노무현정부나 이명박정부 모두 한미FTA가 되면 대한민국이 선진국 된다는 장밋빛 환상에 빠진 것 같은데 결코 그렇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한미FTA를 만병통치약처럼 얘기하는 것은 국민을 얕보는 행동이다. 국회 비준이 남았으니 앞으로 촛불의제는 한미FTA로 가야 한다."
- 한나라당이 90년 민자당 이후 처음 거대 여당이 됐다.
"다수당이 됐다고 잘못 판단해 뭐든 밀어붙이려 한다면 광우병 사태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커다란 국민적 저항을 맞이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싶다. 수로 밀어붙이는 것은 우리 역사를 10년 아니 20~30년 후퇴시키는 일이다. 한나라당이 명확히 알아야 할 점은 현재 국회가 정확한 민의가 반영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명박정부 인기 좋을 때 한 선거결과다. 따라서 함부로 밀어붙일 생각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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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