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

독도 명예군수 25년 가수 정광태 씨

강개토 2008. 7. 24. 12:21
 
[서울신문]
독도는 ‘돌섬’이다. 전라도에서는 ‘돌’을 ‘독’이라고도 한다.
원래 울릉도와 독도에는 경상도보다 전라도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그래서 ‘돌섬’의 의미인 ‘독도’라 불렀다.
하여, 이곳에는 풀이나 자랄 수 있을 뿐이지, 대나무 같은 것은 전혀 없다.
그런데 왜 일본 사람들은 독도를 죽도(竹島)라고 자꾸 생떼를 부리는지 원….

이참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홍순칠,1929년 울릉도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한테 독도가 울릉도의 속도(屬島)라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6·25 참전 직후 1953년 4월 45명의 독도의용수비대를 조직했다.
그해 7월 독도 해상에 나타난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PS9함을 발견하고 총격전을 벌이며
쫓아내는 등 독도에 근접하는 일본 함정과 항공기를 여러 차례 격퇴시켰다. 그것도 6·25 때 쓰다 버린 소총과 박격포 등으로 말이다.

뿐만 아니다. 일본의 야욕을 미리 짐작한 그는 독도의 동도(東島) 바위 벽에
‘韓國領(한국령)’이라는 석 자를 크게 새겨 넣어 대한민국 영토임을 세계 만방에 알렸다.
그러던 1956년 12월, 무기와 독도수비대 임무를 국립 경찰에 인계하고 울릉도로 돌아가 독도의용수비대 동지회 회장으로 활동하다가 1986년 작고했다.

노래 인연으로 의용수비대장과 운명적 만남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인 1983년 7월25일.‘독도는 우리땅’을 불러 유명해진 가수 정광태(53)를 울릉도에 초청했다.
평소 이 노래를 자주 불렀던 그는 정씨를 무척 좋아했다.
둘은 ‘독도’라는 공통점으로 운명처럼 뜨겁게 만났다.

“이런 훌륭한 노래를 불러줘서 너무 고맙소. 당신 같은 사람이 독도군수를 맡아야 해요.”

그러면서 홍순칠은 마지막 독도의용수비대장 자격으로 감사패와 함께 정씨를 명예군수로 임명했다.
이후 정씨는 25년째 무보수 군수로 장기 집권(?)하게 된다.
뗏목탐사와 수영종단 등 울릉도와 독도를 수십차례 다녀오면서 나름대로 명예군수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뗏목탐사·수영종단 등 수십차례 독도 방문

지난 14일 일본 정부가 중학교 사회과목 지침서인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명기를 감행했을 때에도
“대한민국에 대한 재침략이 시작된 것”이라고 분노하며 정세균 통합민주당 대표 등과 함께 경찰청 소속 헬기를 타고 독도를 방문했다.
4일 뒤인 18일 오후에는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롯데 전에서 LG의 초청을 받아 시구자로 나섰고
5회말 종료 후 응원석에서 ‘독도는 우리땅’을 소리 높여 불렀다.

서울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 정씨를 만났다.
그에게 ‘군수님’이라고 호칭하자 “무슨 말씀,
1984년 독도를 처음 방문했을 때 예포를 발사하는 등 대통령에 준하는 예우를 받았기 때문에 군수가 아닌 대통령인 셈이다.”며 웃는다.
이어 “우리나라 대통령이 아직까지 독도에 한번도 간 적이 없다.”면서
“우리나라 영토인데 한번쯤 방문해서 주민이나 근무자들에게 격려하고 그러면 얼마나 모양이 좋겠느냐.”고 했다.

그는 또 8년 전쯤 금강산에 갔을 때 북한 안내원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여자 안내원이 “‘독도는 우리땅’을 부른 가수가 아니냐.”고 먼저 알아보자 옆에 있던 남자 안내원은
“그 노래 부른 지 얼마나 됐습네까. 노래만 불러서 독도를 찾갔시요.”라고 하더라는 것.
북한의 축구 국가대표선수 정대세도 최근 모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독도는 우리땅’을 자주 부른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기분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일본의 만행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예를 들어 부인이랑 함께 즐겁게 나들이를 하는데 일본사람이 대뜸 ‘내 아내’라고 주장하는 데 가만히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일본의 전략에 말려들 수 있다며 ‘무대응’을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사기꾼들이 사기를 치려면 얼마나 노력하고 궁리를 하겠습니까. 그런데 가만히 있다니요.
이번 일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재침략하려는 술수를 드러낸 첫 단계입니다.”

역사 등 근거 정부차원 장기 대응책 마련을

그러면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일본은 역사학자를 정부차원에서 지원하면서 지속적으로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논리를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일본이 떠들면 반짝 언론을 통해서 요란을 떨다가 금방 사그라집니다.
1954년 무렵 홍순칠 독도수비대장은 독도에 접근하는 일본 순시선을 총칼로 물리쳤고 당시 외무장관은 전투기로 공격하겠다고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일본은 광화문 한복판에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대통령이 독도에는 왜 못 갑니까.
앞으로는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에게 수학여행을 권장해 독도를 꼭 가슴에 두도록 해야 합니다.”

일본 비자를 요청했을 때 거부당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12년째 일본 입국비자 거부자로 살고 있습니다.
1996년 일본 고위 관료의 망언으로 독도 영유권 논쟁이 촉발된 뒤 SBS와 함께 독도 관련 추석 특집프로그램을 제작키로 했지요.
한국인과 일본인의 독도에 관한 인식을 인터뷰 형식으로 엮는 프로그램의 리포터를 맡았는데
일본 대사관으로부터 비자 발급에 결격 사유가 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참다 못해 저는 대사관으로 찾아가 욕이란 욕을 다 퍼부으며 비자관련 서류를 돌려받아 그 자리에서 박박 찢어버렸지요.”

▶‘독도는 우리 땅’ 노래는 어떻게 해서 부르게 됐습니까.

“그 노래는 1982년도에 발표가 됐지요.
당시에 ‘유머 1번지’라는 개그 프로에서 임하룡씨, 장두석씨, 김정식씨, 그리고 저,이렇게 4명이 포졸복을 입고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를 코믹하게 불렀어요.
TV 방영 직후 레코드 제작자가 우리를 만나자고 했습니다.
우리 넷이 약속장소에 갔는데 제작자가 너무 늦게 나왔어요.
임하룡씨, 장두석씨, 김정식씨는 너무 바빠 먼저 자리를 떴지요.
나중에 제작자가 오더니 기다리던 저를 보고는 ‘혼자라도 취입하자.’고 했어요.
얼마후 ‘젊음의 행진’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담당 PD의 주문으로 큰칼 옆에 차고 이순신장군 복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지요.”

5공화국 땐 ‘독도는 우리땅´ 금지곡 아픔도

▶방송금지된 적도 있었지요.

“5공화국 때였습니다. 왜 금지시켰냐고 따질 수도 없었던 상황이었지요.
당시 실세였던 허문도 문공부 차관이 하루는 저를 부르더군요.
녹차 한 잔을 주면서 자기는 독도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은데 애로사항이 뭐냐고 하더라고요.
노래가 금지돼 방송에서 안 틀어준다고 했지요. 다음날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렇게 좋은 노래를 누가 금지를 시켰냐고 오히려 저한테 물어보더군요.”

▶독도는 언제 처음 갔나요.

“1984년에 해양경찰청에서 초청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접안 시설이 없어서 1987년 돌아가신 독도 최초의 주민 최종덕 할아버지가 마중나온 작은 배에 뛰어내려서 독도에 들어갈 수 있었죠.
최 할아버지의 아들, 딸, 그리고 어부들이 7∼8명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너무 반가워하시면서 미역 등 해산물 선물을 많이 주셨지요.
또 독도 경비대에도 갔는데 예포를 발사하며 크게 환영했습니다.”

그는 현재 뮤직라이프엔터테인먼트 대표로 있으면서 가끔씩 방송출연도 한다.
요즘에는 독도 관련내용이 많다.
그는 어릴 때부터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고등학교 때 서울 YMCA에서 열린 ‘만우절 거짓말 대회’에 출전,1등을 차지하는 등의 경력을 쌓으며 개그맨으로 출발했다.
그가 1990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 것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라디오방송국을 경영하는 친구의 끈질긴 권유 때문이었으며 6년 후 귀국한 뒤 본격적인 독도사랑에 나섰다.
슬하에 딸과 아들을 두었으며 ‘기러기 아빠’로 경기도 탄현에서 혼자 살고 있다.
이를 두고 개그맨 전유성씨는 “너는 항상 그 자리에서 독도처럼 사는구나.”라고 표현한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그가 걸어온 길

1955년 서울 출생. 본적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20번지

74년 서라벌고 졸업.KBS-TV ‘젊음의 행진’ 데뷔

75년 TBC-TV ‘살짜기 웃어예’ 등 출연

78년 수도경비사 병장 전역

81년 명지대 무역학과 졸업

83년 KBS 남자가수 신인상 수상(독도는 우리땅)

84년 독도 첫방문.KBS 가사대상 동상수상(도요새의 비밀)

85년 김치주제가 발표

90년 미국이민. 샌프란시스코 한미라디오 ‘오후의 희망가요’ 5년 진행

2000년 8월 독도수호대와 울릉도∼독도 뗏목탐사

04년 8월 45명의 애국인사와 울릉도∼독도 수영종단

07년 한국연예제작자협회 이사

08년 현재 동협회 부회장, 독도명예군수. 독도홍보대사.

주요 히트곡 독도는 우리땅, 도요새의 비밀, 힘내라 힘, 김치 주제가, 화랑관창, 의병대장 곽재우, 계백장군, 광개토대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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