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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코미디언 서영춘

강개토 2009. 3. 10. 11:08

 

 

남들 실컷 웃겨놓고 본인은 엄숙한 표정에 '웃음보'
4형제가 연예인… '인천 앞바다… ' 등 유행어 제조기
책도 많이 읽고 최초 시도도 끊이지 않던 한국의 채플린

며칠 전 우연한 기회에 코미디언(개그맨) 최양락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그는 나한테 "우리나라 최고의 코미디언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하고 질문을 던졌다.

나는 서슴없이 "영원한 코미디의 황제는 서영춘이다"고 대답했더니 최양락이 벌떡 일어나면서 "저도 동감입니다"라고 했다.

또한 그의 멘토인 전유성도 그렇고 현재 활동하는 개그맨들도 거의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어째서 '서영춘'일까? 왜 그가 최고의 코미디언으로 인정을 받는 것일까? 1945년 이후 일반 무대에서 활동하던 희극인들은 아주 많다.

명진, 박응수, 김희갑, 장소팔, 고춘자, 양훈, 양석천, 서영춘, 백금녀, 곽규석, 구봉서, 배삼룡, 송해, 박시명, 이기동, 김뻐꾹,

남철, 남성남, 김희자, 이순주 등등 수백 명 이상이 활동을 했고 지금 세상을 떠난 이들도 많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서영춘을 최고의 코미디언으로 꼽는 이유가 무엇일까?

■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특별히 웃기는 외모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몸이 많이 말랐을 뿐이다.

함께 공연을 한 백금녀에게 번쩍 안길 때 사람들은 그를 고목나무의 매미라고 부르곤 할 정도였다.

키도 비교적 큰 편이고 얼굴 피부도 좋았다.

그런데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엄숙하기 때문이다.

남들을 실컷 웃겨 놓고 정작 본인은 엄숙하다. 무대 밖에서 그는 실제로 매우 엄하다.

그의 형제는 4명이다.

위로 형은 '부모'(유주용 노래)라는 노래를 작곡한 서영은씨이고 아래로 동생이 둘이 있는데 영수와 영환이다.

두 동생들이 모두 코미디언이다.

4형제 모두가 연예인이 된 것이다.

형인 영은씨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데도 마치 아버지처럼 어려워했다.

형 앞에서 무릎 꿇고 앉아 있을 정도 였다.

자연히 동생들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웃겨 주는 사람이 평시에 만날 때 엄한 표정을 지면 우습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의 딸(서현선)과 아들(서동균)도 매우 엄하게 자랐는데, 이 둘 역시 코미디언을 하다가 요즘엔 움직임이 많지 않은듯하다.

■ '유행어를 많이 만들었다.'

그에겐 별명도 많다.

동양의 채플린, 나무젓가락, 꽁생원 등등 인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살살이'다.

또 '가갈갈갈 갈갈이'도 있다.

최근에 박준형이 무를 갈아서 갈갈이 라고 하지만 무를 갈진 않았어도 '갈갈이'는 서영춘이 먼저다.

'요건 몰랐지?'라든가, '배워서 남주나'는 서영춘의 작품이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백반'은 물론이고, '인천 앞 바다에 사이다가 떠도 고뿌(Cup) 없이는 못 마셔요' 등등 정겨운 유행어를 그는 많이 생산했다.

■ '책을 많이 보는 코미디언이다.'

평소에 그는 술자리에 참석하는 것을 좋아했다.

좀 쑥스러운 이야기지만 그는 나하고 자주 술을 마셨다.

그의 콤비인 백금녀가 워낙 막걸리를 좋아하는 바람에 무교동 막걸리 집을 엄청나게 돌아 다녔다.

그때마다 서영춘은 나한테 충격을 주곤 했다.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한 독후감을 이야기 하는데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도 감당 못할 정도였다.

서양 고전은 물론이고 유명인들의 전기라든지 일본 월간지 문예춘추 등을 읽곤 했다.

코미디 소재가 되는 우리나라 고금소총과 중국 일본의 옛 이야기 등을 자주 읽기도 했다.

공부하는 코미디언이어야 팬들에게 새롭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 '처음으로 시도 한 것이 많다.'

남들이 미처 하지 못한 것을 처음 시도한 것들이 많다. 그를 흔히 세계 최초의 래퍼(Rapper)라고 말한다.

"인천 앞 바다에 사이다가 떠도 고뿌 없으면 못 마셔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백반.

지기지기잔짠 쿵잔짠.

영변의 약산 진달래 마구마구 밟지 말고 돌아가세요." 이런 것들이 오늘날의 랩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인지는 확인이 안되어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처음 한 것은 사실이다.

여장남자도 처음일 것이다.

여자인 백금녀가 남장을 하고 남자인 서영춘이 여자 옷을 입고 무대에 나오면 영락없이 거꾸로 부부다.

오죽하면 두 사람이 실제로 부부라는 헛소문이 나기도 했다.

그는 채플린을 존경했다.

많은 코미디언들이 채플린 따라 하기를 했지만 서영춘이 가장 비슷하다는 것을 모두 인정한다.

그는 동양방송 라디오에서 매일 저녁 5시에 뉴스 비틀기 형식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그 인기가 높았다.

■ '코믹 송의 선구자'

그의 노래'시골영감'은 지금도 사랑 받고 있다.

"시골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라. 차표 파는 아가씨와 실랑이 하네"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서울구경'이라는 제목으로도 불리 우는 데 최근에는 20대의 젊은 가수들이 개사와 편곡을 해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원래 이 곡은 미국의 조지 존슨이 부른 'The Laughing Song'을 1936년 가수 강홍식이 번안을 해서 부른 적이 있다.

강홍식은 눈물의 여왕인 배우 전옥의 남편이고 역시 배우인 강효실의 아버지이며, 최무룡의 장인이고, 최근 활동이 뜸한 배우 최민수의 외할아버지다.

이 노래는 그러나 서영춘이 부르면서 유명해진 것이다.

그리고 서영춘 버전과 존슨의 노래 멜로디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영춘은 1928년에 태어나서 86년에 세상을 떠났다.

36년 동안 코미디언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시절 국민들을 위로해주었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했다.

노래로 위로를 했고, '출세해서 남 주나', '여자가 더 좋아', '바보들의 청춘' 등 영화에도 많이 출연했다.

"코미디언들은 죽으면 꼭 천당 갈 겁니다. 왜냐면 살아서 남들을 즐겁게 해 주니까요"라고 한 그의 말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천당도 천당이거니와 그의 이름처럼 영원히 봄(永春)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상명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