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재연배우란이름의연예인이중성

강개토 2009. 3. 11. 11:59

재연 배우가 학원으로 간 까닭은?

연예 기획사 소속 연예인이 자살하는 시대,

혼자 연예인이란 직업으로 사는 직장인,

이중성

 

 

 


   커피전문점에서 이중성(35)을 기다린다.

주말이면 서울 홍대 앞 커피전문점은 빈자리가 없다.

한적한 장소 대신 이렇게 사람 많은 곳을 잡은 데는 이유가 따로 있다.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궁금해서였다.

 

  약속 시간이 되자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선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얼굴 그대로다.

착하고 바르고 밝은 이미지의 청년. 각 방송사 재연 프로그램에 감초처럼 얼굴을 내미는 재연 배우 이중성이다.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꽂힌다.

그러나 ‘악’하는 환호성은 없었다.

대신 몇 군데서 저음의 수군거림만 들려왔다.

 

“어, 저사람 이름이 뭐더라?”

 

 

 얼굴로만 치면 그의 유명세는 웬만한 톱스타를 넘어선다.

SBS '솔로몬의 선택(지금의 TV로펌 솔로몬)'이나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 KBS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 등에서 8년여를 재연 배우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사또에서, 실연당한 돈 없는 청년,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귀신 역까지,

이중성만큼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낸 배우는 일찌기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이름을 모른다.

그저 재연 배우라고 부를 뿐이다.

 

도대체 재연 배우라는 것이 뭔가?

배우가 상황을 재연하는 것일 뿐, 재연 배우라는 직업군이 따로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다.

연기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한테 재연 배우라는 낙인을 찍는 일은 가혹하다.

그러나 방송가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그렇게 분류하는 것을 어쩌랴.

미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한 채, 직업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재연 배우가 된 걸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 많이 들어요.

글쎄요. 전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는데.

제가 재연 배우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해서

지금의 톱스타들을 제치고 그 자리에 설 수 있었을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제 외모나 능력에 비해 과한 사랑을 받고 있는 걸요.” 

 

 

  연예인이란 직업을 선택한 이상 누구나 한 번쯤 스타의 꿈을 꾸지 않을까.

자신을 드러내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사생활은 과감히 포기할 만한 수입을 얻는 그런 톱스타의 자리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을까?

당장 연예 기획사가 내버려두질 않았을 테고.

그러나 이중성은 누구보다도 더 자족의 미덕을 잘 아는 사람이다.

“지금도 먹고 살기 괜찮은데요, 뭘.

학원 과외 아르바이트도 하고 뮤지컬 안무도 맡았고요.

물론 돈이 더 있으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더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계약금 몇 천만원 받고 기획사에 제 인생을 맡기고 싶지도 않고요.

전 이대로 평생 살아도 행복하거든요.

여기서 조금 잃어도 불행하지 않고, 더 가진다고 행복하지도 않을 것 같은 이 상태가 좋습니다.

 

이건 며칠 전 자살한 故장자연의 정반대 지점에 선 자신의 처지를 잘 설명해주는 말이다.

 

인기든, 돈이든 더 누리기 위해 자청해서 연예 기획사의 노예가 되는 현실에 대한 대안처럼 들린다.

장자연은 연예 기획사의 갈등으로 괴로운 심경을 글로 남겼다.

 

  그는 매니저 없이 활동한다.

일주인 시간 계획도 여느 연예인과는 다르다.

이틀간 꼬박 밤을 새워가며 촬영을 한다.

또 이틀은 고등학교 보습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또 하루는 연기학원에서 춤을 가르친다.

학원에서 버는 돈이 연기로 인한 수입과 맞먹는다.

그런 그가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져서,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 보육원을 찾아 봉사 활동을 하는 것도 그런 행복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재연 배우 수입이 시원찮아서 하게 된 학원 교사 일만 해도 그래요.

학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게 너무 재밌고 보람 있어요.

처음에는 몇몇 아이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이 제대로 공부를 가르치겠나 싶어서 무섭게 질문 공세를 펴요.

하지만 이내 마음을 풉니다.

수업 시간에는 공부도 공부지만, 이런 얘기를 많이 해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노력순이라고.

노력하는 만큼 행복이 주어진다고요.

제가 지금 사는 모습 그대로를 아이들에게 가르치죠.”

 

그는 천상 보통 사람을 연기하는 보통 사람이다. 보통 사람을 연기하는 별난 사람이 아니라.

 

 

  재연 배우로 널리 알려지면서 정극 연기의 기획는 오히려 줄었다.

사실상 봉쇄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방송가와 국민들이 그의 성실함을 모를 리 없다.

그의 팬 카페와 회원 수는 나날이 늘고 있다.

유망 신인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음반을 내주는 단체의 도움으로 디지털 싱글 음반도 제작중이다.

부드러운 발라드 곡이다.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곁들인 달콤한 스윙재즈로 다음 음반을 내는 것이 당장의 소원이다.

연극이나 뮤지컬 무대에 서는 것도 목표다. 고등학교 연극반 시절부터 줄곧 연극이나 뮤지컬 무대에 서는 것이 꿈이었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에 나온 걸 보고 저를 알지만, 저를 보려고 텔레비전을 튼 건 아니잖아요.

채널을 돌리다 보니 제가 나온 거지.

(연예인으로서 꿈이 있다면) 숫자는 적어도 좋으니, 제 연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일부러 찾아와 주시는 거죠.”

 

그가 소박하지만 행복한 꿈으로 말을 맺는다.

연예인 자살이 일상 다반사가 된 시대, 누가 톱스타가 아닌 연예인은 모두 불행하다고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