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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과 견공이 들려준 ‘워낭소리’

강개토 2009. 4. 23. 20:02

 




'대부'는 국내 시각장애인 안내견 1세대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1995년부터 2002년까지 7년간 시각장애인 양지호씨(32)의 곁을 지킨 길벗이었다.

고교생이던 양씨는 지금 목사가 됐다.


22일 인천 숭의동의 김인순씨(50·여) 집에서 만난 대부는 제대로 일어서지 못했다.

올해 나이 열일곱살. 사람으로 치면 80대 노구다. 선한 눈망울은 그대로다.

은퇴한 대부는 이제 거꾸로 사람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은퇴한 시각장애인 안내견 '대부'가 주인의 품에 안겨 있다.


남호진기자
대부는 93년 영국에서 태어난 래브라도 리트리버

수컷이다.

대부가 우리나라에 온 당시는 해외에서 안내견용 리트리버종을 들여오는 것이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외국에서 '한국은 보신탕을 먹는 나라'라며 개를 내주기 꺼렸기 때문이다.


강아지 대부는 안내견 학교에서 만 1살 때까지는 일반 애완견과 다름없이 자랐다.

그러나 사료 외에 사람들이 먹는 것을 탐내거나 사람에게 덤빌 때는 크게 혼이 났다.

식탐이나 공격성은 안내견 결격 사유 1호다. 하루에 한 시간씩 장애물이나 구덩이를 보면 멈춰서는 법과 계단이나 지하철 개찰구를 찾는 법을 배웠다.


대부가 첫 주인 양씨를 만난 것은 두 살에서 세 살로 넘어가던 해 겨울이다.

양씨는 서울맹학교 고등부 2학년이었다. 둘은 한 달간 적응 과정을 거치며 '인연'을 확인했다.

이후 양씨가 가는 길에는 대부가 함께했다.


대학생·대학원생이 된 양씨에게 대부는 친구를 소개시켜주는 메신저이기도 했다.

"흰 지팡이를 가지고 다닐 때는 말을 걸어 주거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데 대부랑 같이 다니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개 이름과 나이를 물어 보며 자연스럽게 친해지곤 했죠.

제가 사회의 일원이라고 느낌도 갖게 해줬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밤에는 학교 주변에 공사가 시작된 것을 모르고 양씨가 길을 잘못 들자 대부가 안내해 겨우 빠져나오기도 했다.

대부가 어디서나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택시는 고사하고 지하철에 타는 것도 쉽지 않았고,

밥을 먹으러 들어가는 식당 열 곳 중 아홉 곳은 '개'를 데리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양씨는 "대부를 혼자 밖에 둘 수 없어 식사를 포기하고 그냥 돌아선 적도 많다"고 회고했다.


2002년 겨울, 열 살이 된 대부는 양씨 곁을 떠났다.

안내견들은 8~10살이 되면 감각이 떨어지기 때문에 업무를 마감하는 게 원칙이다.

양씨는 대학원을 졸업한 후 목사가 됐고, 결혼해 아이도 낳았다.


양씨는 "우리는 애들(안내견)을 동물이 아니라 우리 몸의 일부로 생각해요.

애들은 나의 눈을 대신하고, 나는 애들의 형으로 서로 사랑하며 의존하는 사이"라고 말했다.



< 김보미기자 bomi83@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