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아마게돈>은 순수 국내 기술과 자본만으로 창작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 한다는 많은 이들의 의지가 모였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작아졌고, 결과적으로 ‘한국창작애니메이션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평가를 받아 모처럼 조성했던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 열기도 사라져 버렸다. ‘이현세가 해도 안 되는데’라는 이야기가 떠돌았고, 그는 “진짜 숨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많은 이들이 참여하고 기대했던 프로젝트를 망가트렸다는 자책감이 크게 느껴졌다.
“<천국의 신화>도 큰 실패 중 하나예요. 한국의 상고사를 상상력을 동원해 복원하겠다고 선언하고 100권짜리 기획물을 그리기 시작했죠.” 그런데 6권이 나왔을 때 검찰에서 음란물 배포 혐의로 기소했다. 동물과 사람의 구분이 없던 때, 도덕이라는 기준이 서있지 않은 원시 자연을 음란하다고 기소한 것이다. “천지가 창조되고, 동물과 사람이 구분되고, 도덕과 법이 형성되어가는 원시시대를 표현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이라 생각했는데 이를 음란물로 낙인 찍어버렸죠.” 이현세는 이것이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개인의 문제라면 적당히 타협하고 물러섰을 것이지만 그마저 피해버린다면 만화창작의 자유와 만화표현의 수위는 한층 더 위축될 것이라 여긴 것이다. “그래서 걸어온 싸움에 응했죠.” 금방 끝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법정 싸움은 6년간 계속됐고, 그 결과는 법원 인터넷 홈페이지에 뜬 ‘이현세 무죄’라는 한 줄이 전부였다.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큰 피해를 입었다. 무엇보다 그가 이 작품을 시작할 때 지니고 있었던 신명이 사라져 버렸다. 40대에 시작한 작품을 50대에, 그것도 50권이 조금 넘는 반토막 상태로 완결해버렸다. “무엇보다 50대가 되고 보니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40대 때는 중국의 요 황제를 천족의 자손이라고 표현할 만큼 기세 등등 했지만 50대가 되니까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졌어요. 그러다 보니 전체 서사에 일관성이 부족해졌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