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신문

미국의만화

강개토 2009. 9. 1. 12:50
미국의 만화예술은 1896~1907년에 급격히 성장했다.
이후 50년이 채 못 되어 직업훈련용의 소책자라든가 성서와 유명소설의 그림요약판,
만화적 요소없이 그림만 이용한 선전물, 사실상 희극적 내용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야기 등 각종의 다양한 출판물에 등장하게 되었다.
1896년 2월과 3월에 이미 만화를 계속 게재해왔던 〈뉴욕 월드 New York World〉의 천연색 일요판은 새로운 1컷짜리 시사만화를 실었다.
어린아이가 말하고 생각하는 내용이 자루처럼 생긴 노란색 옷에 적혀 있는데 어투는 세속적이며 내용은 함축적인 즐거움을 준다.
노란색은 애초에 기술적인 실험으로 사용했으나 말과 색채의 어우러짐이 대중들을 매료시키면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러자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옐로 키드 Yellow Kid〉의 작가인 리처드 F. 아웃콜트를 〈뉴욕 저널 New York Journal〉로 스카우트해갔다.
〈월드 World〉의 조지프 퓰리처가 더 많은 돈을 주고 그를 다시 데려왔고, 몇 차례의 줄다리기가 거듭되자 이같은 스카우트 경쟁으로 지금의 '노란 언론'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보다 전인 1890년대초 제임스 스위너턴은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San Francisco Examiner〉에
글이 없고 재미있는 주간 연재만화 〈작은 곰들과 호랑이들 The Little Bears and Tigers〉을 실었다.
빌헬름 부시의 〈막스와 모리츠 Max und Moritz〉처럼 이전에도 연속적인 등장인물을 그린 만화가 있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루돌프 덕스는 부시를 본떠 〈개구쟁이 아이들 Katzenjammerm kids〉을 그렸다.
아이들이 자아내는 소란스럽고 익살맞은 유머는 연속적인 등장인물 및 말과 함께 연재만화의 새롭고 특징적인 요소가 되었다.
대화의 내용을 넣는 풍선 안의 말은 1897년말경 아웃콜트가 주변적인 등장인물의 대화에 처음 사용했는데,
덕스는 이를 곧 모든 등장인물에 적용시켰고 또한 규칙적인 틀을 연속적으로 사용했다.
1902년 5월 아웃콜트의 〈버스터 브라운 Buster Brown〉이 시작될 무렵에는 연재만화의 모든 기본요소가 완성되었지만
그와 덕스의 만화는 현대의 잡지만화와 비교해볼 때 여전히 번잡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1905년 스위너턴은 〈뉴욕 선데이 저널 New York Sunday Journal〉에 〈꼬마 지미 Little Jimmy〉의 연재를 시작하면서 단순한 윤곽선과 극도로 생략된 배경,
상대적으로 큰 형태를 도입함으로써 일정거리에서 빨리 훑어보기에 적합한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냈다.
클레어 브릭스는 1904년 〈시카고 아메리칸 Chicago American〉에 희극적인 인물이 경마 예상정보를 제공하는 일간 연재만화를 게재하기 시작했다.
신문 스포츠면에는 그날의 유명 운동선수의 캐리커처 곁에 조그만 해설자가 반복적으로 등장했으나 이는 대개 1컷짜리 그림으로서 2, 3컷짜리 연속물은 거의 없었다.
한편 가장 중요한 사실은 연재만화가 여전히 일요판에 한정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1907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San Francisco Chronicle〉에 실린 버드 피셔의 〈머트 씨 Mr. Mutt〉(뒤에 〈머트와 제프 Mutt and Jeff〉로 개명함)는
가로 연재만화를 매일 연재물로 확립했다. 이렇게 해서 연재만화는 여러 신문에 만화를 배급하는 신디케이트 사업방식만 갖추지 못했을 뿐 모든 면에서 성숙기에 도달했다.
신디케이트 방식은 〈시카고 아메리칸〉의 편집인이었던 모제스 쾨닉스버그가 도입해 1913년 뒷날 킹 피처스 신디케이트라고 불린 배급자 연맹을 조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