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

안중근 동상 고국 와서도 ‘찬밥’

강개토 2009. 9. 3. 23:38

 

설치장소 못정해 나무상자에 넣어 방치

"어디에 있나요?"
"그게 저 …. 참, 답답하고 면목이 없어서 말이죠.
그냥 서울 모처에 잠시 보관 중이라고 해주시면 안 될까요."

최근 중국 하얼빈에서 서울로 옮겨 온 안중근 의사 동상(본보 8월12일자 보도)의 행방을 묻자
안중근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 정광일(49) 대표는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청년아카데미는 동상을 효창공원에 있는 안 의사 가묘 옆 사당에 49일간 보관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용산구가 허가하지 않아 공원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3일 오전 10시30분쯤 공원에서 승용차로 15분쯤 걸리는 흑석동 원음방송국 현관 앞.
길이 3.3m, 폭·높이 각 1.2m 크기의 나무 상자가 바람에 실려 오는 흙먼지를 그대로 뒤집어쓰고 있었다.
처마 아래에서 간신히 햇볕을 피한 상자는 무궁화가 새겨진 천으로 덮여 있을 뿐이었다. 생뚱맞기도, 쓸쓸해보이기도 했다.

방송국 주차관리인은 "2일 아침에 출근하니까 저 상자가 떡 하니 들어와 있더라.
안 의사 동상이 들어 있는 상자라는데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청년아카데미는 안 의사가 천주교 신자였던 점을 고려, 인근 성당에 두는 방안도 생각했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동상은 언제 어디로 또 옮겨질지 모른다.

2006년 하얼빈에서 설치된 지 11일 만에 철거되는 수모를 겪은 안 의사 동상이 고국에서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나무 상자에 갇혀 빛을 보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 햇볕을 제대로 볼지도 알 수 없다.
어디에 세워질지는 불투명하다. 동상을 국내로 옮긴 청년아카데미는 안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일인 다음달 26일 공공장소에 설치하고 제막식을 열 계획이었다.

국가보훈처를 비롯한 정부 기관은 동상을 서울시내에 세우는 데 신중한 입장이다.
오경준 보훈처 국립묘지정책과장은 "기본적으로 바람직한 일이지만 공공장소에 설치하려면 관련 단체나 유족과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한다.
안 그러면 나중에 불필요한 논란이나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동상 설치 문제를 함께 논의할 단체는
함세웅 신부가 이사장으로 있는 안중근기념사업회와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운영하는 안중근숭모회다.
두 단체의 입장은 엇갈린다.
기념사업회는 청년아카데미 측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힌 반면 숭모회는 해당 동상의 예술적 가치가 빈약하다며 등을 돌렸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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