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진핑<차세대 中최고지도자>의 결혼과 사랑

강개토 2011. 5. 7. 20:17


1986년 말 어느 날,

중국 남부 푸젠(福建)샤먼(厦門)에서 33세 남자와 24세 여자가 만났다.
남자가 물었다.

"성악에는 몇 가지 창법이 있소?"

여자가 설명을 하자 남자가 다시 물었다.

"미안하지만 난 TV는 거의 안 보는데. 당신은 무슨 노래를 불렀소?"

"'희망의 들판에서'를 불렀어요."

"어, 그 노래는 나도 들은 적이 있는데… 아주 좋습디다."

맞선 자리였다.

남자는 시진핑 (習近平· 왼쪽 ), 여자는 펑리위안(彭麗媛· 오른쪽 )이었다.


 

[조선일보]

 

 

당시 샤먼시 부시장이었던 시진핑은 지금 차기 중국 최고지도자로 낙점을 받은 상태다.

펑리위안은

중국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가무단 예술책임자(인민해방군 소장)로 있으며

'국민 가수'로 불린다.

펑리위안은 시진핑을 만났을 때 이미 군 가무단에서 부처장급 가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이날 만남은 펑리위안의 친구가 다리를 놓았다.

시진핑은 한 차례 이혼 경력이 있었고 펑리위안은 처녀였다.

펑리위안 집안에서는 시진핑과의 결혼에 반대했었다.

시진핑이 부총리를 지낸 시중쉰(習仲勛)의 아들로

소위 '태자당(太子黨ㆍ고관 친인척)'이었기에

집안 좋은 자식이 딸을 고생시키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다.

시중쉰은 당시에도 당중앙 서기처 서기라는 고위직에 있었다.

이듬 해인 1987년 9월 1일,

시진핑은 샤먼에서

베이징 의 펑리위안에게 전화를 걸어 샤먼으로 오라고 한다.

간단하게 결혼식을 올리자는 거였다.

펑리위안이 샤먼 공항에 내리자마자

시진핑은 그를 데리고 사진관에 가 즉석 결혼 사진을 찍었다.

이후부터는 일사천리였다.

기다리고 있던 결혼 등록 담당 관리가 결혼증을 발급했고

샤먼 시장이 전화로 시당위원회와 시정부 지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 7시 회식이 있다"고 알렸다.

시진핑은 멋이나 낭만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펑리위안도 그와 처음 만난 뒤 "연애를 할 타입은 아니다"고 했다.

 

시진핑은 첫 부인 커샤오밍(柯小明)과 3년을 못 넘기고 헤어졌다.

 

커샤오밍의 아버지는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에게 발탁돼

영국대사까지 한 직업외교관 커화(柯華)였다.

 

시진핑과 커샤오밍은 결혼 후 불화설이 나돌더니

커샤오밍이 영국에 가서 살겠다고 고집하고 시진핑이 동행을 거부하면서 파경을 맞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진핑과 친했다는 한 교수는 "두 사람은 이혼 직전 거의 매일 부부 싸움을 했다"고 회고했다.

성격 차이와 신분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소문이 많았다.

시진핑은 중국 최고지도자 반열에 든 사람 중 드물게 여성 스캔들 소문이 있다.

펑리위안과의 결혼 3년차였던 1990년, 샤먼 화이(華藝)방송의 사회자였던 멍쉐(夢雪)와의 염문이다.

 

당시 샤먼 일대엔 두 사람이 상당히 밀접한 관계라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았다고 홍콩 언론들은 전한다.

펑리위안이 공연 등을 위해 시진핑을 떠나 있는 날이 많아 시진핑이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시진핑은

화면 잘 받는 명사 부인을 둔 것과

이혼 경력, 스캔들 소문까지 있어 이전 최고지도자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에 대한 중화권 언론들의 평가엔

"능력 보통"

"수성(守城) 충분, 개척정신 부족"

"순종형" 등의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가 50대 고위간부 중에서

가를 '안정적으로'이끌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최고지도자감이라는 역설적인 평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