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신문

[스크랩] 불가능한 이야기를 현실로 만드는 예술가-이정문

강개토 2008. 6. 1. 08:55

선생은 자신의 전시회를 이렇게 소개했다. 나역시 만화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처음이어서 관심이 있던 터였다. ‘불가능 없는 이야기들’이란 제목이 우선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이정문, 불가능 없는 이야기들-철인 캉타우와 심술가족’을 보러 나는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출근길 인파로 북적이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곳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숨어 있을 거라는 기대를 안고. 만화인생 48년을 살아온 현역 작가전이란 타이틀만으로도 이미 전시회는 충분히 빛나고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3월의 꽃바람을 맞으며 버스는 어느덧, 청강문화산업대를 향하고 있었다. 100년 가까이 되는 우리나라 만화 역사가 조금 후면 한눈에 펼쳐질 것이었다. 게다가 1960년대 국내 최초 SF의 새 장을 열었고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심술만화로 심술 가족의 계보를 꿋꿋이 이어온 만화 역사의 산증인의 전시회를 보려니 조금 설레기도 했다.

“어서 와요! 멀리까지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나도 방금 왔어요.”

전시회장은 만화가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줬다. 설계도면까지 완성한 철인 캉타우의 거대한 몸체가, ‘심술’의 계보를 이어온 심술 캐릭터들의 올스타전이 눈길을 끌었다. 한국 만화 역사의 산증인인 이정문 선생의 만화 인생이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선생님의 만화 인생이 여기 다 모였네요!” 라고 감탄하자 “우선 내 안내를 받으면서 구경부터 해요.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갈수록 근사해지니까 기대해도 좋아요. 설명을 해 줄게요.” 선생은 덤덤하게 말을 이으며 안내를 시작했다.

특이한 건 전시회장 입구에 그 흔한 화환 하나 없는 것이었다. 대신 쌀 포대가 눈에 들어왔다. “꽃보다 쌀이 낫지. 꽃은 받는 사람만 좋지 어디 쓸 데가 없잖아요. 내가 가져오지 말라고 했어. 이거 다 좋은 일에 쓸 거예요. 여기 상상마당에서 보내준 쌀도 있어요.” 라며 웃는다. 불우이웃돕기에 보태질 쌀이었다. 앞으로 전시 문화가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선생은 갑자기 요즘 전시 문화에 대해 심술을 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심술통’으로 변하는 선생을 잠시 보고 말았다.

선생은 ‘이정문, 불가능 없는 이야기들-철인 캉타우와 심술가족’ 전시회를 상상마당 회원들을 위해 직접 안내하겠다고 나섰다.
젊은 만화가들에게 힘내라고 아자, 아자 파이팅 포즈도 빼놓지 않았다. 선생의 유년시절은 유복했다. 어릴 적 집에 영사기가 있을 만큼 부족한 것 없이 자랐지만 한국 전쟁 때 잠시 일본으로 건너 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그때부터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해야만 했다. 그 때부터 안 해본 일이 없다. 15살에 이미 구두닦이, 신문팔이를 하며 생계를 이어 나가야만 했다. 힘든 와중에 선생을 웃게 만들고 꿈꾸게 만든 것은 언제나 ‘만화’였다. 유일하게 만화를 그릴 때만 행복했던 그는 제 1회 신인만화공모전에 가작으로 정식 등단을 한다. 그의 나이 18세에 심술첨지가 탄생한 것이다.청강만화역사박물관에는 이정문 선생의 ‘또 다른 작업실’이 있다. 선생은 전시회장에 옮겨 놓은 자신의 작업실이 신기하다. 앉자마자 왠지 만화를 그려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 SF의 새로운 장을 연 철인 캉타우와 뚝심 있게 심술 캐릭터로 대를 이어온 심술가족이 모두 이 작업실에서 탄생했다. 만화가의 숨은 노력이 이 책상에 숨어있는 것이다.혹시 만화를 보기 위해 껌을 사 본 세대라면 향수에 젖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롯데에서 히트를 쳤던 만화를 보라! 하루에도 껌 수십 통을 씹었던 기억이 절로 난다. 오로지 만화를 보기 위해서 말이다.

2006년 3월 10일, 선생은 철인 캉타우의 설계 도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70년대 뭇 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철인 캉타우는 그 후 30년이 훨씬 지나서야 제대로 된 내부구조를 갖추게 된 것이다. 캉타우는 ‘깡따구’에서 비롯된 말이었다. 심술에도 대가 있기 마련이다. 심술이란 캐릭터 하나로 족보를 만든 선생답게 이번엔 심술 올스타 쇼를 만들었다. 만화가는 식모나 개마저도 심술의 족보에 넣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89년도와 91년도 신문에 연재한 비슷한 소재의 만화에 대해 한 독자가 항의 편지를 보내왔다. 지금으로 따지면 네티즌의 댓글에 해당한다. 어쩌다가 한번 있는 일에 용케 걸려든 것인데 자세히 보면 소재만 같을 뿐 똑같은 내용은 아니다. 이런 독자가 있기에 선생의 심술이 날이 갈수록 단수가 높아지지 않았나 싶다. 매달 잡지와 신문에 연재를 하며 원고료로 생계를 꾸려나가던 만화가는 어느 날 자신의 원고료가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보기 시작한다. 60년대 아리랑 잡지에서 400원을 받았다. 그 당시로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리고 전북 무주에 사는 만화 애독자에게 받은 팬레터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사소한 것 하나도 버리지 않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창작자라면 누구에게나 습작의 세월이 있다. 하지만 5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자신의 습작 원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선생은 만화를 그린다면 자신처럼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습관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습작기 시절 선생은 주로 SF적인 상상력으로 만화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하늘을 날고 싶었다. 언젠가 그렇게 되는 날이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그것이 SF의 시작이었다. 우주선, 비행기, 정의로운 흑기사가 주로 등장했다. 그리고 꿈은 이루어졌다. 상상은 언젠가 현실이 된다. 만화에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더니 훗날 현실이 되어 있더라는 말이다! 만화는 불가능 없는 이야기의 표본이었다.

의성어는 만화에서 생명이다. 움직임이 많은 장르일수록 생동감을 안겨준다. 아마추어 만화가들에게 의성어를 효과적으로 연습하라는 말을 남겼다.선생은 사진 위에 글씨를 쓴다. 사진도 만화처럼 꾸미는 것이다. 사진 편집기를 이용해 말풍선을 그려 넣는 요즘과 오래전부터 선생이 재미삼아 해왔던 사진에 이야기를 써 넣는 것이 다를 게 없다. 선생은 세대를 앞질러 살고 있었다. 심술 캐릭터의 우스꽝스런 표정이나 생각들이 선생의 모습과 일치한다. 찍은 사진을 보면 선생이 얼마나 유쾌한 사람인지 알 수가 있다. 유쾌한 반전이 있는 심술 만화처럼! 이제 전시회에 가면 꽃 대신 쌀을 선물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심술통의 호통을 들을 것이기에!


불가능 없는 이야기들
불가능한 이야기란 없다. 적어도 만화에선 그렇다. 만화적 상상력은 언젠가 현실이 되곤 한다. 선생은 불가능한 일은 긍정의 힘으로,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생은 만화가를 꿈꾸는 혹은 만화를 그리는 상상마당의 회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라고 했다. “많이 상상하고, 많이 정리하라! 그리고 많이 그려라!”
전시회장과 7킬로미터 떨어진 작업실에 들어가 아직도 마감과 싸워야 하는 현역 만화가 이정문 선생.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한결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비결도 마감이라는 삶의 리듬 때문 아닐까. 그렇게 긴장하며 새로운 심술을 연구하다가 어느새 자신이 더 심술을 부리게 되고, 하여 심술 999단을 넘는 원조 심술통이 되었지만, 아직도 심술로 만화를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책상 앞에서 종일 ‘심술’을 부려보다가 안 풀리면 산보를 하곤 한다. 하루 2만보 이상을 걸으며 세상의 정의롭지 못한 것들에 대해 심술 부릴 준비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반짝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한다. 언제나 메모하고 기록하는 습관은 그렇게 습작하던 시절부터 가졌던 거 같다.

신선한 아이디어와 식지 않는 상상력 때문일까. 선생의 만화는 요즈음 트렌드와 잘 맞아 떨어지는 감각을 지녔다. 심술통이 호통개그를 닮았는지 호통개그가 심술통을 따라하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심술통과 다른 새로운 캐릭터를 연구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 가지를 제대로 알고 끝까지 밀어부쳐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개성 있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단다. 심술가족 같은 경우 틀이 정해져 있기에 이젠 심술의 내용과 강도를 바꾸기만 하면 된다. 무엇이든지 처음이 중요하다. 유혹도 많았다. 개성보다는 유행에 따라 만화를 그리다 하루 아침 몰락한 유명작가들을 숱하게 보아왔다.

유행 보다는 개성과 고집 하나로 심술의 계보를 이어온 그의 전시회는 분명 후배 만화가들에게 귀감이 되는 특별한 전시회였다. 만화가를 꿈꾼다면 청강만화역사박물관에 와서 선배들의 ‘정신’을 배워야 할 것이다. 여긴, 불가능한 이야기를 가능하게 해주는 만화세상이다!

출처 : 상주커피가게
글쓴이 : 시다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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