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신문

[스크랩] 시사만화가 마태식

강개토 2008. 6. 1. 08:55

◇ 시사만화가이자 인권운동가가 된 마태식씨 ⓒ대구데일리안
시사만화가 마태식씨. 어릴 때부터 해오던 그림이 작품으로써 인정받은 것은 1980년 여름 선데이 서울에 실리면서 부터였다. 책에 실린 작품을 보고 있는동안 방안이 빙글빙글 도는 현기증을 느꼈고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제 볼을 세게 꼬집어 보기도 했다.

"평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던 저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고 큰 기쁨이었다 . 이후 여러 신문잡지에 제 작품이 빈번히 실리고 팬레터도 받는 등 나름대로의 인기관리(?)도 필요할 정도가 되었다."

보통 만화가가 되려면 유명 만화가 밑에서 오랜기간 문하생으로서 기본기를 다져야만 하지만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처럼 만화 대학이나 학원도 없었던 시절, 평소 그림 잘 그리는 아들을 자랑스러워 하셨던 선친이 어느 날 많은 양의 신문을 가져 오셨는데 모두가 미국만화 신문이었다. 당시에는 영어를 전혀 모르던 10대 초반이라 컬러와 흑백으로 된 만화의 내용을 전혀 알 수 없어 나름대로 이해를 해보려고 애썼다.

다행이 글이 거의 없는 시사만화도 꽤 있어서 만화의 특성과 표현방식 등을 이해하고 창작으로 옮겨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20대 중반에 들어서 원로 만화가 박기준 선생님의 “만화작법” 이라는 책을 접하면서 기본이론과 표현력을 터득하게 되었다.
◇ 시간이 나면 시내곳곳을 다니며 장애인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대구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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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여러 공모전에서 대상 등을 차지하면서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조명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고 또한 많은 분들이 동참하기를 바라는 내용이 많았다 .

현재 연재중인 곳은 팔공 메아리, 동일, 재활의 선봉, 세상 밟기 등이다. 한 작품이 만들어 지려면 짧게는 1~2 일 길게는 10일정도 걸린다.

원고 마감시간을 몇 시간 남겨두지 않았는데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머리만 감싸 쥐고 애 태울 때가 많고, 갑자기 뭔가가 떠올라서 정신없이 그리다 보면 밤을 하얗게 새기도 했다.

그는 언젠가부터 만화를 그리는 일 외에 또 하나의 일을 얻었다.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예전엔 장애인에 대한 사회나 정부의 관심과 배려가 거의 없어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바깥출입 은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뿐더러 집안에서 조차도 차별을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막연한 생각만 해오던 차에 서울을 가던 중 휴게소마다 이전에 없었던 경사로와 화장실, 전용 주차장이 설치되어 불편 없이 잘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의 마음속에서 “네가 이것을 사용하니까 얼마나 좋니? 그런데, 이제껏 너는 다른 장애인들을 위해 해 놓은 것이 얼마나 되니?” 너무나도 강한 목소리가 그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 생각에 사로잡히다 보니 갑자기 푸른 하늘을 대하기가 힘들만큼 그의 마음은 무거워 졌다. 그 날 결심을 한 그는 그가 갈 수 있는 모든 곳에서 장애인 인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이전 그가 살던 신천동 동사무소의 장애인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채 몇 년 동안 방치 된 것을 동장과 사무장등 관계자들과 1년간이나 만나 요구한 끝에 추경 예산 700만원을 들여 수리한 사실이 있었다.
◇ 밤을 새어가며 작업을 해야 할때도 많다 ⓒ대구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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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도 있었다. 이민 근로자들에 대한 관심도 많아서 외국인 근로자들과도 대화를 자주 하는데 한번은 시내 인도네시아 식당에서 만났던 A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한 30명쯤 되는 중, 고등학생들 그룹이 몰려다니면서 밤낮없이 자기를 위협하고 괴롭힌다”는 절박한 내용이었다.

그들은 몇 달 전부터 이유없이 지기를 괴롭히고 동네 어디서든 마주치면 싸우자고 하면서 위협하고 휴대폰으로도 욕설과 문자를 시도 때도 없이 보낸다는 것이다.
“그럼 경찰에 신고를 하지?”

그의 반문에 A씨는 고개를 떨구며 불법체류자라서 그것도 힘들다고 눈물을 글썽거리는 것이다. 한참 망설인 끝에 위협을 한 한국 학생에 전화를 해서 A씨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이라고 소개를 했다.

그리고나서 학생들의 얘기를 들어 보니 어느날 PC 방에서의 한 말다툼이 격한 감정으로 발전해 이제는 가만 놔 둘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A씨가 가족을 위해 머나먼 나라에 와서 힘겹게 일하고 있는 사람인데 언어도 서툴고 많은 것이 낯선 가운데 일어난 순간에 실수인 것 같으니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주도록 간곡히 부탁했더니 그 학생은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10여일후 A씨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이젠 아무도 저를 괴롭히지 않아요 ,정말 고마워요 아저씨.”

마씨는 또 영어와 일어에도 능통하다. 14년 전에 길에서 우연히 만난 미국인 친구들로부터 영어회화를 배워 말문이 트였고 일어까지 마스터했다.
◇ 사회문제를 꼬집는 시사만화 한편 ⓒ대구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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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는 배우기 무척 힘들었는데 당시 주위에는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전혀 없어서 서울 지역 장애인 단체에서 주관하던 국제회의에 참가하면서 책과 테이프로만 연마 했던 것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실습하고 일본을 오가며 우정도 쌓게 되어 이젠 친한 친구들이 되었다.

처음에는 5개 국어를 목표로 시작했지만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 중국어 ,스페인어, 러시아는 끝내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겨우 기본적인 인사는 할 정도다.

만화가로서 외국어를 하게 되면서 미국의 유명한 오레곤 대학의 브루노 교수와는 각별한 사이로 지내고 있기도 하다.

마씨에게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면 전 세계를 혼자서( 동반자 helper 없이 ) 일주 하는 것이다. 스폰서가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가고 싶다고 한다.

그는 장애인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생각부터 떠올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어려움속에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 자신이 끈질기게 사회의 모범생으로 사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했다.
◇ 나의 친구 브루노 ⓒ 대구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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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시사만화만을 그리고 있지만 어릴 적엔 과학자로서의 꿈도 가진적이 있어 아직도 그 열정은 뜨겁다.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SF 만화를 그려 보고 싶고 장애인 문인협회 이사로서 많은 장애인들이 좀 더 문학과 예술 분야에 참여하실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는 또 한때 도장방을 운영했는데 전자인증이나 컴퓨터 도장파는 기계 등에 밀려 경쟁력을 잃으면서 개점휴업상태. 대신 그는 도장파는 기술로 또다른 봉사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에 앞장 서고 있는 군부대 장병들을 위해 답례로 도장을 하나 둘씩 만들어 주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만든 ´답례용´ 도장만 600여개가 훌쩍 넘는다고.....
[이종납 대구 데일리안 편집장]
출처 : 상주커피가게
글쓴이 : 시다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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