作家 · Writer

한비야의서재는 사고뭉치 다.

강개토 2009. 9. 28. 19:31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C7%D1%BA%F1%BE%DF&sm=top_hty&fbm=1

이 세상을 모두 도서관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

제 서재는요, 사고뭉치에요. 생각을 많이 하게 해주는 곳이고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이 방에서 책도 썼고, 이 세상을 모두 도서관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도 여기서 꾸고 있어요.

여기에는 책만 있는 게 아니라, 사실 이 창문을 열면 바로 앞에 산이 있고, (뒤에도) 산(사진)이 걸려있고....

책과 산, 제가 제일 좋아하는 두 가지가 한꺼번에 모여있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딱 한 군데 이야기하라고 하면, 바로 여기, 사고뭉치입니다.

“한비야 팀장님 책 읽을 시간 있으세요?” “당연하죠"

제가 책을 사러 가면, ‘책 읽을 시간 있으세요?’

이렇게들 물어보세요. 당연히 있죠. 저는 일부러 차를 안 사요. 지하철 타고 다녀요.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어요. 직장까지 왕복 한 시간 반은 책 읽는 시간이에요. 해외에 다녀도 시간 있어요.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 비행기 갈아타는 시간,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 이런 자투리 시간에 읽는 책만 해도 일년에 20권은 되는 것 같아요.

 

다섯 시간 만에 사람을 다르게 만들어 주는 책

책을 이렇게 열심히 읽는 이유는, 책은 전 인류의 지혜잖아요, 독서는 그 지혜의 보고에 한 개인이 빨대를 꽂고 있는 것이고요.

빨대만 꽂고 있으면 언제든지 우리가 세상의 지혜와 만날 수 있는……책 말고 그런 게 뭐가 있을까요?

첫 페이지를 펼 때와 맨 마지막 페이지를 닫을 때 다른 인간이 될 수 있는, 다섯 시간 만에 그렇게 되는 게 뭐가 있을까요?

저는 책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책이 있어서 평생 심심하다는 말은 이제 안 하겠구나

 

실은 어렸을 때는 책을 설렁설렁 읽었어요.

숙제 내주면 읽고, 독후감 써오라 그러면 언니 것 베끼다 맞고 그랬죠.

사실 ‘책이 있어서 내 평생 심심하다는 말은 이제 안 하겠구나’ 라고 생각한 것은 고등학교 때에요.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딱 우리 눈높이에 맞는 100권의 독서 목록을 주셨어요.

보통 100권의 목록을 보면 ‘니체’, <에밀>같이 고등학교 1학년들이 읽기에는 어렵고 지겨운 책들이 들어있잖아요.

그런데 그 선생님은 정말 우리한테 딱 알맞은, 도서관에서도 금방 구할 수 있고 읽고 바로 돌려볼 수 있는 그런 책을 권하셨어요.
그런데 또 제가 그 책을 다 살 수가 없잖아요.

비싸기도 하고.

그 때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제가 도서관에만 가면 ‘비야 왔구나’ 하시면서 책 찾는 것도 도와주고,

대출된 책이 반납되면 우리 반까지 와서 말해주시고…… 사실 그 선생님 덕분에 책을 다 읽었죠.

그 선생님이, 지금 생각하면 일생의 은인인 것 같아요.

<1년에 100권 읽기 운동본부>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선생님들의 응원을 받아가며 일년에 딱 100권을 읽고 났더니 평생, 이렇게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어요.

그 이후로 일년에 100권 읽기를 거의 매년 했고요.

사실 일년에 100권을 읽는다는 것은, 많다기 보다는 늘 책에서 손을 떼지 않는 정도, 그리고 편식하지 않고 두루 읽을 수 있는 정도에요.

그리고 누군가 ‘뭐 재미있는 책 없어?’ 하고 나한테 물을 때 재미있는 책을 권할 수 있는 정도인 것 같아요.
제가 지금 긴급구호 팀장으로 정말 가슴 뜨거운 삶을 살고 있지만, 그것 이외에 또 다른 가슴 뜨거운 삶이 있다면 책을 쓰고, 읽고, 그리고 권하기에요.

책을 권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요. 좋은 책을 서로 권해서 읽는, <1년에 100권 읽기 운동본부>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제가 본부장 했으면 좋겠어요.

편식하지 않는 독서

 

그런데 보통 권하는 목록을 보면 너무나 딱딱한 책만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독서를 밥상이라고 생각해요.

주식도 있고 부식도 있고, 그 다음에 후식도 있고 간식도 있고. 주식으로 읽어야 되는 책 중에는 어려운 책도 있죠.

책상 앞에 앉아서, 줄 치면서 머리를 쓰면서 읽는 책 말이에요.

그 다음에는 반찬, 그 중에는 맛있는 것도 있지만, 몸에 좋아서 먹는 것도 있는 것처럼, 다양하겠죠.

후식처럼 달콤한 책도 있어요. 그런데 사실 이건 영양가도 별로 없고 살만 찌고 그런 책이에요.
그런데 주식같이 딱딱한 책만 권하면 재미없잖아요.

어떻게 맨날 밥만 먹고 살아요?

국수도 먹고, 만두도 먹고 반찬도 여러 가지가 있어야 되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엄마가 꼭 먹으라고 챙겨주는 영양가 있는 음식도 먹는 것처럼 좀 골고루 권해주면,

'공부에 도움이 되거나 보기는 싫은데 봐야 한다', 이게 아니라 '재미있게 읽으면서 저절로 지식과 교양을 쌓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알게 될 거에요.

이렇게 골고루 재미로 읽은 책이 경험의 스펙트럼을 확 넓혀주게 될 거에요.

그렇다고 해서 꼭 먹어야 하는 거, 좋아하진 않지만 꼭 먹어야 되는 것도 세상에 있다는 것도 잊으면 안돼요.

아니면 이빨 다 빠져요, 말랑말랑 한 것만 먹으면.

책을 혼자 읽고 끝내면, 가슴이 터져서 살 수 없어요.

예전에 중국에 어학연수를 갔을 때, 사람들에게 책 좀 보내달라고 애걸복걸해서 모은 100권으로 도서관을 만들었어요.

제가 있던 방 번호를 따서 419 도서관이요. 두꺼운 대학 노트가 꽉 찰 정도로 대출 장부가 찼었어요.

지금 우리집은 독바위 도서관이에요.

책 빌려주고, 연체하면 벌금 받고. 그러니까 (보스톤에 유학을 가서도) 어차피 제 주위에는 누군가가 보내거나 내가 구해오거나 해서 책이 모이겠죠.

저는 책을 읽으면서 혼자만 좋다고 끝내면, 가슴이 터져서 살 수가 없어요. 누구한테라도 이야기를 해야 해요.

그런데 보스톤에는 지금은 아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단 한 명도 없지만, 가면 금방 사귀겠죠?

그러면 좋은 책, 정말 재미있는 책, 마음에 남는 책을 권하면 아무리 바쁜 유학생들도 다 읽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렇게 보스톤에도 또 제 주변에는 도서관이 생길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