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길

나는 권철신이 좋다 ㅎㅎㅎ (1)colleGian / 전철에서 펼친 것

강개토 2010. 3. 6. 07:55

"차세대 리더 키울 시간 턱없이 부족한데 교수들 일찍 퇴근하고 방학땐 학교 비워"

24년간 연구실서 먹고 자며 교육… '入室修道(입실수도)' 권철신 교수 마지막 강의
이달 말 정년퇴임… 일요일만 가족과 보내 대부분 제자들도 연구실서 살며 공부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이 0.1% 핵심인재 되는게 꿈… 아내와 못했던 '연애' 새로 하고 싶어요"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0.1% 핵심인재가 돼야 합니다.
제 소원이자 꿈입니다.
저는 그 프로젝트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마지막 수업, 마치겠습니다."

지난 30일 밤 11시 경기도 수원시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 2공학관 4층 세미나실.
160㎝의 키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권철신(權哲信·66) 교수의 목소리는 떨렸다.
주름이 깊게 팬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66㎡(20평)짜리 강의실을 가득 메운
 30~40대 대학교수와 대기업 부장 등 권 교수의 제자와 석·박사 대학원생 14명,
권 교수의 부인 하옥수(64)씨가 모두 일어서 박수를 보냈다.
학교 연구실에서 먹고 자는 '입실수도(入室修道)'로 연구와 제자양성에 매진한 권철신 교수(시스템경영공학과)가 이달 말 정년을 앞두고 마지막 강의를 했다.

24년간의 교수생활을 마감하며 30일 수원 성균관대학교 자연대학에서 마지막 강의를 하고 있는 권철신(맨 오른쪽) 교수. 졸업한 권 교수의 제자들과 석·박사 대학원생들이 그의 마지막 강의를 함께 들었다./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권철현(63) 주일대사의 친형인 권 교수는 'R&D'(연구개발) 공학 분야의 선구자로 통한다.
신기술과 신제품을 개발할 때 필요한 시스템과 매뉴얼을 구축하는 학문으로, 그는 이 분야 논문만 193편을 써냈다.
권 교수는 24년 교수생활을 똑같이 반복했다.

월요일 아침이면 부인 하씨가 싸준 일주일치 반찬을 양손에 챙겨들고 나갔다.
토요일까지 먹을 김치와 멸치조림, 더덕부침 등이 반찬통에 담겨 있었다.
잠자리는 33㎡(10평)짜리 연구실 소파였다.
토요일 저녁에 귀가하는 권 교수가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일요일 딱 하루였다.
그는 이 연구실에서 180여명의 석·박사를 배출했다.
대부분의 제자는 대기업이나 강단에 진출했다.

마지막 수업을 시작하기 전, 권 교수는 한참 동안 자신의 연구실 서재를 둘러봤다.
권 교수가 강의실에 들어오자, 제자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오른손에 볼펜을 쥐었다.

"오늘 수업은 '기술예측'입니다.
기업들이 제품을 팔기 전에 시장수요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만드는 연구분야죠.
발표부터 들어봅시다."

발표자의 서두가 길어지자 권 교수가 소리쳤다.

"구체적인 설명으로 바로 들어가! 핵심만 전달하라고!"
수업 도중 그는 우리나라 대학 강단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었다.

"일찍 퇴근하고 집에 가는 교수들, 해외여행 간답시고 학교는 텅텅 비워두는 교수들.
그렇게 해선 인물을 못 길러내.
시간이 없어요.
방학 때도 연구하고 제자들 교육시켜야 해. 노벨상 하나 없는 우리나라에 지금 차세대 리더가 없다고!"

한양대 공대를 거쳐 1978년 도쿄대 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딴 뒤
미국 조지워싱턴대 초빙교수를 지낸 권 교수는 1986년 성균관대에서 강의를 맡으면서 '입실수도'에 들어갔다.
스님이 입산수도(入山修道)하듯, 연구실에서 연구에만 몰입하자고 권 교수 스스로 결심한 게 입실수도다.

 

 

 
"선진국 교수들이 영양실조로 이빨이 빠져도 밤낮 연구실에 있는 모습을 보고 '나도 연구실에서 살아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여름방학 때마다 제자들과 함께 4주 동안 250시간을 공부하는 '지옥훈련 세미나'를 열었다.
대부분의 제자는 여름휴가 5일 외엔 학교 연구실에서 살며 공부했다.
그는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하루 17~18시간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1년, 2년이 지나면서 가족들도 힘들었다.
권 교수의 딸 서림(31)씨는 "초등학생 때 아빠한테 '평일 중에 하루만 놀다 가라'고 수도 없이 전화했다"고 했다.
아들 동주(34)씨도 "수능시험 보는 날 응원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아빠는 연구실에 있었다"고 했다.

권 교수는 "'아내와 별거했냐' '학생이 사병(私兵)이냐'는 핀잔도 들었다"고 했다.

"한밤에 학교에서 내다보이는 아파트의 환한 불빛을 보면서 아내와 아이들 생각을 하며 회의가 든 적이 있었지요.
그럴 때면 '자원 하나 없는 나라에서 살 길은 인재교육밖에 없다'는 생각에 입술을 꽉 깨물고 버텼죠."

부인 하씨는
"작년 여름에 연구실 소파에서 자보니 아침에 그렇게 허리가 아플 수가 없었다"며
 "항상 원망만 했는데 고생하는 남편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했다.

권 교수는 제자들에게 '연애와 공부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
김기찬(30·박사과정 수료)씨는 "교수님 제자가 된 뒤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았다"며
"우울한 솔로생활이지만 내 꿈이 눈앞에 보여 후회는 없다"고 웃었다.
권 교수의 제자인 남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이재하(47) 교수는 "대인공포증으로 말을 더듬던 내가 교수님 가르침을 받아 교수까지 됐다"고 했다.
이 교수는 "나 역시 1주일에 3일은 연구실에서 먹고 잔다"고 했다.

밤 8시에 시작된 수업이 어느덧 3시간을 넘겼다.

눈이 빨갛게 충혈된 권 교수가 잠시 허공을 바라보더니 수업 종료를 선언하자, 자리에서 일어난 제자들이 박수와 함께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렀다.
권 교수는 눈물을 글썽이는 부인 하씨에게 꽃다발을 건네면서 "당신, 고마워"라고 했다.

"저, 아직 끝난 거 아닙니다.
 학위 논문을 봐줘야 할 학생들이 아직 남아 있어요.
저를 필요로 하는 학생이 있다면 주저 없이 달려갈 겁니다.
아내와 못했던 '연애'도 새로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