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이 올림픽 우승 당시 메달과 함께 부상으로 받아
코린트식 투구는 구조상
너무 무겁다는 것과 귀를 모두 덮고 있기 때문에 외부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고,
투구 내부에 통풍이 되지 않아 여름에 착용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현재까지 고대 그리스 신전이나 기념비에 새겨진 무인 조각상에서 투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이와 같이 완벽한 원형을 유지한 예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 투구의 가치가 높다. 투
구의 상태를 살펴보면, 앞쪽 일부분이 깨어진 것을 제외하고는 상태가 양호하다.
테두리에는 구멍이 뚫려있고 일부는 고정못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 구멍들은 머리와 투구 사이의 완충효과를 위해 헝겊 등을 안쪽에 덧대고
이를 고정하기 위해 뚫은 것으로 고정못으로 고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앞쪽에는 이 고정못 바깥으로 점열문과 톱니모양 문양이 2중으로 새겨져 있다.
이 투구는 손기정 선생이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고 메달과 함께 부상으로 받게 되어 있었지만,
당시 손 선수에게 전달되지 못한 채 베를린박물관에 50여 년간 보관되어 있었다.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 그리스가 유물을 주는 관행은
제2회 파리 올림픽(1900년)부터 실시된 것으로
기원전 490년 아테네 마라톤 평원에서 벌어진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한 후
그 소식을 알리기 위해 약 40㎞를 달려온 병사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마라톤 우승자에게 수여된 유물은 ‘헤르메스’의 흉상과 같은 실제 유물이었으며,
이러한 유물 수여는 고대 유물의 유출 방지령이 내려진 2차 세계대전까지 계속되었다.
1936년에 베를린올림픽 당시에는
그리스의 브라디니(Vradyni) 신문사가 투구를 마라톤 우승자에게 선물로 내놓았던 것인데,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는
‘아마추어 선수에게는 메달 이외에 어떠한 선물도 공식적으로 수여할 수 없다’는 규정을 근거로
손기정에게 이 투구를 수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손기정은 마라톤 우승자에게 메달 이외에 수여될 부상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귀국하였다.
당시 일본은 식민지 출신 우승자의 권리를 대변할 의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손기정 선생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거나 국제올림픽위원회에 건의하지 않았으며,
결국 이 사실은 역사 속에 묻혀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