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일본택시기사 "이 난리에 야구합니까?"

강개토 2011. 3. 15. 17:12

그 어떤 재난 영화의 한 장면도

이번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대지진과 쓰나미의 위력을 제대로 예상한 것은 없었다.

그만큼 충격적인 장면이 TV 뉴스를 통해 흘러나왔고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에 의해 일본에 계획정전을 실시한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이 시점에 도쿄로 들어간다고 하니 그곳에 살고 있는 일본인 친구마저 "왜 들어오냐"라고 말릴 정도였다.

하지만 역시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그 심각성을 쉽게 알 수 없는 법이다.

 

박찬호, 이승엽 취재를 위해

오릭스의 홈인 오사카에 약 일주일간 머물렀지만

그곳에서는 이번 지진에 대한 심각성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번화가를 가득 채웠고 활기차게 출퇴근을 했다.

 

그래서

14일 오전 마감을 마친 후

오후 2시를 조금 넘은 시각 도쿄행 신칸센에 올랐다.

 목표는 지바롯데 김태균 취재였다.

 

표를 구입할 때부터 직원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봤다.

"현재 도쿄 전철이 모두 정상운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관광을 위해서라면 안 가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며

다시 한번 도쿄로 갈 것인지 확인을 했다.

가벼웠던 마음이 조금씩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도쿄로 가는 동안에도 신칸센 내부 모니터에는

계속 '지역별 계획 정전' 소식과 도쿄내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방송이 계속 흘러나왔다.

복잡한 심경으로 약 2시간30분간의 신칸센 여행을 마치고 도쿄역에 내렸다.



14일 오후 5시30분. 일본 도쿄 아카하바라 역 소부센 플랫폼을 가득 메운 인파들.

30분이 넘는 배차 간격 때문에 줄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도쿄=노경열 기자 jkdroh@sportschosun.com

도쿄역에 도착하자마자

그동안 날 말리던 일본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휴대전화가 잘 연결되지 않았다.

오사카에서만 해도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났던 11일을 제외하고는

휴대폰 통화에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역시 피해지역답게 여전히 대여섯번 통화를 시도해야 한 번 정도 겨우 연결이 됐다.

 

굳이 만나러 나오겠다는 친구와 약속장소인

아키하바라로 이동을 하기 위해 전철을 갈아타려는데 에스컬레이터가 모두 멈춰있다.

2주간 출장 일정으로 큰 여행가방 한 가득 짐을 가져왔는데

어쩔 수 없이 끙끙거리며 모두 들고 계단을 오르내릴 수 밖에 없었다.

에스컬레이터 앞에는 '지진 위험과 절전을 위해 폐쇄한다'는 문구가 써있었다.

아키하바라역에 도착하자 현재 사태의 심각성이 실감되기 시작했다.

세계최대급의 전자상가 거리가 그 화려했던 빛을 모두 잃고 정적에 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밤늦도록 번쩍거리던 네온사인과 대형모니터들은 모두 꺼져있었고 거리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 더 문제는

아키하바라에서 지바까지 통하는

소부센 전철이 중간까지만 운행한다는 방송이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전철 간격이 30분 정도라는 방송도 나왔다.

 

친구에게서도 다시 전화가 왔는데

"나도 소부센을 타고 아키하바라까지 가야되는데

지금 열차도 안 오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갈 수가 없다.

미안하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다음에 얼굴을 보기로 하고 소부센 플랫폼으로 향했다.

어떻게든 중간까지라도 전철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말 플랫폼은 발디딜 틈도 없었다.

오후 5시30분쯤이었으니 퇴근 시간도 아니었지만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 인파가 몰렸기 때문이다.

5시57분 전철이 도착했는데 뒤쪽에 서있던 기자는 결국 탑승을 못 했다.

또다시 약 30분여분을 기다려 6시34분에나 전철에 오를 수 있었다.

서울 출근길 지하철보다 조금 더 심각할 정도로

사람들 사이에 꽉 끼인채 임시종점인 니시후나바시역까지 이동했다.

지바까지는 절반 정도 밖에 못 온 상태.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지바로 향했다.

택시기사분이 무슨 일로 지바에 가냐고 물어서

"야구 선수 취재간다"고 했더니 "이 난리가 났는데 야구를 하냐"며 웃는다.

지바 마쿠하리 멧세로 가는 도로와 인도에 진흙이 덮여있길래

쓰나미 피해가 여기도 심각했는지 물어보니

기사분은 "여긴 쓰나미가 아니라 땅 밑의 물이 하수관을 통해 역류해 마그마가 솟듯이 다 올라왔다.

이 지역이 바다를 메워서 만든 곳이라 그렇다.

지금은 물이 빠져나가서 흙만 저렇게 남았다"고 설명했다.



 

14일 일본 지바현 숙소 프런트에 있는 경고문.

정전 시간과 온수가 안 나오는 시간이 표시돼있다. 지바현(일본)=노경열 기자 jkdroh@sportschosun.com

 

 

 

 

 

 

 

 

 

 

 

 

 

 

 

 

 

 

 

 

 

 

 

 

 

 

 

 

 

 

 

 

 

 

 

 

 

1시간이면 올 거리를 3시간이나 걸려 숙소에 도착해보니 주변이 깜깜하다.

유일하게 불이 켜진 숙소 프런트에서 예약을 확인하는데 경고가 너무 많다.

 

"오전 9시2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저녁 6시20분부터 밤 10시까지는 계획정전으로 인해 전기를 사용할 수 없다.

불은 물론 휴대폰, 인터넷도 모두 꺼지며 온수도 안 나온다.

정말 방에서 휴식밖에 할 수 없는데 그래도 투숙하겠는가"란 질문을 한 뒤 투숙하겠다고 하자

"전기 사용이 원활하지 않은 관계로 청소도 힘들다.

수건 등 소모품도 체크아웃할 때까지 계속 써주길 바란다"고

다시 한번 경고 후 설명을 들었다는 증서에 사인을 하게 했다.

그나마 "오늘밤은 더이상 정전이 없다"는 말이 제일 반가웠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뉴스를 보기 위해 TV를 켜니

'후쿠시마 원전 2호기 역시 연료 제어봉이 손상됐다'는 뉴스와 함께

 J리그가 남은 3월에는 경기를 펼치지 않겠다고 발표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 뒤에는 요미우리와 한신이 시범경기를 했고

라쿠텐과 요코하마가 불도 들어오지 않는 전광판을 두고 연습경기를 했다는 소식도 이어졌다.

 

갑자기 "이 난리가 났는데 야구를 하냐"며 웃던 택시기사분이 생각났다.

현재 오릭스는

 지진 위험 지역인

사이타마 세이부전, 지바의 롯데전 등 일정이 잡혀있는데

상황을 보고 시범경기 운영을 결정하기로 한 상태다.

 

오전 마감 후 급히 이동을 바람에

식사를 제대로 못 해 근처 편의점을 찾았다가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다.

 편의점에 물과 먹을 것은 하나도 안 남아있는 것.

 뉴스화면에서만 보던 장면을 실제로 보니 다시 한번 간담이 서늘해졌다.

결국 물 대신 탄산음료수 몇개를 구입해 숙소로 돌아왔다.

새벽에 일어나 이 기사를 쓰고 있는 중에도 몸이 흔들렸다.

급히 TV를 켜보니 새벽 4시59분 도쿄, 사이타마 등의 지역에 진도 3 정도의 여진이 있었다고 보도를 했다.

계획정전 중에는 신호등도 모두 꺼지니 운전자는 반드시 서행하라는 경고광고도 나왔다.

TV에서 지진 속보를 전할 때는 '띵똥띵똥'이라는 경고음이 한번 나온 후 소식이 전해진다.

오늘 오전 취재중에는 이런 소리가 나지 않기를 바란다.
지바현(일본)=노경열 기자 jkdroh@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