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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원년이었던 82년 홈런왕에 오른 '원조 홈런왕' 김봉연 극동대 교수(59).
김 교수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당대 최고의 투수는 누구였을까.
최동원(KBO 경기감독관)과 선동열(삼성 운영위원),
우열을 가리기 힘든 위대한 두 투수 중 조심스럽게 최동원의 손을 들어줬다.
22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군산상고와 경남고의 '레전드 리매치'를 앞두고 만난 김 교수는
오랜만에 모교의 유니폼을 입으며 추억에 잠기는 모습이었다.
자연스럽게 고교시절 뿐 아니라 해태에서 홈런왕으로 명성을 날리던 시절의 얘기가 이어졌다.
김 교수에게
"당시 상대하기 가장 힘든 투수가 누구였냐"
라는 질문을 던졌다.
주저없이 "최동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 교수는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거뒀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든게 설명되는 투수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같은 팀에서 뛰던 '국보급 투수' 선동열은 김 교수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
"구위만 놓고 보면 누구도 따라올 선수가 없었다"고 단언했다.
김 교수는
"당시 해태에 있던 투수들 조차
'나도 선동열처럼 아무 두려움 없이 시원하게 던져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할 정도였다"
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러나 최동원과 선동열 둘 중 하나의 '지존'을 골라 보라고 하자 최동원을 언급했다.
김 교수는
"내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연투능력이다.
최동원은 전날 완투를 하고도 다음날 경기에 곧바로 투입돼 던질 수 있었다.
하지만 선동열은 다음날 경기에는 나서지 못했을 것"
이라며
"그 차이는 스타일에서 나온다.
최동원은 기술이 상당히 좋은 투수였다.
구위는 선동열에 비해 떨어지지만
직구 외에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했고
상황마다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탁월했다.
반면 선동열은 직구, 슬라이더 두 가지 구종만을 던졌다.
강력한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많은 힘이 소모될 수 밖에 없었다"
고 설명했다.
선동열이 일본에 진출했을 당시 함께 일본에 머물렀었다는 김 교수는
"선동열이 일본 진출 후 초반에 애를 먹은 것도 결국 구종이 다양하지 못했기 때문"
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물론 참작해야 할 것도 있다.
해태에서만 뛰었던 김 교수가 같은 팀 선동열과 맞대결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막상 실전에서 투수와 타자로 맞대결해봤느냐의 여부는 훗날 기억의 '강도'에 큰 차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마지막에는
"두 투수 모두 지금까지도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로 남아있지 않나.
정말 훌륭한 선수들이었다"
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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