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풀

세상을 주머니 속에 담았던 스티브 잡스, 떠나다

강개토 2011. 10. 13. 13:33

2011년 10월 6월 오전 9시가 채 안 된 시간.

전세계의 많은 이들이 아이폰을 꺼내들고 스티브 잡스가 사망했다는 속보를 받아 든다.

그가 만들어낸 최고의 역작을 통해

그의 죽음을 알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 스티브 잡스는 이런 현실마저 예상하고 떠났을까.

미국 현지 시각 5일

애플은 성명을 통해서 공동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는 지난

2004년 췌장암 수술을 받고

2009년에는 간 이식을 받으며 건강이 악화됐다.

길고도 치열했던 투병생활 끝에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애플은

“잡스의 영명함과 열정, 에너지는 멈추지 않는 혁신의 원천이 됐으며

이로 인해 우리의 인생은 풍부해지고 향상됐다.

 잡스로 인해 이 세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됐다.”

고 말했다.

 

혁신의 아이콘,

이 시대 최고의 CEO,

세계 IT의 거목.

 

평소 그를 빛냈던 수 많은 수식어도 그의 죽음 앞에서는 헛헛하게 느껴질 뿐이다.


 



 

IT세상에 신세계를 열었던 그가 떠나자 전세계적으로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다.

잡스의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 빌 게이츠는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그와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미치도록 대단한 영광이었다. 그가 매우 그리울 것 같다”

 

고 애도문을 남겼다.

 

애플과 IT 산업 라이벌로 경쟁구도를 이루고 있는

구글의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도

 

“그는 미국 역사상 최고의 리더 가운데 한 명이었다”

 

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전세계의 수많은 이들은 애플이 만들어 놓은

‘rememberingsteve@apple.com’

계정으로 메일을 보내며 그를 추억하고 있으며,

인터넷 세상은 그에 대한 추모의 글과 기사로 넘쳐나고 있다. 

그의 죽음이

전세계인을 슬프게 만든 이유는 단순히 그가 눈부신 업적을 쌓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로 인해 펼쳐질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는 존재하지 않고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무엇인가를 기다릴 수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실망하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끊임없이 놀라움을 선사해온 그를 위해서, 이제는 우리가 그를 추모할 시간이다.

 왜 그가 국가와 인종을 뛰어넘어서

전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았는지 살펴보면서

병마와 싸우다 지쳐서 떠난 그를 따뜻하게 보내줄 차례인 것이다.


죽음마저도 이용했던 파란만장했던 삶


  


 


“곧 죽을 거란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인생에서 커다란 선택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외부의 기대, 자부심, 좌절과 실패 등은

모두 죽음 앞에서 덧없이 사라지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입니다.”



잘 알려졌듯이, 그의 삶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그래서일까.

앞선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죽음까지도 삶의 도구로서 바라볼 정도로 적극적인 삶을 살았다.

잡스는 1955년에 태어나 몇 주 만에 입양기관을 거쳐 입양됐다.

학생시절 내낸 사고뭉치였던 잡스는 양부모의 사랑으로 큰 탈 없이 성장했다고 한다.

잡스는 명문으로 꼽히는 리드대학에 입학했지만

6개월 만에 중퇴하고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과 양부모의 집 창고에서

애플을 창업한 후 이듬해 개인용PC 애플Ⅱ를 내놓으며 성공을 맛본다.

하지만 30세 때인

1985년 자신이 영입한 전문CEO와 이사회에 의해 애플에서 쫓겨나는 아픔을 겪는다.

이후 그는 영화사 픽사를 설립해 재기에 성공하고

경영난을 겪던 애플로 복귀해 ‘혁신의 아이콘’으로서의 역사를 써내린다.

2001년 아이팟을 시작으로

2007년 아이폰,

2010년 아이패드를 잇따라 성공시키면서 애플을 세계 최대 IT업체로 성장시켰다.

이와 같은 외적인 성공에 불구하고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2009년에는 간이식 수술까지 받는 등 길고 힘든 투병생활도 이겨내야 했다.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나 입양되는 등 복잡한 가정사,

대학을 중퇴하고 방황을 한 젊은 시절,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난 위기, 암 선고에 간이식 수술까지.

 

그의 삶은 언제나 고미의 연속이었지만,

그는 언제나 좌절하지 않고 주변은 물론,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결과를 선보이며 많은 이들의 ‘우상’이 됐다.




변화와 성장을 준비한 최고의 CEO


  

 

 



파격과 혁신으로 시대를 앞서간 스티브 잡스지만, 사실 그만큼 많은 위기에 처했던 CEO도 없다.

그는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났고 그 뒤 설립한 넥스트 역시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다.

 

조지 루카스로부터 매수한 픽사는 엄청난 자금이 들어가는 회사였고,

십여 년 만에 애플로 돌아와서 만든 아이팟은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크고 작은 위기 때마다 어김없이 놀라운 대안을 내놓은 그였다.

스티브 잡스가 가장 중요시 여긴 경영의 원칙은 바로 ‘상생 경영’이다.

그는 인재의 가치를 알아보는 데 뛰어났다.

많은 대기업들이 직원들에게 성과에 대한 압력을 넣을 때,

스티브 잡스는 임직원의 마음을 진심으로 인식하고 실천하는 문화를 추구해왔다.

 

애플에서 일했던 다케우치 가즈마사

애플의 성공을 잡스와 직원이 이룬 ‘비범한 조직의 힘’이라고 전하며

 

“애플은 꿈과 가혹한 현실이 교차하고, 잡스의 독재와 자유가 공존하는 불가사의한 조직이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을 해내기 위한 원천으로, 잡스는

“결국 세상을 바꾸는 흐름의 열쇠는 사람(직원)의 힘”

이라 생각했다.

 

‘고객’이 아닌 ‘마니아’를 만들어 낸 그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구심력,

사람에게 ‘없는 것’까지도 끌어내는 독창성,

지도자로서 군림하는 능력 등

‘천재적’이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강한 개성을 지닌 최고의 CEO라 할 만 하다.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꾼 창의력의 아이콘

 


  

“Apple은 명확한 비전과 크리에이티브를 지닌 천재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세계는 정말 놀라웠던 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스티브와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렸던 저희는 사랑하는 친구이자 늘 영감을 주는 멘토였던 그를 잃었습니다. 이제 스티브는 오직 그만이 만들 수 있었던 회사를 남기고 떠났으며, 그의 정신은 Apple의 근간이 되어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 홈페이지에 남겨진 애플사의 애도의 글

 

 

 

 


스티브 잡스에게 따라다니는 단어는 창조와 혁신이다.

이 상투적이고 애매한 단어가 스티브 잡스에게는 가장 의미 있는 단어였다.

스티브 잡스에게 창조와 실패는 따로 생각할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창조를 외치지만

성공을 위한 도구로서의 창조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실패의 위험은 감수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른 회사의 모방품 같은 어중간한 제품이 아니라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는 데 인생을 걸었으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독창적인 제품에 너무 집착한 탓에 대성공도 거두지만 때로는 큰 실패도 맛보았다.

그는 스무 살 때 기술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그는

“컴퓨터와 기술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고 잘라 말하며

“대담한 상상력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고 전한다.

 

그의 놀라운 상상력과 열정,

그리고 에너지는 우리 세계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었고,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꿨다.

세계는 그의 창의력 덕분에 진보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스탠포드대 졸업식에 참석해 학생들에게 들려줬던 한 문장을 이야기하려 한다.

그가 좋아했던 책 <지구 백과> 뒷 표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


 

상품마저도 감동으로 선사하다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검은색 터틀넥과 청바지를 입고 새로운 제품을 손에 움켜쥔 채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모습이다.

이 모습은 그가 여느 CEO와는 전혀 다른 차별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 차별점은 바로 ‘프레젠테이션 능력’이다.

 

흔히 잡스는

‘혁명의 아이콘’으로 불리는데,

그 원동력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은 그가 ‘프레젠테이션의 달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사적으로 인터뷰를 하거나 주주들과 대화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애플의 대표로서 세계적인 쇼맨(showman)으로 제품을 소개하곤 했다.

대표적으로 2007년 아이폰을 소개하는 장면을 꼽을 수 있다.

 

당시 그는

트레이드마크인 검은색 터틀넥과 청바지를 입고 나타나

“3가지의 혁명적인 제품”을 소개할 것이라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첫 번째는 손가락 터치로 이용하는 넓은 스크린을 가진 아이팟.

두 번째는 혁명적인 모바일폰. 세 번째는 멋진 인터넷 통신기기.”

라고 설명했다.

 

잡스의 말이 끝나자

뒤에 있던 대형화면에 3가지 기기가 하나로 합쳐지며

아이폰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잡스는

“이해하겠습니까? 이들은 각각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기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아이폰이라고 부릅니다”

라고 말했다.

이 모습은 전세계로 퍼졌고,

이 프레젠테이션 덕분에

아이폰은 소비자들의 머리 속에 강렬하게 인식될 수 있었다고 평가 받는다.

물론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은

이제는 일상이 된 스마트폰 시대를 연 ‘개막사’처럼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이 밖에도 스탠포드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 등은

전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혁명의 아이콘이기도 했지만 언어의 마술사이기도 했다.

물론 그 마법에는 기대와 감동이라는 주문이 담겨있었다. 

이제 그는 자신이 남긴 제품과 많은 이들의 기억에서만 존재한다.

언젠가 그보다

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천재는 등장할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 그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질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점은

지금 이 순간, 그리고 한동안은 많은 이들이 그를 그리워할 것이다.

 

여전히 우리들의 기억,

가방과 주머니 속,

책상 위에서는 그만의 흔적이 멀쩡하게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