作家 · Writer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최민식 작가

강개토 2007. 12. 30. 17:53
 
   

우리시대의 진정한 거장

- 최민식,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꾸미기_종이거울IMG_0074.jpg

사진작가 최민식 -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때가 1957년이니까 최민식 작가는 올해로 작품활동 5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옛 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강산이 변해도 다섯 번을 변했을 시간, 하지만 최민식 작가는 이 기나긴 시간을 줄곧 하나의 주제에 천착해 왔다. 최민식 작가가 천착해 온 하나의 주제는 바로 ‘가난’이었다.

작품활동 기간 동안 최민식 작가는 오롯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세상에 외쳤다. 이들의 존재에 눈길 돌려 달라고,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관심 가져 달라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달라고....

"나는 세상에서 잊혀진 사람들을 찍는다. 볼품없이 일그러지고 불쌍한 자들이 곧 나라고, 생존의 무서운 슬픔을 느껴 보라고,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곳에 사는 외로움을 보라는 외침을 듣는다. 내가 전하는 것은 '자신의 운명에 대결하여 씨름하고 있는 슬프고 고독한 인간의 모습'이다. 사진 속의 아득한 시절, 아득히 먼 사람들이 내 곁으로 와서 운다. 나는 허리를 굽혀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서러운 인생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 최민식,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중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집 <인간>을 비롯, 숱한 작품집을 발표했던 최민식 작가 - 그는 자신의 작품활동 기간을 되돌아보고 후학들에게 자신이 터득한 인생의 예지를 들려주고자 한 권의 자전적 에세이집을 발표했다. 바로 그 책이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이 책은 단순히 '최민식'이라는 한 사진작가의 작품이 담긴 사진집이 아닌 사진작가로서의 삶을 택한 인간 '최민식'이 걸어온 길을 담은 한 편의 인생 드라마다.


- 책 제목에 대해서 질문 드리고자 합니다.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이란 책 제목에서 <종이거울>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소설가 조세희씨가 지어준 제목이지요. 종이거울은 바로 사진입니다. 사진 속에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는 뜻이지요. 10년 전에 초판이 나왔는데 제목 때문에 많이 팔렸지요. 이 책은 저의 자화상이 담겨져 있습니다.

- 본문 가운데 참 마음이 아려오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따님께서 선생님께 "가난한 사람들을 팔아 자신을 자랑한다"고 하신 대목이었습니다. 저와의 인터뷰에 응해주신 것도 따님께서 탐탁치 않게 생각할 듯합니다.

싫어하지요. 아내도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도 제가 인터뷰에 응하는 이유는 제 책을 알리고 제가 걸어온 인생 길, 그리고 사진작가로서 제가 한 일들을 알리기 위해서이지요.

- 앞서 말씀드렸듯이 선생님 작품의 일관된 주제는 가난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주제를 가지고 작품활동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으셨을 텐데요.

choi_1.jpg제가 작품활동을 하던 당시는 새마을 운동을 비롯, 새롭게 발전을 꾀하던 시기였지요. 그런데 제가 자꾸만 가난한 사람들을 찍고 이것을 외국에도 내보내니까 당국에선 '왜 이런 부정적인 모습을 외국에 내보내느냐, 나날이 발전해 가는 모습을 찍어 보내야 되지 않느냐'면서 작품활동에 제지를 가하려 했고 기관원들을 보내어 가택수색도 했지요. 혹시나 마르크스-레닌 같은 불온한 사상을 담은 책이 있는지를 보러 온 것이지요.

특히 당국에선 제 사진이 북한으로 넘어가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지요. 실제 제 사진이 북한에 넘어간 적이 있었어요. 독일-프랑스에서 전시회할 때 북한측에서 몰래 찍어 평양으로 보낸 것이지요. 당국은 이 사실을 알았어요. 하지만 저는 창작의 자유는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하겠어요?

- 혹시 선생님께서는 작품활동을 통해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나 이념적 노선을 지지하고자 하셨나요?

당시엔 국민회복 국민회의라는 단체가 있었어요. 제가 그 단체에 가입을 한 적이 있었지요. 그래서 더 당국의 탄압을 받았어요. 당시 여당이었던 모 정당의 간부가 와서 자꾸만 탈퇴해라, 탈퇴하지 않으면 재미없다는 식으로 공갈협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부산지역에서 가입한 이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소설가 김정한씨가 이 단체에 가입했었지요. 사진가로서는 제가 유일했고.

전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기 보다는 창작의 자유를 원했습니다. 창작의 자유를 위해선 자유 민주주의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저희가 무엇을 얻겠습니까? 벼슬을 하겠어요? 아니면 막대한 재산을 벌어 들이겠나요? 창작의 자유 이외엔 더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 제주도에서만 작품활동을 하던 어느 사진작가는 주민들로부터 간첩으로 오인 받아 당국에 불려가고 기관원들로부터 카메라를 압수당하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혹시 선생님께서도 이런 비슷한 고초를 겪지는 않으셨나요?

많이 겪었어요. 최근은 없지만 50년 간 활동하면서 간첩으로 많이 오인을 당했지요. 그도 그럴것이 당시는 반공교육이 철저했었기에 카메라 메고 동해바닷가나 자갈치 시장, 동대문, 남대문, 역전을 돌아 다녔으니 간첩으로 오인 받기 쉬웠지요.

- 선생님 작품의 주인공은 서민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을 간첩으로 오인한 사람들도 역시 서민입니다. 이 사람들로부터 간첩으로 오인 받아 고초를 당하게 되면 서민들을 보는 시각도 달라지셨을 텐데요.

그렇지 않아요. 전 그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앞서도 말씀 드렸듯 당시는 반공교육이 철저했지요. 또 당시 간첩을 신고하면 3천 만원의 포상금이 걸려 있었어요. 단순히 포상금만을 노리고 절 신고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미심쩍으면 신고가 들어갔지요. 

- 선생님께서는 국내 보다는 국외에서 더 먼저 인정을 받았습니다. 국외에서 더 먼저 인정을 받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IMG_0051_1.jpg1967년 영국 <사진연감>에 제 작품이 수록되었고 1969년엔 독일에서 발간하는 사진 연감에도 제 작품이 게재되었습니다. 국외 사진계는 포토 저널리즘, 즉 전쟁 · 분쟁 · 재난 · 빈곤 등이 주류입니다. 이런 사건들을 통해 인류 평화 혹은 빈곤 추방 등의 근본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지요. 국외에서는 포토 저널리즘의 전통이 무척 강합니다. 제 작품이 국외에서 더 먼저 인정을 받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전통과 맞닿아 있어서입니다.

국내 사진 공모전은 우선 많은 돈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학벌-지연으로 얽혀 있지요. 게다가 보기에 그럴 듯한 사진, 상 받기 위한 사진들, 최근 들어서는 포토샵으로 조작한 사진들만이 눈에 띱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사진은 사상의 표현수단이기에 작가정신이 스며 있어야 합니다.


* 최민식 작가는 이 책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에서도 금전-학벌-지연으로 만연된 사진계의 풍토에 대해 개탄해 마지 않는다. 한편 최민식 작가는 세간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비전공자다. 오로지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해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그래서인지 최근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유명인사들의 학력위조 파문에 대해 질문을 드리자 남다른 감회와 함께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내 보였다.


- 최근 디지털 카메라의 급속한 보급으로 사진 찍기는 이제 일상의 한 부분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진은 고상한 예술가들의 전유물로만 기억되었기에 최근의 추세는 일면 고무적으로까지 보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책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그리고 다른 책들 속에서 최근의 흐름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의 추세 가운데 무엇이 우려를 자아내고 있습니까? 그리고 사진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사진가로서, 그리고 인생의 선배로서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신지요.

저도 최근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은 어디까지나 학생들에게 사진이 어떻게 찍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영혼을 파인더 속에 담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최근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으로 인해 사진은 단순한 취미거리 내지 상품으로 전락해 버렸지요. 사진의 궁극적 목적은 인류평화와 행복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사진가의 경험이 축적되어야 하겠지요. 직접 경험이 불가능하다면 간접 경험의 기회라도 확대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진 외에 문학 · 음악 등 다른 예술도 접해야 하고 책도 많이 읽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최근 젊은이들은 꼭 읽어야 할 책마저도 가까이 하지 않아 안타깝지요.

* 작가의 서재는 책으로 가득하다. 엄청난 부피와 두께를 자랑하는 국내외의 사진집은 물론, 문학 작품과 다른 예술장르를 다룬 책 등 온갖 종류의 도서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 선생님께서는 계속 흑백으로 작품 활동을 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책 말고 다른 책에서 필름을 계속 사용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컬러와 디지털은 대세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최근의 추세로 볼 때 '흑백'과 '필름'이라는 지난 시대의 방식을 고수하시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제가 다루는 주제는 '가난'입니다. 흑백은 이 주제를 표현하는데 적절하다고 봅니다. 컬러를 사용할 경우 디지털이 필름에 비해 색채 재현력이 우수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흑백 표현의 경우 디지털은 필름에 비해 다소 떨어집니다. 흑백 필름은 주제의 깊이를 더해주지요.

- 사진의 탄생 이후 사진이 예술인지의 여부를 놓고 대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논쟁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사진이 예술의 한 범주로 포함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사진의 어떤 점이 사진을 예술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해준다고 보십니까?

저는 베토벤을 존경합니다. 베토벤이 남긴 숱한 걸작 가운데 대부분은 그가 청력을 상실하고 난 뒤에 작곡된 것들입니다. 베토벤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죽어 천당에 가면 나도 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

bischof.jpg이 말에 전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베토벤의 작품은 내적감정의 결정체입니다. 예술은 정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베르너 비쇼프의 사진(오른쪽)을 보세요. 한 손엔 아이를 안은 채 제발 무엇인가를 달라고 손을 벌리는 인도 여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이 사진은 크나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비쇼프의 사진은 미국 의회를 움직여 3천 5백만명 분의 식량원조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루이스 하인 등 다큐멘터리 사진들의 대가들 뿐만 아니라 지금 언급했던 베르너 비쇼프를 비롯, 세바스티앙 살가도, 요셉 쿠델카 등 현존하는 사진작가들 모두 이런 일들을 해오고 있어요.

사실 그 자체의 아름다움, 내적 감정의 고양, 나눔의 실현, 이를 통한 인류평화와 행복의 증진.... 사진이 예술일 수 있는 이유입니다.
 
- 최근 들어 많은 사진가들, 특히 언론계에 종사하는 이들이 활동의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바로 초상권 때문이지요. 사진가들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웁니다. 하지만 사생활 침해를 꺼려하는 움직임이 날로 거세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최근 흐름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말 많이 힘들어졌어요. 요사이는 휴대폰 카메라로 인해 더더욱 사진 찍히는 일에 민감해 졌지요. 이곳 부산에서도 누군가가 휴대폰 카메라로 수영복을 입은 여성들을 몰래 찍어 한바탕 소란이 있었지요.

하지만 전 활동을 계속할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알려야지요. 삶의 진실성과 허식 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여든을 바라보는 연세이지만 작가의 시선은 무척이나 예민하다. 가까이에 있는 무엇인가를 들여다 볼 때는 이따금씩 돋보기에 의지하지만 일단 거리로 나서면 시선은 예리하게 번득인다. 몇 십 미터 건너 구멍가게에 걸린 간판의 깨알 같은 수자를 읽을 정도다. 작가의 남다른 감각은 수십년에 걸친 훈련의 결과다. 늘 '서민들의 생활 주변에서 삶의 진실성과 허식 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포착하려고 노력하기 위해서' 시선을 예리하게 다듬어 온 것이다.

지난 50년간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시작, 최근에는 인도 · 네팔 등 활동영역을 세계로 넓히며 가난한 이들의 대변자임을 자처해 오고 계신 최민식 작가 - 최민식 작가야 말로 거장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를 온 몸으로 받치고 있는 진정한 거장이다.


글, 사진 | 지유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