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신문

메가쑈킹 만화가와의 '메가쑈킹' 인터뷰

강개토 2008. 1. 31. 15:48

 

언어 개그의 강자, 고필헌을 만나다

 

 

 


최근 ‘탐구생활 1’을 펴낸 만화가 고필헌(35)은 본명보다 ‘메가쑈킹(Mega-Shocking·엄청나게 충격적이라는 뜻) 만화가’라는 예명으로 더 유명하다.

그는 ‘당신의 만화는 정말 메가쑈킹해요’라는 한 팬의 말을 들은 뒤부터 이 예명을 썼다.

고필헌이 네티즌들에게 ‘메가쑈킹’으로 다가온 것은 무엇보다 ‘언어유희’라고 할 만큼 톡톡튀는 만화 속 대사 때문이다. 고필헌은 자신의 어록이 인터넷에 떠도는 국내 유일의 만화가이다.

일단 고필헌식 ‘언어개그’를 감상해 보자.

 ‘겁을 일시불로 상실한 녀석’, ‘너보다 비참한 녀석은 주문진 국도변의 오징어처럼 널리고 널렸다’, ‘그렇게 말한다면 그건 경기도 오산이오’, ‘당신은 정말이지 배려심이 해저 2만리군요’, ‘뛰어난 비주얼의 자연이 내 시신경을 열심히 마사지 하는구나’, ‘이런 젠장찌개!’, ‘그 말씀 좌심방 좌심실에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등등...

지난 2003년 연재한 그의 만화 ‘애욕전선 이상없다’에 나온 이 대사들은 ‘명대사 70선’이란 제목으로 아직도 인터넷을 떠돌며 네티즌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펴낸 탐구생활에서도 그는 참신한 표현만을 따로 모아 ‘탐구속담’으로 묶었다. 그래서 지난 24일 홍익대학교 인근 카페에서 만난 그에게 물었다.

-표현들은 평소 생각을 해두는 건가요?

“아뇨. 전부 애드립입니다. 마감 때마다 인터넷으로 (비어 있는) 통장 잔고를 보면 그런 대사가 마구 튀어나옵니다.”

-대사가 머릿속에 그냥 딱 떠오르는 겁니까?

“음, 그렇죠. 보통 대사 작업은 가장 마지막에 이뤄집니다. 먼저 콘티(대강의 스토리라인을 간략히 그림으로 표시한 것)를 짜놓고 대사를 대충 채워 넣어요. 예를 들어 ‘철 좀 들어요’, ‘당신만 보면 짜증나요’라고 써놓았다가 마감 직전에 ‘제발 차린 건 없지만 철 좀 드세요’, ‘당신만 보면 짜증면 곱빼기에요’라고 바꾸는 식이죠. 사실 저도 깜짝깜짝 놀라요. 이전에 제가 써놓은 걸 보면 ‘내가 한 게 맞나’ ‘내가 정신분열이 있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죠.”

-믿기질 않습니다.

“사실 제가 머리 좋은 것은 모르겠는데, 순간적으로 잔머리를 굴리는 얍삽함, 그런 게 있어요. 예전에 군대 있을 때 대대장 훈시를 들은 적이 있었죠. 제가 취사병이라 새벽 네 시부터 깨어있는데 너무 졸리는 거에요. 혀를 씹어도 도저히 못 견디겠더군요. 결국 다들 오열을 맞춰 서 있는데 깜박 졸아 혼자 앞으로 서너 걸음 앞으로 나갔지요. 그때 잔머리를 굴렸던 게 그냥 ‘이대로 쓰러져 버리자’ 해서 바로 쓰러졌습니다. 간부들 뛰어와서 ‘뭐야 이거’ 하길래 제가 ‘어지럽습니다. 토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죠. 그날 다들 밖에서 고생할 때 혼자 내무반에서 뒹굴었어요. 처음에 한 번 언어개그를 했는데 반응도 좋고, 통장에 돈도 들어오고 그러니까 신나게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러나 정작 인터뷰에서 그는 독특한 화법을 구사하지 않았다. 이를 지적하자 그는 “인터뷰 때마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다이하드란 영화에서 빌딩이 폭파돼 주인공이 뛰어내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렇다고 감독이 실생활에서 뛰어내리고 그러진 않습니까? 저도 마찬가지에요.”

◆웹툰, 그리고 결혼생활

고씨는 ‘타이밍’을 그린 강풀, ‘아색기가’를 그린 양영순 등과 함께 소위 ‘웹툰 1세대’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불리는 것을 껄끄러워했다. 그는 “에이, 그건 강풀이 그냥 가져다 붙인 거에요. 저는 그냥 만화가에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웹이라는 틀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말인가요?

“저는 별로 없는 게, 제 만화를 자세히 보면 웹툰이라는 생각이 별로 안 들어요. 그래서 부담도 없고. ‘애욕전선 이상없다’도 웹툰이라기보다는 신문에 연재한 걸 웹에다 스캔해서 올려놓은 거죠. 그러니 웹툰 작가라고 불리는 건 별로 맞지 않죠.”

-그럼에도 웹이라는 기반이 있었기에 인기를 끈 것 아닙니까?

“그건 부인할 수 없죠. 영화 ‘블레어 위치’ 있잖아요. 인터넷으로 교묘하게 마케팅해서 돈을 많이 벌지 않았나요? 이것처럼 웹이 웹툰 작가들에게 좋은 수단인 것 같아요. 제게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없었으면 딴 일 하고 있었겠죠. 요리 같은 거?” (그는 고교 졸업 후 바로 만화가의 길로 들어서려 했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식품영양학과에 진학했다. 이왕 대학 가는 거, 여자 많은 과로 가자는 것이 이유였다.)

-이전의 문하생 제도 하에선 버틸 수 있었을까요?

“제 실력으론 문하생도 못 했을 겁니다. 스스로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내가 만화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우연찮게 내가 그린 만화를 올렸는데 반응이 좋아 불이 붙어서 했던 거고.”

그가 처음 주목을 끈 것은 국내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에 ‘감격브라다쓰’를 올렸을 때다. 네티즌들은 그의 언어유희적인 대사에 환호했고 2003년 6월, 한 스포츠신문에서 그를 찾았다. 2006년 19세 이하 판매 금지 만화로는 처음으로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한 ‘애욕전선 이상없다’ 연재의 시작이었다.

-본인과 가장 닮은 만화가가 있다면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럼 자신의 작품이 독창적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짬뽕인 거죠. 수많이 봐왔던 책과 영화가 조합된 거에요. 지금 시대에 순수한 100% 창작이 어디 있나요? 0.01%라도 걸리는 거죠. 저도 제가 봐 온 걸 조합하는 데 흥미를 느끼는 거 같고. 저한테 기본적으로 영향을 준 건 호러 영화랑 짱구 같은 만화에요. 이게 다 섞여서 저만의 코드가 만들어진 거죠. 말로 웃기는 것도, 중·고등학교 때 꿈이 개그맨이었는데 당시 제 취미가 뭐였냐면 수업 시작 전마다 5분 동안 나가서 애들 웃기는 거였어요. 그땐 사춘기였기 때문에 전날 성인유머를 찾아 가지고 이걸 저질스럽게 얘기해서 막 웃기고 그랬죠. 그때는 남들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지금은 좀 약해졌죠.”

그는 요즘 한 포털 사이트에 ‘탐구생활 2’를 연재하고 있다. 신혼여행으로 해외 여행 대신 자전거여행을 다녀와 쓴 일기 형식이다. 아내를 홍콩 영화배우인 ‘(홍)금보’로 호칭하며 좌충우돌 신혼여행을 그린 이 만화는 평균적으로 댓글이 500 개 이상 달린다.

-아내를 웃기게 그렸습니다. 불만이 많을 것 같은데요.

“물론 많죠. 그런데 당시 머리를 잘랐는데 정말 홍금보 같았는 걸요. 자기도 인정했어요.”

-‘애욕전선 이상없다’에서 수많은 커플을 증오했는데.

“하하. 저 (결혼했어도) 여전히 증오해요. 예전엔 부러워서 증오했고, 지금은 너무 닭살 돋아서 증오하고.”

◆“만화, 마감 때마다 싫다”

일주일에 두 번씩 ‘탐구생활 2’를 연재하고 한 영화잡지에 ‘영화퀴즈’를 연재하는 그에게 마감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마감 있는 모든 자가 그러하듯, 그의 하루 역시 마감을 중심으로 굴러간다.

-보통 몇 시가 마감이죠?

“아침 10시요. 그때까지 안 보내면 전화가 와요. 왜 안 보내느냐고. 전 보통 오전 5~6시쯤에 보내는 편이에요.”

-몇 시부터 작업하는 거죠?

“전 매일 정오에 일어나서 다음날 오전 7시에 자요. 그러니까 마감 전날엔 정오에 일어나자마자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 다음날 아침까지 책상 앞에 앉아서 그림을 그린다고 보시면 돼요. 만화가들 보면 배에 빨간 금이 가 있어요. 그게 만날 앉아서 허리 구부리고 작업하니 배가 접혀서 생기는 거죠.”

-마감 시간에 별로 구애를 받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는 바로 손사래를 쳤다.) 아뇨, 많이 받아요. 그리고 싶은 건 머릿속에 가득 쌓여 있는데 손이 안 따라 주니까. 마감 땐 혼자 욕도 많이 하고, 책상도 엎고 싶은데 크니까 못 엎고. 지금 연재하는 것도 벌써 세 번이나 펑크냈어요. 더 펑크내면 잘릴지도 몰라요.”

-그래도 만화가 좋은지

“만화 그리는 건 매번 싫어요. 마감 때마다. 그런데 마감이 끝나면 개운해지죠. 그러니 천상 만화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나마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깐요. 좋아서만 일을 할 수는 없잖아요? 책임감도 있고, 그나마 제일 잘 할 수 있는 게 만화인 거 같고. 국민연금이나 공과금도 내면서 생활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직업이죠.”

-먹고 사는 문제가 크다는 말씀인가요?

“그럼요. 도 닦는 것도 아니고 단식하면서 만화를 그리는 사람도 아니니까. 직업으로서 그런 것도 무지 크죠.”

◆“나는 난독증”

그의 작품은 에피소드 식으로 뚝뚝 끊어진다. 전편을 읽지 않아도 이번 편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매력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강풀처럼 2차 생산(만화를 바탕으로 영화, 책 등을 펴내는 것)을 할 수 없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서사가 있는 만화가 돈을 더 버는데, 안 하는 건가요 못 하는 건가요?

“이런 사람이 있으면 저런 사람이 있는 거죠. 다 같이 가야 발전합니다. 돈이 더 많이 벌린다고 능력도 안 되는데 억지로 할 순 없어요. 잘할 수 있는 걸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것도 짧게 치고 빠지는 만화에요. 전 사실 강풀 만화 재미 없어요. 제대로 본 게 하나도 없어요.”

-왜 짧은 게 더 좋은지

“지겹지가 않으니깐요. 난독증이 있나봐요. 주저리주저리하는 게 싫어요. 책을 읽을 때도 그림 하나 없이 글만 빽빽하게 이어지는 그런 건 별로 안 좋아해요. 집에 만화책도 항상 1,2권밖에 없어요. 그래서 집사람이 많이 짜증냈죠. 뒤가 궁금한데 감질맛만 나니까. 그런데 저는 더 보질 못해요. 그래서 긴 소설보다는 수필이나 자기계발서 같은 거 좋아해요.”

깜짝 놀라 “자기 계발서요?”라고 되물었다.

“네. 보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저 ‘아침형 인간’도 재미있게 봤어요. 그거 보고 3일 동안 밤 11시에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났죠. 그러다가 다시 평소대로 돌아왔지만. (그는 요즘 낮 12시에 일어나 다음날 오전 7시에 자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소설은 처음 볼 때 계속 치고 나가야 하는데, 자기 계발서는 아무데나 펴봐도 주옥 같은 글들이 많아요. 실천해야겠다는 생각도 있고. ‘이대로 안 살고 있으니까 난 정말 악독한 인간인가’ ‘이런 게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인가’ 같은 생각도 들고. 읽고 나서 그 기운이 가실 때까지는 재미있어요.”

-그래도 2차 생산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텐데. 그것을 무시하기 쉽습니까?

“전 무시했습니다. 공과금 압박이 있긴 해도 충분히 낼 수 있고. 음, 저도 이전엔 그런 생각했었는데, 이젠 ‘에이 아니다’ 생각해요. 자기 계발서의 영향이 있는 것도 같고. 법정 스님의 무소유만 안 읽었어도. (웃음) 만약 지금 사는 집이 만약 전세 1억이라면 무리 해서 더 큰 집으로 이사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거랑 비슷한 거죠.”

인터뷰를 끝낸 뒤 우리는 카페에 조금 더 앉아 영화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최근 스티븐 킹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미스트’를 재미있게 봤다 했고 ‘살육에 이르는 병’과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라는 추리소설을 추천했다. 집에 얼마나 많은 DVD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대답했다.

“책장 하나 정도 돼요. 천 장은 안 되고 한 수백 장 되나... 에이, 이것도 그때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자기계발서만 안 읽었어도 더 모았을 텐데. 아쉬워요.”




지난 1월 24일 홍대 인근 한 카페에서 만화가 '메가쑈킹'(본명 고필헌)을 만났다. 한때 영화배우가 꿈이었던 그는 카메라를 바라보고 말하는 것을 어색해했다.

◆메가쑈킹은 누구

고필헌은 ‘당신의 만화는 정말 메가쑈킹해요’란 팬의 말을 들은 뒤부터 ‘메가쑈킹’이란 예명을 사용했다. 한때 스스로를 ‘사류삐끕(4류 B급) 변태만화가’로 칭하기도 했다(그는 인터뷰에서 당시를 ‘철없던 치기의 시절’이라고 표현했다).

1974년 부산 출생인 작가는 ‘수학이 필요없고 여학생이 많다’는 이유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뒤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놀이동산 조리사로 활동했다. 2001년, 그러나 만화의 꿈을 버리지 못해 인터넷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 연재한 ‘애욕전선 이상없다’로 크게 인기를 얻었다. 그는 이 만화를 통해 일부 네티즌의 아침 인삿말을 ‘안녕하세요’가 아닌 ‘쾌변하세요’로, 감탄사를 ‘아!’가 아닌 ‘지쟈스!’로 바꾼 장본인이기도 하다. 철저한 ‘언어 유희 개그’를 구사해 그는 자신만의 어록을 가진 국내 유일의 만화가다.

그는 지난해 한 포털사이트에 연재했던 ‘탐구생활 1’을 통해 스스로를 소심한 30대 남자로 규정했다. 인터넷 쇼핑몰 ‘위시 리스트’ 관리가 취미이고, 처음 만난 남자가 입은 엷은 셔츠 속에 젖꼭지가 보이는 것이 참기 어려워 친해지지 못하는 남자. 혼자 ‘행운의 번호표 게임’을 개발, 극장에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동안에는 미리 점찍은 어여쁜 직원에게 번호표를 받으면 그것만으로도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평범한 30대의 일상사를 보여 줬다.

현재 그는 아내 ‘홍금보’와 함께 한 자전거여행을 주제로 ‘탐구생활 2’를 연재하고 있다.




책에 사인을 부탁하자 그는 자신의 캐릭터와 아내 '홍금보' 캐릭터를 그렸다.

[김우성 기자
rahar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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