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준의영화창고

'색,계' 탕웨이, "영화 통해서 비로소 여자가 된 기분"

강개토 2008. 2. 16. 15:19

'색,계' 탕웨이, "영화 통해서 비로소 여자가 된 기분"

[노컷인터뷰] 이안 감독 신작 '색,계'에서 파격 정사로 강렬한 인상 남긴 여주인공 탕웨이


어찌보면 북한 미인처럼 때묻지 않아 보이는 얼굴과 표정의 순수함이 가장 큰 매력처럼 다가온다. 수많은 여배우들 가운데 이처럼 가공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얼굴과 표정이 있을까?

할리우드에서 성공을 거둔 대만 출신 이안 감독의 신작 '색,계'의 히로인 탕웨이다.
영화를 보면서도 초반 1930년대 격동의 중국을 살아가는 순박한 시골처녀의 모습에서 점점 친일 중국 관리를 유혹하는 유한부인의 모습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통해 그녀의 놀라운 연기폭을 경험케 한다.

도대체 탕웨이는 누구일까? 아직 한국 영화 팬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신인에 가까운 배우지만 영화속에서 진폭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게 유영하는 연기를 통해 앞으로의 가능성을 더욱 높여준 것이 사실이다.

한국을 찾았다. 8일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에 나선 탕웨이는 영화속 마타하리 같은 항일 스파이 '장치아즈'처럼 적극적이고 자신의 주관을 뚜렷이 펼쳤다.

이안 감독님이 공부하라고 준 책만 세 박스

10살에 모델 일을 했다는 것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탕웨이는 열 여섯살에 모델 일을 시작했다. 방학 때 그저 용돈이나 벌려고 시작했지만 분야 최고로 평가받는 베이징 중앙 연극학원에 입학하고 나서는 전공인 연출 공부에만 매달렸다고. 2006년에는 TV영화 '경화연자'로 상을 받기도 했지만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절강성의 경극배우였던 어머니와 화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미술 전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정말 우연하게 오디션을 봤어요. 학교근처에서 오디션이 열리고 있다는 주변의 귀띔과 권유에 한번 가보자는 생각으로 갔던거죠. 멀었으면 아예 가지도 않았겠죠." 그렇게 다섯차례가 넘는 오디션 과정을 거쳤고 갖가지 상황에서의 연기를 펼친 뒤 비로소 캐스팅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1000대 1의 경쟁은 그렇게 통과했다. 캐스팅된 이후에야 중국계 대 배우 양조위가 상대역이란 것을 알게됐다.

"오디션 촬영 현장이 너무 진지하더라구요. 심지어 청소일을 하시는 분까지 현장에서 한 팀처럼 호흡이 맞는 것을 보고 함께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죠."

이안 감독은 탕웨이에게 1930년대 일본 압제하에 있던 중국의 시대 분위기를 익히도록 당시 영화와 책들을 읽고 보기를 권유했다. 책의 분량만 세박스 정도 됐다. 탕웨이가 잊을 수 없는 촬영장의 추억은 영화속 연극반 동료이자 항일 결사단의 배역들과 실제 스터디 그룹처럼 연기 스터디를 한 것. "왕리홍 씨 같은 경우는 대만에서 굉장한 청춘 스타인데 미국에서 오래 살았고 일찍 스타가 돼서 친구가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 연기하면서 오히려 마음 터놓을 친구가 생겼다면서 좋아하더라구요. 물론 우리도 즐거웠죠."

선머슴 같던 내 모습 영화가 끝난뒤 여자로 변해


"학교 다닐때나 평상시에는 그냥 바지를 주로 입었었어요. 머리도 질끈 묶고.. 그래서 약간은 중성적 이미지가 강했죠. 저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고. 그런데 영화를 찍으면서 치파오(중국 전통치마)도 처음 입어보고 여성스럽게 치장하다보니 부모님이 제 모습에 놀라시더군요."(웃음)

거대하게 솟구치는 파도처럼 격정의 시대를 사는 주인공 여성의 모습을 온 몸으로 표현한 탕웨이는 영화를 마치고 난 뒤 "비로소 여자가 된 것 같다"고 소감을 털어놨다. 그는 또 8개월간 왕치아즈의 인생을 살면서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격변기 1930년대를 사는 여대생이 미래에 대한 아름다운 희망과 꿈을 온전히 펼치기에는 세상이 너무 막막하고 할 수 있는 무언가가 가로막혀 있다는, 어찌보면 불행한 간접 경험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8개월 동안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보면서 일상의 내 주변이 평온하게 있다는 사실에 행복감을 느껴요. 낮에 점심을 드시고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졸고 계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조차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내가 찍은 정사씬,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났다'

이 청순미가 물씬나는 때묻지 않아 보이는 신인 여배우 탕웨이는 근래 개봉된 영화중에서 가장 강렬한 정사씬을 선보여 우선 화제를 일으켰다.

정사씬은 시나리오 상에서 이미 사전에 알고 있었다. 그 상대역이 양조위라는 사실에 더욱 긴장했다. 대배우와 신인 여배우의 조합. 누구도 믿지 않고 절대 악처럼 섬뜩함을 가진 암살의 표적 이 장군을 포섭하는 길은 장치아즈 입장에서는 육체적인 교감 뿐이었다.

어떤 달콤한 이야기에도 회유되지 않고 설득되지 않는 강자에게 이미 여러 유혹이 실패한 뒤 였기에 장치아즈는 아슬아슬한 육체적 거래를 해야만했다. 빈틈이 생기는 순간 이장군을 암살하는 기회를 포착하고자 함인데 진심으로 이 장군을 품되 죽여야 하는 임무를 가슴 또 한구석에 지닌다는 복합적 감정이 정사씬 안에 담겨 있다. 그것은 스크린을 통해 마치 실제 정사처럼 비춰졌고 두 사람간의 죽음과 쾌락을 넘나드는 정사의 모습은 에로틱하기보다 차라리 슬픈 표정이 됐다.

"연기를 잘해낼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걱정이었지, 정사씬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감독님은 정사씬을 논의하면서 양조위와 제게 '캐릭터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라'는 주문을 하셨어요. 그것은 분명 배우에게 설득력있는 음성이었죠. 그래서 몰입해서 찍었다고 말씀드릴 수 밖에 없네요." 그렇게 11일간 전쟁처럼 찍은 정사씬은 스크린을 통해 공개될 수 있었다.

탕웨이는 자신의 정사씬을 보면서 느낀 소감으로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났다"고 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탕웨이의 전쟁같은 정사씬은 기자 역시 쉽게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의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누구를 닮기 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연기를 가장 잘하는 배우가 되기를


배우지만 연출을 전공한 경험으로 훗날 연출에 대한 뜻이 있는지를 묻자 "이안 감독님과 함께 촬영하면서 저는 감독을 할 만한 배짱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겸손하게 손을 내저었다.

이안 감독에 대한 찬사는 끝이 없다. 탕웨이는 이안 감독을 "접혀진 병풍에 생긴 군데 군데 주름을 펼쳐내면서 더 많은 것들을 뽑아내는 대단한 감독"이라고 평가했다. "이 원작 단편 소설은 사실 세밀한 묘사가 있거나 감정 표현이 구체적이지 않은 어려운 소설이에요. 그런데 감독님이 그 행간의 뜻을 영화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을 보면서 절로 감탄사가 연발했어요."

장치아즈의 원작 소설 캐릭터는 많은 것이 비어있는 인물이었지만 이안 감독의 손끝을 거쳐 다양한 표정이 살아 숨쉬는 인물로 되살아났다고. "감독님은 정말 너무나 예리하고 대단하신 분이다. 배우 한명 한명 그 특성을 살려내 연기에 녹여내신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다 알고 계산하신다"고도 덧붙였다.

끝으로 얼굴만큼이나 솔직하고 당당한 탕웨이에게 '장만옥 공리 장쯔이 처럼 한국 관객에게 널리 알려진 중국배우들처럼 친숙해질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하자 "아주 신선하고 고마운 평가"라면서 활짝 함박웃음을 지었다. 한국 관객들에게 탕웨이는 '색, 계'를 통해 잊기 힘든 여배우의 새로움을 발견할 듯 싶다.


노컷뉴스 방송연예팀 남궁성우 기자 socio94@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