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일(39) 상명대 만화학과 교수는 풍자만화가다. 그동안 그가 그려온 만화들을 보면, 그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다. 7년 동안의 일본 유학 시절에는 점점 우경화하는 일본 사회에 대한 풍자를 종이 위에 옮겼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빽빽이 들어선 집들과 구불구불한 오르막 계단으로 연상되는 산동네 골목들을 자주 그렸다. 좀처럼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 산동네 오르막 계단에 앉아 소주 병나발을 부는 노인의 모습에선 사라져가는 것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느껴진다. 파스텔톤의 그의 펜 터치는 동화 같은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 일본 유학 시절 한 전시회에 출품한 그림이 떼어진 뒤 일본 사회에 대한 풍자만화를 그려온 고경일 교수. 그가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만화로 그리고 있다. |
“안전을 위해 작품 전시를 불허한다”
그렇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까지 부드러운 느낌은 아니다. 일본 유학 시절 그의 펜 끝이 겨냥한 것은 오른쪽으로 치닫는 일본 사회였다. 고 교수는 “일본에는 사람들이 좀처럼 입에 담지 않으려 하는 세 가지 금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세 가지 금기란 뭘까. 첫째 종교, 둘째 우익, 셋째 천황이다. 무슨 뜻일까?
“대학원 시절 진행했던 한 전시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고 교수가 말했다. 1995년, 교토 시내의 한 백화점에서 열린 미대 연합전시회였다. 당시 일본은 교주 아사하라 쇼코를 추종하는 옴진리교 광신도들이 일으킨 도쿄 지하철 독가스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는 인자하게 웃고 있는 모나리자 대신 조용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사하라의 모습을 그려넣은 뒤, 배경에는 무너진 건물들과 파괴된 도시, 핵폭발을 상징하는 버섯구름을 배치했다. 고 교수는 청주사범대 미술교육과 ‘87학번’으로 1993년 일본 교토에 있는 세이카대학 만화학과로 진학해, 그 무렵 석사학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전시회에 출품된 그의 그림이 떼어진 것이다. “무슨 일입니까.” 고 교수는 담당 교수에게 따지듯 물었다. 교수는 “테러 위험이 있기 때문에 다수의 안전을 위해 작품 전시를 불허한다”고 말했다. 짧은 논쟁이 이어졌다. “일본에는 ‘썩은 것은 뚜껑을 덮어둔다’는 속담이 있네.” 교수는 타이르듯 말했다. “한국에는 썩은 것은 도려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두 나라의 세계관의 차이랄까요. 그런 것들을 느꼈습니다.” 고 교수가 말했다.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일본에서는 단순한 포르노에서부터 아동학대 같은 변태적인 성욕을 표현하는 작품까지 무엇을 그려도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정신세계의 핵심을 이루는 근본적 가치들에 대한 문제에는 모두가 침묵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만화를 공부하는 한국인 유학생에게 그 ‘침묵’은 매우 기묘한 사회적인 현상으로 다가왔다. “일본은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이후 고 교수는 일본의 침묵에 저항하는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일본의 한 토론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됐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더군요.” 밤새워 시사 토론을 하는 <아침까지 생방송 토론회>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우익 쪽 연구자들이 출연해 “위안부는 일본의 책임이 아니다”는 주장을 계속 펼쳤다. 우익들의 주장을 몇 가지로 나눠보면, “그건 없었던 일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얘기는 믿을 수 없다” “서류로 된 증거를 대라” “(한국과 중국의) 반일 교육이 문제다” 등이 있었다.
그는 그날 밤부터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역사 왜곡 교과서로 악명을 높이는 도쿄대 교수 후지오카 노부카쓰와 만화 <혐한류>의 작가 고바야시 요시노리가 수많은 전쟁 피해자들의 뼈무덤 위에서 “증거를 대라~”고 노래 부르고 있는 만화였다. 두 사람의 머리 위 하늘에서는 ‘나눔의 집’ 할머니들이 분노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 만화는 1997년 6월2일부터 일주일 동안 교토에서 열린 그의 첫 개인전 ‘잃어버린 기억’의 대표 작품이 됐다. <요미우리신문> <마이니치신문> <교토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일본의 아픈 구석을 사정없이 비틀어버리는 한국 유학생의 참신한 시선을 보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고 교수는 일본 우익들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그의 지도교수 방으로 우익들의 팩스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종군위안부 문제는 사실무근이다”는 주장부터 “속이 더러운 조선!”이라는 욕설도 있었다. 결국 전시장 주변에는 혹시 있을지 모를 우익의 테러에 대비해 일본 경찰이 깔리게 된다.
<안녕, 사요나라> 이희자씨를 주인공으로
이번에 그가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야스쿠니신사 문제다. 고 교수에게 야스쿠니신사는 언젠가 한 번쯤 만화적 언어로 승부를 걸어야 할 중요한 문제였는지 모른다. 야스쿠니에는 일본 사회의 세 가지 금기가 하나로 녹아 있다. 신사는 일본 메이지 정부가 국민을 동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창조한 국가주의적 ‘종교’의 총본산이고, 그 신앙은 지금까지도 일본 우익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 전쟁터로 떠나는 일본 군인들은 “죽으면 야스쿠니신사에서 만나자”는 말로 일본 천황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다. 신사는 일본 천황의 신사다.
고 교수는 “7월 하순 완성을 목표로 작품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만화의 주인공은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안녕, 사요나라>의 주인공인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회장이다. 작품의 제목은 야스쿠니신사에 갇혀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이씨의 아버지 이사현을 상징하는 ‘빈 무덤’으로 정해졌다. 이희자씨는 아버지의 영혼이 돌아올 때 내용을 채우겠다며, 충남 천안에 마련해둔 부친의 묘비명을 쓰지 않았다. 고 교수는 “야스쿠니신사 문제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만화를 읽고 바람직한 한-일 관계를 고민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겨레21>과 민족문제연구소의 야스쿠니신사 취재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많은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일본 우익의 목소리도 직접 들어볼 예정입니다. 야스쿠니신사에는 일본의 침략전쟁에 강제로 끌려가 목숨을 잃어야 했던 2만1천여 명 할아버지들의 원혼이 억눌려 있습니다. 그중에는 살아 있는 분들도 있고,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져버린 조선의 황족도 있습니다. 우리가 모아낸 작은 정성들은 하루가 다르게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 사회에 둔중하고 의미 있는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계좌이체 우리은행 1006-401-235747, 예금주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모금자 명단
강명훈(1만원) 김홍석(1만원) 박준혁(3만원) 조성훈(3만원) 유동천(2만원) 조용호(5만원) 김기린(2만원)
* 그 밖에 ARS로 38명이 동참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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