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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북카페 기행

강개토 2008. 3. 11. 14:15
홍대 북카페 기행
2007.07.24 / 문성원 기자 

‘북카페’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슨 생각을 하나? “진짜 책 읽으러 북카페 가는 사람이 있기나 하냐”며 피식 웃는 냉소주의자들이 있는가 하면 “책 읽기만 좋다면 모든 카페가 북카페 아닌가요?”라고 반문하는 박애주의자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본래의 목적에 맞게 비치된 책을 꼼꼼히 선택해 성실하게 읽다 가는 현실주의자들도 꽤 많을 것이다. 북카페에 대한 반응만큼이나, 북카페들이 책을 대하는 방식도 가지가지다. 내용보다는 외모가 좋은 책들로 책장을 채운 카페, 어지간한 도서관 못지않은 목록을 자랑하는 카페, 그리고 특정 분야에 특화된 카페까지. 북카페의 종류와 찾는 이들의 성향은 수많은 조합을 만들어내겠지만 그걸 일일이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맞는 곳을 가면 그만이니까. 카페란 결국 취향이 99%를 결정하는 곳 아니던가. 그건 북카페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니 자가 테스트를 위해 홍대 주변으로 떠나보자. 익히 알려진 명가들인 ‘시가 있는 풍경(대학로)’이나, ‘프린스톤 스퀘어(이대 앞)’, ‘북스(인사동)’ 등을 두고 왜 홍대로 가냐고? 홍대는 최근 1년을 전후로 10여 개에 달하는 북카페가 생겨난, 한 곳에서 자신의 취향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서관+독서실의 역할을 하면서도 뜨거운 학구열보다는 시원한 여유가 공기를 채우는 북카페는 여름이 제격. 시기상으로도 딱 좋다. 시작은 홍대입구역이다.

수카라 |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오르막길이 힘들더라도 산울림 소극장 쪽으로 가보자. 소극장 1층에 자리 잡은 카페 ‘수카라’의 초록색 나무문을 열면 약간의 땀도,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도 모두 잊을 수 있는 보상을 받을 테니. 넓은 공간에 놓인 몇 안 되는 테이블들은 시골 평상에서 느낄 법한 한적함을 전해준다. 특이한 카페의 이름은 '숟가락'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 아니나 다를까 수카라는 일본의 출판사 아톤(artone)에서 만든 카페고, 수카라는 아톤에서 발행하는 한국문화 월간지 이름이다. 매니저 김미나 씨는 “잡지가 일본에서 한국문화를 알렸다면 반대로 일본문화를 한국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문을 열게 됐다고 말한다. 벽면 책장에는 일본에서 나온 각종 책들과 잡지들이 빼곡하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전시회도 넓은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오히려 차분한 분위기를 더한다.






VW | 번화가에서 제법 떨어진 수카라와 달리 대부분의 북카페들은 한 구역에 몰려 있다. 바로 최근 극동방송국 쪽 거리 주차장 주변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카페 골목이다. 이유를 찾자면 카페의 역할이 만남이나 수다를 떠는 장소를 넘어 개인적인 작업들을 하는 장소로 확대되었다는 점이 가장 클 것이다. 몇 달 전 문을 연 ‘VW’는 혼자 오는 이들이 유난히 많은 카페다. 현대적인 느낌의 갤러리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답게 내부에는 온갖 디자인 잡지들과 전문서적들이 즐비하다. 대부분은 카페 2층 한편에 있는 디자인 사무실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모은 서적들. 플래너 홍보희 씨는 “처음에는 우연히 왔다가 책들을 보고 다시 오는 분들이 많다”며 “찾아보거나 구입하기 힘든 책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소”라고 말한다. VW는 단순히 북카페에 머물지 않고 복합문화공간을 목표로 한다. 한 달에 2번 열리는 전시회는 곧 세 번째 전시를 앞두고 있고 이미 계획은 11월까지 잡혀 있다. 1년간 대관료 없이 진행되는 전시회는 많은 인디작가들의 장이 될 전망이다. 또한 2주에 한 번 열리는 독립영화 상영회는 1층의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행사다.



RJ pot | VW와 멀지 않은 곳에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RJ pot’이 있다. RJ pot은 찾는 이들이 가게의 모습을 북카페처럼 바꾼 특이한 경력을 가졌다. RJ pot 한켠에 책들이 쌓이기 시작한 것은 손님들이 책을 가져오기 시작하면서부터이기 때문이다. 카페를 운영하는 심레지나 씨는 “잡지도 처음에는 서비스 차원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손님들이 추천하는 잡지를 비치하면서 많이 늘어났다”고 전한다. 지금도 책보다는 커피나 샌드위치가 강점인 카페지만 책의 양만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날 것이다.



토끼의 지혜 | 극동방송국 건너편에 있는 ‘토끼의 지혜’는 작은 서점 같은 북카페다.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책으로 채워진 주변 북카페들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책이 우선시된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4개월 전에 카페 문을 연 최원석 씨는 “손님들이 어떤 책을 보고 어디에 관심을 갖는지 늘 체크한다. 대형서점은 많지만 거기 있는 책들을 편하게 보기는 힘들지 않나”라고 특징을 설명한다. 재치 있는 이름으로 장르가 분류된 책장들에는 그가 분석한 베스트셀러들이 가득하다.



작업실 | 바이더웨이 사거리 건너편 골목에 위치한 ‘작업실’은 1년 반 정도 만에 꽤 유명세를 얻은 북카페다. 방송작가가 본업인 김진태 씨는 “애초 개인 작업실을 열 생각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카페가 됐다”며 웃는다. 둥근 모양의 책장과 테이블 위 선반 곳곳에 쌓인 책들은 그의 20여 년 독서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지금도 2주일에 한 번씩 직접 신간들을 선별해 채워놓고 있을 정도. 김진태 씨는 “전국노래자랑처럼 오래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며 “낡은 맛은 또 그 나름대로 매력 있을 테니”라고 덧붙였다.



창 밖을 봐, 바람이 불고 있어. 하루는 북쪽에서 하루는 서쪽에서 |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창 밖을 봐, 바람이 불고 있어. 하루는 북쪽에서 하루는 서쪽에서’라는 외우기도 힘든 이름을 가진 카페가 있다. 옥상을 포함, 3층으로 지어진 ‘창 밖을 봐’는 교육문화 아카데미 ‘풀로엮은집’에서 1개월 전 연 북카페.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1층에는 선별된 헌 책들이, 좌식으로 꾸며진 2층에는 개인서적들로 채워져 있다. 수익금의 일부는 새로운 헌책을 구입하는 데 사용되고, 음료나 커피를 만 오천 원 이상 주문하면 한 테이블에 한 권씩 헌 책을 증정한다. 일명 ‘걸어가는 책’ 프로그램이다. 2층은 좌식인 만큼 편안함이 컨셉. 매니저 이종태 씨는 “누워서 만화책을 보는 손님들도 많다”며 “혼자 글을 쓰는 사람들부터 작은 회의나 세미나를 진행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손님들이 찾는다”고 전한다.



Cafe 작 | 카페 골목을 뒤로 하고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하다 보면 마포평생학습관 건너편에서 ‘Cafe 작’이라고 작게 쓰인 간판의 카페를 발견할 수 있다. 짓다, 만들다 등의 뜻을 가진 作이란 이름은 평범한 양옥의 외관과 공간을 그대로 살린 듯한 실내와 더없이 어울린다. 카페 한켠의 벽돌 선반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것은 손때 묻은 책들이다. 책의 주인인 우린비 씨는 “엄밀히 말해 북카페는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걸 카페에 그대로 옮겨놓고 싶었고, 그걸 함께 좋아할 용의가 있다면 함께 즐기고 싶다”고 취지를 전했다. ‘Cafe 작'은 ‘책 읽기 좋다면 그것 또한 북카페’라는 취지에 어울리는 소박함과 따뜻함이 묻어나는 곳이다. 이렇게 한 바퀴 돌고 나면 어지간히 까다로운 사람도 최소 한 곳 이상 자신에 맞는 북카페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들고, 혹은 빈손으로 찾아가 기분 좋은 약간의 소음과 함께 활자에 빠져들어 보자. 맛있는 차 한 잔과 함께.


7곳의 카페, 7권의 책



아직 한 곳도 정하지 못했다면 그들이 추천한 책들을 둘러보자.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추천한 곳을 찾아가보거나, 그냥 집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해보거나 또한 당신의 선택이다.

+ 수카라의 김미나 매니저 : 유종국의 <도쿄 로망 산뽀> “한국인 저자가 12년 간의 일본생활 동안 느꼈던 점들을 경쾌한 문장으로 풀어내 도쿄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다”

+ VW의 홍보희 플래너 : 해외 디자인 계간지 'IdN' “감각적이면서 뛰어난 디자인을 보여준다”

+ RJ pot의 심레지나 씨 :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 “인간의 욕구와 감성이 어떻게 건축에 반영됐고 그것이 다시 인간에게 어떻게 돌아오는지 잘 표현했다”

+ 토끼의 지혜의 최원석 씨 : 권윤주의 <고양이에게> “고양이를 기르지는 않지만 유쾌하고 즐거운 기분으로 봤다”

+ 작업실의 김진태 씨 : <기형도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 “그의 시집과 함께 오래전부터 좋아한 책이라 가장 애착이 간다”

+ 창 밖을 봐의 이종태 매니저 : 레슬리 여키스의 <잭 아저씨네 작은 커피집> “커피 쪽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계속 손이 가더라. 소설 형식이라 재미있으면서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준다”

+ Cafe 작의 우린비 씨 :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연인들> “자칫 진부할 수도 있는 소재를 새로운 형식으로 써내 읽는 내내 감탄했다"

사진 김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