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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신 인터뷰] 나는 행복할거야

강개토 2008. 5. 15. 06:19
 

본래 인터뷰는 블로그에 잘 안 올린다. 다만 윤종신은 편애하는 취재원이라. 평소 여러모로 관심이 많았는데 ‘두 시의 데이트‘ 진행자와 게스트 관계로 만나면서 드물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인연을 빌미로 삼청동에서 만났다. 잡지에 실린 것 보다 좀 더 긴 버전.

[윤종신 인터뷰] 나는 행복할거야
윤종신은 맥락 있는 가수다. 동시에 맥락 없는 예능인이다. 그는 그 둘 사이를 오가며 스스로를 시험 중이다. 큰 뜻이 있어서가 아니다. 행복 하고 싶어서다.


요즘 <명랑 히어로>가 참 재밌다. <라디오 스타>와는 또 다르다. 지난 주 광우병 파동에 대해 시원하게 다룬 건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명랑 히어로>의 기획 의도가, 진짜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 돌아가는 꼴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다. 모르는 건 그냥 모르는 대로 간다. 나만 해도 미리 공부해가는 게 없다. 공부해가면 다른 시사 프로그램이랑 다를 게 없잖아. 인터넷으로 뉴스 볼 때도 제목만 훑어보고 내용은 안 본다. 구라는 그래도 시사 문제에 대해 기본 지식이 있는 아이니까 논외로 치지만, 나랑 하늘이 같은 경우는 매 사안에 시민 평균의 시각으로 접근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막상 김구라가 정치 문제에 관련해 조금만 깊숙이 들어가면 다른 멤버들이 재미없다고 비난하고 난리던데.
걔가 원래 궤변이거든. 말 잘 들어보면 죄다 궤변이야(웃음). 또 시사문제 같은 경우는 편향성을 갖기 쉬운데 그럼 프로그램이 망가지니까 적절하게 조절하느라 그러는 거다. 언뜻 보면 막말 방송 같지만 생각보다 많은 고민이 깔려있는 프로다. 그런 지점에서 꽤 많은 조율이 필요한 프로그램인데 서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호흡이 맞아 떨어져 편하다.

그러고 보면 박미선, 이하늘, 김성주 빼면 전부 <라디오스타> 멤버다. 이런 경우는 드물지 않나?
방송사 측에서 <라디오스타> 멤버 네 명을 브랜드화하려고 한다. 일본에는 종종 그런 사례가 있는데 벤치마킹 하는 거다. 지금으로선 일단 <라디오스타>랑 <명랑 히어로> 두 개 돌려보면서 분위기 보는 정도다.

정작 방송국에선 별 생각 없이 짠 건데 괜히 너스레 떠는 거 아닌가.
눈치가 백단인걸.

5년 동안 잘해온 MBC FM <두시의 데이트> 진행자 자리를 내놓았다. 잘린 건가?
9월에 11집이 나온다. 015B의 정석원씨와 함께 작업했다. 앨범 작업에 더 신경 쓰고 싶어서 그만뒀다. 사실 지치기도 했고. 5년을 매일 했으니 지칠 만도 하지 않나.

그런데 왜 <명랑 히어로>에선 잘렸다고 했나.
그게 재밌잖아. 예능은 확실히 망가져야 재밌다. 특히 <명랑 히어로>나 <라디오스타>는 입으로만 웃기는 프로그램이잖아. 정통 예능계에서 그건 외팔이나 절름발이에 가깝다. 몸 개그가 작렬해줘야 마땅한대 그게 어려우니까 입으로라도 아주 제대로 망가져줘야지.

‘텅빈 거리에서’를 들으면서 여기 왔다. 한 때 015B의 얼굴 없는 미성의 가수가 지금은 예능계의 빛나는 늦둥이다. 예능계 판세가 리얼 버라이어티 쪽으로 옮겨오면서 윤종신의 진가가 폭발한 듯 보인다. 사실 듣고만 있어도 벅찬 게 요즘 예능 프로인데, 당신의 순발력을 보고 있으면 참 신기하다. 애초 가수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나야 워낙에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웃음을 주는 것도 좋아하니까. 내 노래만 들었던 사람들은 당황스러울 수 있겠지만 라디오 방송 들었던 사람들은 윤종신이 다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방송 중에 못 웃기면 집에 가서 반성하나.
(웃음) 안 그런다. 다만 자기 몫은 다 해야지.

지금 꺼내 먹고 있는 약이 뭔가.
영양제도 있고, 장에 관련된 약도 있고.

바로 그 지점인데. 윤종신 11집의 애절한 발라드를 듣던 사람들이 불현 듯 장 질환과 치질과 <라디오스타>와 <명랑 히어로>를 떠올리며 괴로워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이미지의 문제다. 음반 판매나 평가에 영향을 끼칠까 우려되진 않나.
그것마저 내가 모두 감안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윤종신의 음악은 변함없다. 사실 나이 들면서 완성도는 훨씬 좋아졌다. 그 이미지의 문제 말인데. 이런 생각은 해. 왜 슬픈 노래를 하는 사람은 다른 모든 면이 슬퍼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런 잣대 자체가 너무 촌스럽다고 본다. 평소 열심히 재밌게 살던 사람이 슬퍼질 때 더 지독하게 슬퍼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이미지 싸움이라는 문제에서 해방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예능 프로그램 나와서 웃기는 것도, 무대에 올라 슬픈 노래 부르는 것도 모두 윤종신이다. 왜 사람들은 그게 같은 인물일 수 없다는 걸까.

동의한다. 하지만 단지 개인의 노력이 아닌 시스템과 환경의 총체적인 환기가 필요한 일이라 어렵다.
내가 좀 해보려고. 대중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라는 화두에서 자유롭고 싶다. 내가 즐겁게 잘해나가면, 끝내 이해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남을 즐겁게 하고 싶다. 그런데 그걸 숨기고 발라드 가수로서의 이미지만 고집하면, 그럼 인간 윤종신이 행복할까. 이 모든 게 이미지에 유리하고 불리하고의 문제를 떠나서, 나는 내 상태가 꽤 유리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물론 음반에 대한 반응이 적을 수도 있다. 그건 내가 감수해야 할 몫이고. 그렇게 마음을 비웠다.

가수 윤종신은 예술가지만 예능인 윤종신은 딴따라라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그 두 이미지가 결코 중첩될 수 없이 허공에 떠 있는 셈이다.
그게 참 아쉽다. 내가 여기 와서 보니까 예능계가 결코 경시받을 곳이 아니다. 여기 사람들 대단히 명석하고 무서울 정도로 치열하다. 유재석이나 강호동은 심리를 이용하거나 대중을 다루는 기술면에서 천재적으로 발달돼있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내가 예능계에 몸담더니 괜히 편든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무시당할 사람들 아니다. 당신 일전에 나랑 배우 이야기 한 적 있지 않나. 많은 배우들이 영화 속에선 참 좋은데 실제 만나서 대화해보면 허당인 경우가 많잖아. 여긴 반대다. TV 속에선 바보다. 만나보면 굉장히 똑똑하고 고민이 많고 솔직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애초 <논스톱 4>에 참여할 때부터 이미지에 관련한 고민이 있었을 텐데.
출연제의가 들어왔을 때 정말 하고 싶었다. 그런데 주위에서 말리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그때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데 왜 다른 사람들 눈치를 봐야하는 걸까. 대중이 바라는 이미지에 맞춰나가는 내 인생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고민을 오래하는 편이 아니다. 금방 선택했고 참여했다. 요즘에는 심지어 내 앨범을 기다리지도 않는 사람들이 걱정스럽다며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 평소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너 왜 예능 프로그램 하냐”고 묻는다. 난 그게 진심어린 충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딴지를 걸거나 비아냥거리고 싶은 거다. 사실 내 음반 기다리는 사람은 전국에 몇 만 명 정도다. 비율로 따지자면 전 국민의 1퍼센트 정도?

사실 한국의 대중문화라는 게 말이 개살구라 대중이지 철저히 마니아 문화다.
음악은 정말 철저하게 마니아 문화다. 결국 나는 그 소수의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음악을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내가 범 대중을 상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TV는 다르지 않나. TV는 분명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 충실한 ‘대중’ 매체다.
그렇다. 한국에선 채널 선택권도 좁고 말이다. 다만 윤종신의 작업을 유심히 관찰하고 관심 갖는 사람은 대단히 적다는 말이다. 나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정말 적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나는 지금도 음악을 아주 잘 만들 자신이 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를 봐라. 예술 영화하면서 예능 프로그램에선 뽕망치 들고 아주 저질이다. 아주 정교하게 잘 하고 있는 분이다.

혹시 한국 가요계의 기타노 다케시가 되고 싶은 건가.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사실 내 음악이 다케시의 영화마냥 그렇게 깊지는 않잖아. 내 음악은 상업 음악이다. 다케시는 정말 극단을 걷는 것 같다. 나는 극단을 걷는 사람은 아니다. 어디 가서든 나는 스스로 ‘상업음악인’이라고 말한다. 나는 타인의 공감을 얻기 위해 음악을 한다. 대중이 이 음악을 좋아해주던 말던 상관없이 나의 음악을 하겠다는 주의가 아니다. 그저 내가 만들고 가사를 붙이고 부른 노래에 사람들이 많이 공감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기준에 그건 상업음악이다. 그래서 아티스트라는 칭호는 내게 많이 어색하다.

어쨌든 다케시처럼 두 분야에서 공히 인정받으려면, 특히나 당신 같이 전례가 없는 상황이라면 여러모로 짊어져야 할 짐이 많을 것이다. 감당할 자신이 있나.
난 내가 잘 해낼 거 같은데(웃음). 좀 웃기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윤종신의 행보를 ‘이미지에 대한 실험’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내가 2년 3년 사이 어떻게 무얼 이루고 또 버렸는지에 대해 봐주고, 결과적으로 실패하면 그 피해 전부다 짊어지고 가는 거지. 아무래도 보수적인 분들에게는 내 행보가 불편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기존 예능인들 가운데 텃세 부리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아니 뭐 꼭 텃세라기보다는 양다리를 걸치는 게 싫은 것이겠지.

방송국 텃세가 세긴 센 건가. 김국진, 김용만도 KBS에서 MBC로 옮길 때 그렇게 텃세가 심했다고 들었다.
자기 밥그릇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걸 나눠먹을 사람이 늘어나면 불편한 거다. 그런데 사실 조직이라는 게 그런 거 막으면서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거다. 마음이 트인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은 재능 있는 놈이다 싶으면 예능계 출신이든 예술계 출신이든 체육계 출신이든 상관없이 자기 울타리로 끌어들인다. 텃세 부린다고 그 사람들이 관두고 사라지나? 꾸준히 찾는 사람들이 있는데.

타고난 낙관주의자로 보인다.
타고난 건 아니다. 대학교 진학 때부터 그렇게 됐다. 내가 원래 연대에 원서를 넣는데 떨어졌다. 그래서 학원 다닐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추가 합격 됐다고 연락이 오는 거야. 알고 보니 원주 캠퍼스였다. 나 몰래 우리 담임이 원서 2지망에 원주 캠퍼스 국문과를 적어뒀던 거다. 조금 갈등하다가 재수하기 싫어 원주에 내려갔다. 1학년 때부터 거의 매일 기타치고 노래만 하다가 덜컥 교내 가요제에 입상하는 일이 생겼다. 그때 나를 눈여겨 본 방송 관계자 덕분에 방송 쪽에 기웃거리게 됐고, 결국 015B를 만나 데뷔할 수 있었다. 이거 정말 운명 아닌가? 내가 그 학교를 안 갔다면 평범한 회사원이 됐을 거라고. 그래서 늘 내 선택에 대한 믿음이 있다. 자신감이라기보다는 그냥 ‘잘 될 거야’ 식의 막연한 낙관이랄까.

가요계에 허리가 없다는 말들이 자주 들린다. 책임감을 느끼나.
내 성격 문제이기도 한데, 사실 전체 그림 안에서 내 역할이나 책임을 찾는데 둔감할뿐더러 관심도 없다. 이기적이라고 욕할 수 있겠지만, 사실 내가 하는 일 열심히 하다보면 자연스레 어떤 위상을 차지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가수협회 이사로 등록돼있긴 하지만, 사실 별로 하는 일이 없다(웃음).

일반적인 인식에 따르면 조직 안에서의 부속품이 되길 강요하지 않나. 그런 사람을 보다 사회적이고 능력 있는 자원으로 평가하고 말이다.
사실 무엇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전체 그림 속 요소로서의 역할에 능통하신 분들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런 역할을 남에게 강요만 하지 않았으면 한다.

앞으로도 예능 활동은 꾸준히 할 생각인가.
마음에 맞는 프로가 있으면 계속 할 거다. 음반도 더 자주 내려고 한다. 올해 하나 나오지만 내년에 하나 더 낼 생각이다. 난 곡을 굉장히 빨리 쓰는 편이다. 내게 있어서 음반은 거창한 기획물이라기보다 그냥 기록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와 멜로디의 결합이다. 그런 게 10개, 12개가 넘으면 그때 앨범 하나 내는 거다. 지금까지 늘 그런 식이었다. 지금 써둔 곡이 60개 정도 된다. 그런데 곡만 있지 그럴듯한 가사가 안 나와서 큰일이다. 확실히 내 삶이 즐겁고 부인도 있고 애기도 있다 보니 이별 노래에 적당한 이야기가 잘 안 떠오른다.

예전 기억을 열심히 복기해서 써야 겠다.
점점 더 가물가물해져서 큰일이라니까. 그런데 막상 하면 나오긴 나와(웃음). 시경이 <거리에서>같은 경우도 결혼 앞두고 정말 극단적으로 행복할 때 쓴 곡이거든.

인터넷 지식인 서비스를 검색해봤더니 누가 이런 질문을 했더라. “성시경의 <거리에서>를 작사 작곡한 게 정말 그 윤종신이 맞나요?” 요즘 10대들에게 윤종신은 확실히 가수가 아니라 예능인이다.
푸하하! 난 그런 반응이 정말 좋다. 그렇게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다. 그렇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즐겁게 살고 싶다. 그렇게 나는 끝까지 행복할 것이다.

허지웅 (<프리미어> 172호) 블로그에서 발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