作家 · Writer

"원고료 받아 온 남편, 내게 주먹질 하길래…"

강개토 2008. 6. 4. 07:47

 

조선일보


金 시인 아내 김현경씨 40년만에…
"남편은 인생이 詩…
그래서 모든 걸 공개 결심 그는 공산주의자?…
절대적인 자유주의자였죠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와락 안기고 싶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은 초여름 밤에 들이닥쳤다.
귀가하던 남편이 버스에 치여 병원에 실려갔다고 옆집 사람이 달려와 전했다.
1968년 6월16일 시단(詩壇)의 큰 별 김수영(金洙暎·1912~1968)은

맨발로 뛰어간 아내 앞에서 그렇게 졌다.

 
김수영 작고 40주기를 맞아 아내 김현경(81)씨가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미(未)발표 시 15편과 일기 30여 편을 공개했다.

발표 직후 일부에서 "미발표가 아니라 비(非)발표 시"라며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을 공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시인의 문학세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아내는 왜 덜 다듬어진 작품을 공개했을까.

27일 김씨가 사는 경기도 광주를 찾았다.
김씨는 시인의 육필 원고와 노트가 들어있는 커다란 반닫이를 열어 보이며
"깨끗하고 아름다운 부분만이 문학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시인(남편을 지칭)은 인생 전부가 시였어요.
생활이 시고, 시가 생활이었죠.
김 시인을 후대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미완성작도 있고 발표하기 싫은 것도 있었지만,

 

이제 와서 그것 때문에 김 시인이 비하될 것도 없잖아요."


반닫이 안에는 시인의 꼼꼼한 면모를 짐작할 수 있는 노트와 메모가 가득했다.
손으로 깨끗하게 베낀 T.S. 엘리어트와 W.H. 오든의 작품도 보였다.
서라벌예대와 서울대 영문과에 출강할 무렵, 강의 자료로 쓰던 노트라고 김씨는 말했다.
일부 노트는 바래져 손만 대도 가장자리가 떨어져 내렸다.
방 한쪽 벽에는 교과서에 실려 더 유명해진

마지막 작품 '풀'의 육필 원고가 유리 액자에 담겨 걸려있다.

이번에 공개된 작품 중

'김일성 만세(金日成 萬歲)'(1960)는 이념적 금기어를 직설적으로 담아 논란을 불렀다.

김씨는 "김 시인은 본질적으로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 시는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일 뿐, 공산주의 찬양과는 거리가 멀어요.
김 시인은 절대적인 자유주의자였어요. 공산당과 호흡을 맞출 수 없는 사람이죠."

문학소녀였던 김씨는 고등학생 때 김수영을 만났다.
여섯 살 차이 나던 시인을 김씨는 '아저씨'라고 불렀다.
40년 전 장례식 때,

김씨는 시인의 관(棺)에 마르틴 하이데거의 책을 함께 묻었다.

"김 시인이 워낙 철학 책을 좋아했어요.

내가 하이데거 전집을 사줬는데, 머리맡에 두고 수시로 읽었어요.
래서 그중에 한 권 '존재와 시간'을 넣어줬지요.
좋아하는 거, 나 떠나서도 실컷 읽으라고."

시 한 편에 300원 하던 시절이었다.
김씨는 양계(養鷄)와 바느질삯으로 한 달 생활비 2600원을 벌었다.
1949년부터 동거를 시작한 두 사람 사이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혼하자는 말도 나오고 별거도 했다.
그러나 '예술과 밥' 사이에서 고민하던 시인에게 받은 '벼락같은 감동'이 김씨를 지탱했다.

"한번은 싸구려 대중잡지에서 소설을 써달라는 청탁이 왔어요.
원고지 70장짜리였는데, 원고료가 대두 한 말 값일 정도로 후했어요.
김 시인이 나보고 쓰라는 거야.
물론 이름은 가명으로 하는 거였고.
그 정도야 하룻밤이면 뚝딱이지.
아침에 원고를 건네주면서 원고료 받아오라고 시켰는데,
한밤중에 술에 잔뜩 취해 와서는 다짜고짜 주먹질을 했어요.
'더러운 년, 나쁜 년' 하면서.
알고 보니,

원고료 받으려고 잡지사에서 기다리다

그 소설을 읽었는데 엄청나게 화가 났다는 거야.

내가 미워 죽겠더래요.
다음 날 아침에 해장국 들이밀고 방에서 나오려는데, 내 발목을 턱 잡았어요. '
우리 그런 거 써서 밥 먹고살지 말자.
굶는 게 낫겠더라.
' 그 말을 들으니, 두들겨 맞았다는 생각은 없어지고 눈물이 줄줄 흘렀어요."

1960년대 들어 김수영에게 시 청탁이 줄을 잇고 번역일이 밀려들면서 생활이 안정됐다.
식모도 둘 정도로 여유를 갖게 되자 김씨는 '이혼 선언'을 했다.

"그만큼 살림을 일궈놓으니까 내가 지치더라고.
나도 나를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돈은 필요 없고, 몸만 나갈 테니까 그만 살자고 했지.
크게 놀라진 않더라고. 생각해보겠다 하더니,

일주일 만에 '그럴 수 없다'면서 나를 잡았어요.

'내 시는 나 혼자 쓰는 게 아니다' 그러더라고."

김수영이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시인 박인환을 질투했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김씨는 "질투한 것이 아니라 경멸했다"고 말했다.
"멋만 부릴 줄 알지 시를 쓸 줄 모른다고 무시했어요.
유치환, 조지훈, 모윤숙도 안 좋아했어요. 관념만 잔뜩 들어있다는 거지."

김씨는 요즘도 김수영의 작품을 꺼내 읽으며 새로운 감동을 받는다.
"김 시인은 산문도 조각 같아요.
'정말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최고다' 하는 생각이 솟아나요.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안기고 싶어."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씨가 경기도 광주 자신의 집에서 김시인에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광주=신정선 기자 violet@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