作家 · Writer

쓰레기통 조물주로 변신한 ‘반쪽이’ 최정현씨

강개토 2008. 8. 9. 18:54

WASTECH이 소개하는 정크 아티스트 2 - 최정현씨

 

모든 것은 버려진다.

세상에 나와 쓰임새가 끝나면 폐기처분되는 게 자연의 섭리일 터.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그럴진대

사물의 목숨이야 더욱 가혹하게 끊어지고 내동댕이쳐 쓰레기 하치장으로 버려진다.

 

하지만 아닌 게 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 그대로 볼품없는 고·폐물들에게

생명을 ‘훅’ 하고 불어넣었더니 실로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워진다.

또한 해학과 웃음까지 깊숙이 내장돼 있어

보는 이들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신비의 세계에 ‘쏙’ 빠지게 한다.

아마 ‘천지창조’의 미켈란젤로조차

새로운 탄생의 경이(驚異)에 한참 입을 다물지 못할 것 같다.

 

지난 23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내

중심가에서 2㎞ 정도 떨어진 한 아파트 공사현장 인근의 허름한 작업실.

30여평 규모의 실내에는 마치 철공소처럼 산소 용접기 몇대가 보이고

주변에는 폐기처분 직전의 고·폐물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6·25 당시의 전황소식을 전했음직한 고물 라디오가 눈에 들어오더니

바로 옆에 괴상망측한 스피커가 앙증맞게 놓여 있었다.

다 쓰고 버려진 음식점용 큰 세제통 중간에 구 멍을 뚫어 헌 스피커를 끼워 맞춘 모습이었다.

음질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 최정현씨

탁자 위의 포스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코브라 뱀이 살아 있는 것처럼

빨간 혀를 날름거렸기 때문이다.

배밑에는 수십마리의 쥐가 달려드는 모습이었다.

 

 자세히 봤더니 다 쓴 컴퓨터 자판기와

마우스를 촘촘이 엮어 만들어낸

‘네티즌’이라는 작품이었다.

실물은 부산 해운대의 컨벤션센터(BEXCO)에 전시(2월4일까지) 중이라고

작업실 주인은 설명했다.

아울러 2005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6일까지

뉴질랜드에서 열린

‘일상의 연금술’ 전시에서

세계적 정크아티스트 26명이 참가했는데,

여기에서 가장 주목을 끈 작품이라고 귀띔했다.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수백개의 단추구멍으로 만든 올빼미,

버려진 의자를 이용한 코끼리 모습,

삽과 젓가락으로 엮어진 모기,

철도핀과 스프링으로 탄생시킨 ‘어린왕자의 보아뱀’,

그리고 도끼자루와 자동차 부품을 이용한 ‘맞벌이 부부’ 등 한두가지가 아니다.

 

또한 늘렸다 폈다,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면

침대와 의자, 책상과 가구 등으로 변모하는 ‘요술쟁이 쭉쭉이상’도 눈길을 잡았다.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이 더해 작업실 주인과 마주 앉았다.

 

최정현(47)씨.

정크아티스트, 즉 ‘고·폐물 예술가’이다.

전에는 만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대표작은 ‘반쪽이의 육아일기’.

15년전에 책으로 발간했는데 지금도 전국 서점에서 팔리고 있다.

이중 일부는 중3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을 정도다.

 

 

그는 서울대 학보사를 거쳐

1980년대의 운동권 유인물에 그림을 그렸으며 ‘말’지와 한겨레신문 초창기 만평을 그리기도 했다.

‘여성신문’에서 자신의 딸을 소재로 ‘육아일기’를 연재해 많은 인기를 얻었다.

 

다시 이력을 정리하면

1981년부터 2001년까지 20년 동안 만화가로,

이후 3년 동안은 목공예 예술가로,

3년전부터는 고·폐물 예술가로 활동 중이다.

 

‘종이-나무-철기’로 이어지는 흔치 않은 예술가의 삶이다.

특히 ‘철기시대’에 선 요즘, 고철이나 산업 폐기물들에게

새로운 생명과 이미지를 불어넣어 ‘조물주’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난해 9월 서울 북촌미술관에서 3000여점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생존작가로는 보기 드믈게 입장료 수입만으로 이익을 남길 정도로 많은 관람객(1만 5000여명)이 몰려

‘조물주’임을 실감케 했다.

 

“여기 있는 것들 중 90%는 버려진 물건들을 주워온 것입니다.

나머지는 고물상에서 돈을 주고 구입했지요.

용접으로 다리와 날개, 눈과 귀, 코를 만들어주면 다시 살아 움직이지요.

이 얼마나 뿌듯한 일입니까.

만화는 백지상태에서 창조하기 때문에 힘들지만

다 쓴 철은 어떻게든 한때 사용됐던 물건이기에 작품 힌트를 얻기에 좋습니다.”

 

그가 고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5년전 초등학교 5학년인 딸과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영국의 ‘런던 자연사박물관’에서

새의 부리 등 자연물을 모아 일상생활 도구와 비교해 놓은 모습을 보고

‘저걸 고물로 바꾸면 여기보다 관람객이 더 많이 오겠구나.’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단순 재활용이 아닌 메시지와 생명을 넣은 ‘고물 자연사 박물관’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것이다.

 

귀국한 뒤 딸은 여행기를 책으로 펴냈고 아버지 최씨는 고물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울러 기계제작소에서 용접기술 등을 익혔다.

그의 작업실 주변과 수원 변두리 일대의 단골 고물상만 12군데나 된다.

 

갈 때마다 되도록 완전 폐기물 위주로 골라

무게당 몇십원씩 값을 더 얹어주기 때문에

고물상 일꾼들에겐 VIP고객이다.

 

그렇게 고·폐물들을 모아 새 생명을 불어넣기 작업을 하다 보니

3년 만에 3000여점에 이를 정도로 열성을 쏟았다.

 

“버려진 철물에는 그 자체의 이야기가 있어요.

여기에 만화를 집어넣기 때문에 관람객들이 안 웃고는 못배기는 것 같아요.

또 쓰던 물건을 이용해 이리저리 내용을 맞춰주면 역사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고들 해요.”

 

뿐만 아니라 종이에서 나무로,

나무에서 고철로 바뀌면서 재기 넘치는 해학으로

부조리를 신랄하게 꼬집어 묘한 카타르시스마저 안겨준다.

 

최씨는 대구 출신.

어릴 적부터 혼자 그림을 그리고 뭔가 만드는 일에 무척 흥미를 느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각종 ‘제작대회’때마다 상을 휩쓸었다.

고1때에는 동네에서 우연히 초상화 그리는 사람을 알게 돼

잠깐 배우더니 곧바로 돈벌이에 나설 만큼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러던 어느날 가정방문 온 담임선생한테 적발(?)당한 것이 계기가 돼

학교 미술선생에게 순수미술을 배우게 된다.

 

이후 서울대 서양화과에 진학한 그는 학보사에서 만평을 그렸다.

이때 운동권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교분을 쌓았다.

또한 대학때 교내에서 투신자살하는 스토리의 만화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군 제대후에는 대학 친구들의 권유로 이른바 ‘지하 유인물’ 작업에 참여했다.

5공화국 시절인 당시만 해도 검열이 엄격했던 터라 몰래 숨어서 그렸다.

 

이름도 밝힐 수 없어 대신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계란 반쪽이’의 그림으로 저작을 표시했다.

 

이어 ‘말’지에서

2년6개월 동안 삽화를 그렸는데 주로 미국 관련 내용이어서 ‘

반미 만화작가’로 소문났다.

그러던 1988년 12월 지인의 권유로 ‘여성신문’에서 ‘육아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딸 아이를 낳은 터여서 자연스럽게 아이디어가 연결됐다.

 

경상도 출신 남자가

육아일기를 그렸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창피했으나

반응이 좋아 계속 그려나가게 됐다.

 

“만화를 그만 두고 철공으로 넘어갈 때 무척 힘들었지요.

남들이 왜 거꾸로 가느냐고 하더군요.

지금 생각해도 잘 결정한 것 같아요. 한국인의 손놀림은 정말 훌륭하잖아요.”

 

필생의 역작 이야기가 나왔다.

 

“2년후 산업 폐기물로 만들어질 집을 기대해 달라.”며 활짝 웃었다.

고물상이나 쓰레기통을 뒤지며 다시 생명을 불어넣기에 분명 그는

‘아름다운 조물주’였다.

 

 

■ 그가 걸어온 길

▲1960년 대구 출생

▲80년 영남고 졸업

▲84년 서울대 서양화과 졸업

▲85년 20대 ‘힘’ 전(아랍미술관)

▲89년 개인전 ‘그림마당 민’(서울)

▲94년 개인전 반쪽이 만화전(오사카)

▲95년 제1회 평등부부상 수상 (제2정무장관실)

 

출처 : 서울신문 _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2007. 1. 29일자 24면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