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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진 4년만에 드라마 복귀, 서민 가장·중견 멜로 ‘명품연기’ 화제

강개토 2010. 2. 13. 19:05


브라운관은 젊은 배우들의 전유물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희끗해진 머리, 투박하고 선 굵은 얼굴을 가진 중년의 이 남자,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배우 천호진(50)이다.

오랜만에 TV 속으로 돌아온 그는

방송 중인 <그대 웃어요>(SBS)를 통해서는 코믹과 눈물연기의 진수를 보여주며 우리시대 서민 가장을 온몸으로 대변하고 있다.

최근 종영한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SBS)에서는 못 다 이룬 사랑을 되새기는 애잔한 연기를 선보이며 중년의 멜로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증명했다.

눈빛과 표정 하나로 천의 얼굴을 오가는 30년 관록의 배우. 그를 최근 SBS 탄현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 출연 드라마 모두 화제가 되고 있어요.

 

 

“운이 좋았어요. 그동안 영화에 주로 출연했지만 최근 몇년 동안 속을 채워줄 만한 드라마를 만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시청률을 좀 더 올려보려고 욕심을 낼만도 한데 당초의 의도나 취지를 벗어나지 않아서 참 고마워요.

영화는 완성된 시나리오를 보고 출연 여부를 결정하지만 TV 드라마는 시놉시스만 보고 출연했다가 나중에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정말 많았지요.

극의 흐름은 시청률이나 분위기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배우는 자괴감 때문에 괴롭고…,

그런 점에서 4년 만에 출연한 이번 드라마는 끝까지 큰 만족감을 안겨준 작품들이었습니다.”

- 조민수씨와 함께했던 중년의 멜로 연기에 젊은 시청자들이 열광했는데요.

“나이 많은 배우들이 멜로연기를 할 수 있는 장이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경험을 했던 세대가 다시 그 감정을 살려내고 뭔가를 가감해서 새롭게 표현한다는 것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표현 방식과는 또 다르겠지요.

드라마에서 표현되는 감정은 많았지만 방식과 재료면에서는 다양성이 부족했어요.”

- <그대 웃어요>는 중년의 연기자가 극의 주요한 흐름을 이끌고 있는, 흔하지 않은 드라마입니다.

“인간미 넘치고 현실적이라는 점이 참 좋아요.

전 드라마의 사회적 책임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은연중 뭔가를 주입하고 교육하는 효과가 엄청나게 크거든요.

그런데 요즘 드라마를 보면 지나치게 현실을 예쁘게, 혹은 왜곡된 모습으로 채색하려고 합니다.

3D직종이 젊은 사람들에게서 외면받는 것은 드라마의 영향도 크다고 봐요.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이나 연기자들은 정말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대 웃어요>에서 그는 끔찍하리만큼 효성스러운 큰아들을 연기한다.

전 프로레슬링 선수였던 천규덕씨가 그의 아버지.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기가 무섭게 그는 “실제로도 효자냐고 물어보려고 하죠?”라고 되물으며 웃는다.

- 어떤 아들, 어떤 아버지세요.

“자주 전화도 못 드리고, 자상한 아들도 아니에요.

무뚝뚝하고 말없는 부자관계의 전형이라고 보면 돼요.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제가 출연한 영화를 직접 가서 다 보시죠.

그냥 ‘봤다’라는 말씀 외에 다른 평가는 일절 없으시고…. 저 자신도 굉장히 무뚝뚝하고 평범한 가장이에요.

집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겨놓고 그다지 신경쓰는 것도 없어요.

지금까지 제가 맡았던 수많은 배역들은 제 실제 모습과 많이 달라요.”

그는 작품 이외에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하면서 배우들이 인터뷰를 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홍보하는 것이 관례처럼 돼 있지만

그는 “배우는 자신의 모든 것을 극중에서 100% 다 보여주고 작품을 통해 관객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 출연했던 영화 홍보에 큰맘 먹고 나선 적이 있었지만 이틀 동안 30개가 넘는 매체와 인터뷰를 하며 내내 드는 생각은 “이건 아니다”였다고.

- 배우와 자연인으로서의 접점을 찾는 것은 끝없는 과제인 것 같습니다.

“배우를 시작한 뒤 죽을 때까지 따르는 숙명이죠.

그래서 작품이 아닌 다른 형태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에 선뜻 동의하지는 않아요.

배우로서 대중뿐 아니라 캐릭터를 대하는 것도 더 많이,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해요.

기업은 상품을 개발하고 연구해서 CF를 통해 대중들에게 전달하죠.

 

상품도 그렇게 철저히 연구하는데

하물며 사람의 인생과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달하려면 얼마나 깊은 고민이 뒷받침되어야 할까요.

그런데…, 많이 안타깝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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