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의 첫 만남도 운명이었고, 30일(한국시각) 눈앞에서 벌어진 현실도 가혹한 운명이었다. 악몽이길 바랬다. FC서울의 동계전지훈련 취재를 위해 지중해 동부의 섬나라 키프로스로 날아갔다. 첫 날 시차 때문에 일찍 눈을 떴다. 이국의 새벽 공기를 마시기 위해 해변으로 나갔고, 그 때 처음으로 그 선수를 만났다. 서울 트레이닝복을 입고 홀로 새벽 훈련을 하고 있길래 '누구냐'고 물었다. "곽태휘"라고 했다. 중앙대를 갓 졸업한 24세의 신인 곽태휘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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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 → 두차례 수술 → 재기 → 개막 열흘 앞두고 부상 낙마 |
왼쪽 눈 실명 딛고 '골 넣는 수비수'로 승승장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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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무명이었다.
하지만 프로 입단이라는 꿈을 이루었기에 누구보다 행복해했다.
미완의 대기는 곧 바람에 날렸다.
2007년 서울에서 전남으로 전격 트레이드됐다.
축구를 그만둘까 생각할 정도로 아픔이 컸지만 뜻밖의 기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전남 사령탑이었던 허정무 월드컵대표팀 감독을 만났다.
선수 발탁에 혜안을 지니고 있는 허 감독이 곽태휘의 잠재력을 끄집어냈고, 물 만난 고기처럼 비상했다.
그해 전남은 FA컵에서 우승했고, 허 감독은 7년 만에 대표팀 사령탑에 복귀했다. 곽태휘도 세상에 나왔다.
태극마크를 달았다.
2008년 2월 6일은 또 다른 이정표였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1차전 투르크메니스탄전(4대0 승)
전반 44분 A대표팀의 577분(인저리타임 포함) 골 침묵을 깨며 결승골을 터트렸다.
A매치 데뷔골이었다.
또 11일 뒤 동아시아선수권대회 한-중전(3대2 승)에서도 다시 한번 경기 종료 직전 결승골을 작렬시켰다.
'허정무호의 황태자', '골 넣는 수비수'가 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곽태휘의 과거를 더욱 분명히 알게 됐다.
이 과정에서 곽태휘의 과거를 더욱 분명히 알게 됐다.
사실 새하얀 피부와 곱상한 외모를 보면 영락없는 '온실속의 화초'다.
그러나 그의 축구 인생은 화초가 아니었다.
잘 나가는 선수라면 꽃을 피우기 시작할 나이인 17세 때 축구에 입문했다.
잘 나가는 선수라면 꽃을 피우기 시작할 나이인 17세 때 축구에 입문했다.
경북 왜관 출신인 곽태휘는 고 1때 무작정 대구공고 축구부 문을 두드렸다.
너무 늦은 나이라 모두가 황당해했다.
더구나 그는 평발이었다.
하지만 그의 축구 사랑은 막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축구를 시작했으나, 그의 앞 길은 순탄치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축구를 시작했으나, 그의 앞 길은 순탄치 않았다.
고 2때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왼쪽 눈 실명이다.
훈련 도중 볼이 왼쪽 눈을 강타해 망막이 찢어졌다.
12시간의 대수술에도 그에게 돌아온 것은 암흑이었다.
결국 휴학을 했다.
주위에선 다른 길을 모색하라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한 쪽 눈만으로 축구를 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또 흘렸다.
다행히 그는 1년 뒤 다시 축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남들이 3년 만에 끝내는 고등학교를 4년이나 다녔다.
이 뿐이 아니다.
이 뿐이 아니다.
고 3때는 허리디스크로, 대학교 4학년 때는 어깨 근육을 다쳐 고비를 맞았으나
시련은 그를 더욱 단단한 선수로 단련시켰다.
끝날 법도 한 운명의 시샘은 허정무호에서도 계속됐다.
끝날 법도 한 운명의 시샘은 허정무호에서도 계속됐다.
붙박이 주전이었지만 곧 암초를 만났다.
왼발목에 이어 오른무릎 전방십자인대 수술을 받으며 고행의 길을 걸었다.
부상에는 이골이 난 터라 포기하지 않은 끝에 부활로 화답했다.
3월 코트디부아르전에서 추가골을 작렬시키며 다시 주전 자리를 꿰찼다.
지난 10일 남아공월드컵을 향해 첫 발을 내디딘 이후 벨라루스전까지 3경기 연속 선발 출전했다.
하지만 벨라루스전 전반 30분, 그의 시계가 다시 멈췄다.
하지만 벨라루스전 전반 30분, 그의 시계가 다시 멈췄다.
상대 공격수 비탈리 로디오노프와 충돌한 후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허망하게 그라운드에 앉은 그는 왼무릎에 손을 갖다 댔다.
'월드컵은 끝이구나'라는 것을 직감했다고 한다.
그 순간 벤치의 허 감독은 "태휘야 일어나 별게 아니야, 오케이?"라고 외쳤다.
허 감독의 바람은 현실과 달랐다.
왼무릎 내측인대 부분파열로 최소 4주 진단을 받았다.
끊이지 않는 부상 악령은 월드컵 꿈까지 앗아갔다.
곽태휘 미니 홈페이지의 인사말은 한결같다.
곽태휘 미니 홈페이지의 인사말은 한결같다.
'세상이 가끔 나를 힘들게 만들어도 나는 결코 세상에게 지지 않는다. 내가 최고다.'
그는 최고다. 뜨거운 재기를 바란다.
< 노이슈티프트(오스트리아)ㆍ스포츠팀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 트위터=@newsme10 >
그는 최고다. 뜨거운 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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