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습지 생태보고서’ 등으로 주목받은
만화가 최규석(33·사진)이
신작 ‘울기엔 좀 애매한’(사계절)을 냈다.
“아이들이 처한 현실을 리얼하게 그리고 싶었어요.”
그의 말대로 이번 작품은 사회의 이면과 마주친 10대들의 우울과 좌절을 그린 이야기다.
주인공은 원빈.
잘 생긴 영화배우는 아니고 평범한 대입 수험생이다.
별명은 이름에도 안 어울리게시리 ‘불가촉 루저(loser)’.
못 생기고 돈 없고 ‘여자 사람과 대화 비슷한 걸’ 하지도 않는다.
주인공의 이름을 ‘원빈’이라고 설정한 데 대해 작가는 “이름과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아이러니를 그리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빈은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미술학원에 다니지 못했다.
원빈은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미술학원에 다니지 못했다.
고3이 되어서야 어머니의 결심으로 초강력미술학원에 등록한 그는 순식간에 몇 년씩 학원에 다닌 친구들을 위협하는 실력을 드러낸다.
미술학원 만화반 소속의 이 친구들, 역시 원빈만큼이나 복잡한 사연을 갖고 있다.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급 7000원을 받는 예쁜 얼굴의 은지,
뛰어난 재능으로 대학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어 재수중인 은수,
열심히 노력하지만 재능이 없는 지현……. 이들 중 원하는 대학에 간 사람은 누구일까.
최규석은 “미술학원 강사 체험을 바탕으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그렸다”고 말했다.
최규석은 “미술학원 강사 체험을 바탕으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그렸다”고 말했다.
가난한 현실로부터 도피하고자 만화를 택한 아이들이 가난에 막혀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예리한 관찰을 토대로 생생하게 그려진다.
아이들만큼이나 눈길이 가는 존재는 겨우 몇 컷 등장할 뿐인 학원 바깥의 어른들이다.
아이들만큼이나 눈길이 가는 존재는 겨우 몇 컷 등장할 뿐인 학원 바깥의 어른들이다.
밖으로 나간 아이들에게 따뜻한 세상이란 없다.
아르바이트생의 사소한 실수에 목소리가 굳어지는 식당 주인과
이틀치 일당 8만원을 한 손으로 받았다고 다시 빼앗는 헌책방 사장은 봐줄 만하다.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명랑만화 따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는 듯,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그저 냉혹한 현실이다.
작품 속에서 유일하게 아이들을 이해하는
작품 속에서 유일하게 아이들을 이해하는
학원강사 ‘태섭쌤’의 캐릭터엔 작가 개인의 성격이 어느 정도 반영됐다.
최규석은 “아이들한테 말을 함부로 하는 게 특히 비슷하다”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태섭의 입을 통해 퍼부어지는 위악적인 독설은, 낄낄거릴 수밖에 없는 유머를 갖췄는데도 불편하다.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기에 뇌리에 막바로 내리꽂히는 걸 피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은수의 말마따나, 우리들의 세상은 울기엔 좀 애매하다.
은수의 말마따나, 우리들의 세상은 울기엔 좀 애매하다.
지진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누가 죽은 것도 아니고.
하여튼 굴러가고는 있는데 이대로 살다간 이대로 죽을 것 같다.
만화를 좋아하는 10대들뿐만 아니라 폐부를 찌르는 촌철살인에 목마른 어른들에게 추천한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