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신문

신작 ‘울기엔 좀 애매한’ 낸 만화가 최규석씨

강개토 2010. 8. 21. 09:47

 “학원 강사 경험 살려 10대들 냉혹한 현실 그렸죠”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습지 생태보고서’ 등으로 주목받은
만화가 최규석(33·사진)이
신작 ‘울기엔 좀 애매한’(사계절)을 냈다.
 
“아이들이 처한 현실을 리얼하게 그리고 싶었어요.”
그의 말대로 이번 작품은 사회의 이면과 마주친 10대들의 우울과 좌절을 그린 이야기다.
주인공은 원빈.
잘 생긴 영화배우는 아니고 평범한 대입 수험생이다.
별명은 이름에도 안 어울리게시리 ‘불가촉 루저(loser)’.
못 생기고 돈 없고 ‘여자 사람과 대화 비슷한 걸’ 하지도 않는다.
주인공의 이름을 ‘원빈’이라고 설정한 데 대해 작가는 “이름과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아이러니를 그리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빈은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미술학원에 다니지 못했다.
고3이 되어서야 어머니의 결심으로 초강력미술학원에 등록한 그는 순식간에 몇 년씩 학원에 다닌 친구들을 위협하는 실력을 드러낸다.
 
미술학원 만화반 소속의 이 친구들, 역시 원빈만큼이나 복잡한 사연을 갖고 있다.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급 7000원을 받는 예쁜 얼굴의 은지,
뛰어난 재능으로 대학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어 재수중인 은수,
열심히 노력하지만 재능이 없는 지현……. 이들 중 원하는 대학에 간 사람은 누구일까.

최규석은 “미술학원 강사 체험을 바탕으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그렸다”고 말했다.
가난한 현실로부터 도피하고자 만화를 택한 아이들이 가난에 막혀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예리한 관찰을 토대로 생생하게 그려진다.

아이들만큼이나 눈길이 가는 존재는 겨우 몇 컷 등장할 뿐인 학원 바깥의 어른들이다.
밖으로 나간 아이들에게 따뜻한 세상이란 없다.
 
아르바이트생의 사소한 실수에 목소리가 굳어지는 식당 주인과
이틀치 일당 8만원을 한 손으로 받았다고 다시 빼앗는 헌책방 사장은 봐줄 만하다.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명랑만화 따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는 듯,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그저 냉혹한 현실이다.

작품 속에서 유일하게 아이들을 이해하는
학원강사 ‘태섭쌤’의 캐릭터엔 작가 개인의 성격이 어느 정도 반영됐다.
최규석은 “아이들한테 말을 함부로 하는 게 특히 비슷하다”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태섭의 입을 통해 퍼부어지는 위악적인 독설은, 낄낄거릴 수밖에 없는 유머를 갖췄는데도 불편하다.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기에 뇌리에 막바로 내리꽂히는 걸 피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은수의 말마따나, 우리들의 세상은 울기엔 좀 애매하다.
지진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누가 죽은 것도 아니고.
하여튼 굴러가고는 있는데 이대로 살다간 이대로 죽을 것 같다.
만화를 좋아하는 10대들뿐만 아니라 폐부를 찌르는 촌철살인에 목마른 어른들에게 추천한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