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만에 일반인 공개
국보 240호 윤두서‘자화상’도
윤선도 유물전시관은 오는 15일 정식 개관을 앞두고 일반인에게 미인도를 공개하고 있다.
도난당했다가 가까스로 되찾은 뒤 전시하지 않았던 미인도가 21년 만에 바람을 쐬는 셈이다.
미인도는 고산 윤선도(1587~1671)의 14대 종손 윤형식(77)씨가 1982년 4월 소장 유물을 정리하다 발견했다.
윤씨는
“일가 1명이 쓰레기 더미에 던져버린
‘새까만 종이’를 펼치자 아리따운 여인 그림이 나타났다”며
“책장 안 밑바닥에 깔려 있었는데, 아마 미인 그림이라 감춰놓으려고 종이를 깔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작품엔 낙관이 없어 누구의 작품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그동안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손자
청고 윤용(1708~1740)이 그린 18세기 후반의 조선 여인상으로 추정돼왔다.
종손 윤씨는
“사대부 집안에서 미녀 그림을 그리기 힘든 분위기여서
낙관을 안 찍으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1989년 해남 고산유적지관리소에 전시돼 있다가 사라졌던 미인도는
일본에 밀매되기 직전 절도범이 붙잡혀 해남 윤씨 종가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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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미인도가
윤용의 작품이 아닐 것이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이태호 명지대 교수(미술사학과)는
“미인도 속저고리는 앞섶이 아주 짧아 혜원 신윤복(1785~?)의 <미인도>와
제작 시기가 비슷하거나 그 이후”
라고 말했다.
18세기 후반 앞섶 길이는 85㎝,
김홍도(1745~?) 시절엔 25㎝,
신윤복 시절 이후
19세기 초반까진 18㎝
가량이었다는 게 근거다.
이번 개관식 땐
윤두서의 <자화상>
(국보 240호·사진 오른쪽) 진품이
처음으로 고향 해남에서 공개된다.
터럭 한 올까지 섬세하게 묘사된
자화상 속의 강렬한 눈빛이
인상적인 걸작이다.
또 윤씨 종가가 지켜온
유물 4600여점 가운데
220여점이 전시된다.
종손 윤씨는
“6·25 땐
다섯개에 유물을 넣어
녹우당 대밭에 묻기도 했다”며
“종부의 지혜로 지켜온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해남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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