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의 야생마에서 평야의 준마로
나루의 1집 [자가당착](2008)은 여러모로 인상적인 앨범이었다.
간결하면서도 직설적인 기타, 투박함 속에 스며든 감수성….
델리스파이스, 언니네이발관 등이 개척한 90년대 한국식 모던록 사운드의 재림이라 할 만했다.
84년생 대학생이 내놓은 데뷔작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기타 연주와 노래, 프로듀싱 등을 혼자 도맡은 ‘원맨 밴드’라는 사실은 더 믿기 어려웠다.
난 당시 이 앨범을 상당히 즐겨들었다.
나루가 2년여 만에 2집 [Yet]으로 돌아왔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너무 반가워 눈물을 흘릴 뻔했다.
앨범을 주욱 들어본 결과, 두 가지 변화가 눈에 띈다.
우선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앨범 전체를 지배하게 됐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1집에서도 일렉트로닉 요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강렬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기타 사운드가 전체를 리드했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선 기타가 한발 물러선 대신 신시사이저가 앞자리로 나섰다.
나루만의 방식으로 몽구스, 페퍼톤스 등이 쌓아온 복고적이면서도 세련된 신스팝 스타일을 접목하고 확장한 것이다.
두 번째 변화는 목소리다.
1집에서
다소 설익은 듯하지만 풋풋한 매력이 살아 펄떡대는 목소리로 노래했다면,
2집에서는
한층 깊어지고 숙성된 목소리로 노래한다.
이런 변화는 앨범 전체 분위기와도 맞닿는다.
1집에서 다소 들쭉날쭉했던 색깔이 2집에서는 하나의 톤으로 정돈된 듯한 느낌이다.
1집은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를 타고 거친 황무지를 질주하는 기분이었다면,
2집은 매끈하게 빠진 준마를 타고 평탄한 평야를 질주하는 기분이랄까.
타이틀곡 'Yet'과 강력한 타이틀곡 후보였다는 ‘June Song’은
이번 앨범의 성격을 대표하는 곡이다.
세련미가 돋보이며 대중적으로도 충분히 어필할 만하다.
개인적으로는 장자의 호접몽을 연상시키는
“춤을 추는가 춤이 나를 추는가”라는 노랫말이 인상적인 ‘먼데이 댄싱’과
1집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강렬한 기타 사운드가 살아있는 ‘지우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을 추천하고 싶다.
하나 아쉬운 건 1집 곳곳에서 섬광처럼 번뜩이던 기타 솔로를 좀처럼 들을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이번에 먼지 쌓인 1집을 꺼내들으며 다시 한번 절감한 건데, 나루는 기타리스트로서도 대단한 재능을 지녔다.
1집을 듣자마자 2집을 기대하게 되고, 2집을 듣자마자 3집을 기대하게 되는 아티스트가 얼마나 될까?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3집에선 예의 그 멋진 기타 솔로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글 : 서정민 한겨레 대중음악 담당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