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신문

- 만화가 이원복의 장미 살롱

강개토 2011. 1. 7. 17:36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14층 서재

 

책을 판 인세로 한 해에 최고 12억원(2004년의 경우)을 버는 사람의 집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속물인 기자는 그 대목부터 궁금했다.

대박의 주인공에게 집은 ‘행복한 나의 서재’이자 ‘돈 버는 공장’이 아닐까?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명예의 전당일 텐데, 그게 전부일 리는 없다.



그가 펴낸 한 세트 12권짜리 단행본의 누적 판매 부수가 1500만 부다.  

단행본 저자의 꿈인 밀리언셀러(100만 부)를 15년 연속 기록해야 가능한 천문학적 수치다.

더구나 그 책이 초등생·중고생을 포함한 성인들 필독서로 꼽힌다면,

저자는 ‘국민 교사’로 불려야 옳다.

교양 만화『21세기 먼 나라 이웃나라』의 저자

이원복(64?덕성여대 산업미술과 교수)이 사는 집을 찾아가며 그런 생각을 했다.

“실망하실 겁니다.

제대로 된 서재도 없고 저는 거실에서 주로 작업하거든요.”

인터뷰차 찾아뵙겠다는 전갈에 만화가 이원복은 겸손의 말부터 했다.

불문곡직하고 찾아간 곳이 그가 24년째 사는 서울 잠실의 장미아파트 단지.

풍광이 수려했다.

1970년대 아파트임에도 유지 보수가 잘된 탓인지

늦가을 초겨울 정취가 좋았다.

이곳 주민들은 ‘벌레 먹은 장미’라며 우스갯소리를 한다지만,

주인장 안내로 문을 들어서는 순간 찬사부터 나왔다.

완전 깔끔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 아마도 그게 주인장 스타일일 게다.

“우리가 사는 집과 별반 다를 게 없네요. 그러면서 뭔가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진심이다. 그게 전달됐는지 주인장이 멋진 말로 화답을 해왔다.

“여기가 저만의 ‘장미 살롱’입니다. 저는 평소에 그렇게 부르며 삽니다.”

바로 분위기가 따듯해졌는데, 그게 이 집의 포인트이기도 하다.

그는 장미아파트에서 24년째 사는 터줏대감.

그러면서도 흔한 아파트 공간을 나만의 살롱이자 작업실로 변신시켰다.

장미 살롱은 정확하게는 13.32㎡(4평) 남짓한 서재,

그것과 연결된 작업실이자 손님 맞아 담소하는 공간에 국한된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엔 집 전체가 살롱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말머리를 이원복표 라이프스타일로 잡은 것도 자연스러웠다.


사모님은 안 보이시네요

아내는 유학 중인 아들과 캐나다에 가 있어 저는 뭐 기러기 아빠 신세죠.

나이가 있으니까 요즘 말로 독거노인인가요?

독거노인도 여럿인데, 선생님은 화려한 독거노인이라서

‘DKNY’(독거노인을 영문화해서 앞 단어를 딴 농담)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그래요? 미국 의류 브랜드에서 따온 말인가요?

저는 그저 속 편하게 살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저만의 행복입니다.

핵심은 이래요. 마누라에게 충성하고, 자식에게 효도하자.

세상이 바뀌고 시속(時俗)이 달라졌으니 그게 우리 남자들의 운명입니다.

그걸 받아들이면 독거노인도 좋고 DKNY도 뭐 나쁘지 않고 그렇죠.”

삶의 고수가 따로 없다.

이건 립 서비스가 아니다.

장미 살롱은 소박하면서 화려하다.

166㎡(50평형)의 아파트에 혼자 살다시피 하다면 휑할 텐데

가족사진, 컴퓨터 게임 기구, LP판 등이 가지런하다.

일부러 반듯하게 정리해 놓은 것도, 흐트러져 정신 사나운 것도 아니다.

물론 인테리어는 ‘으리번쩍’한 것과 한참 거리가 있다.

번들거리는 대리석을 두르거나,

낮은 아파트 천장에 샹들리에를 매달아 보기에 민망스러운 구석도 찾아볼 수 없다.

이를테면 서재에서 설핏 보이는 게 빈티지급, 아니 완전 고물 스피커다.

기억하시는지. 요즘엔 추억의 브랜드가 된 1980년대 인켈 스피커.

요즘 누가 이런 걸로 음악을 듣나요

그래요? 소리는 잘 나옵니다. 아주 멀쩡해요.

 남들이 보면 웃을지 몰라도 저는 이걸로 지직거리는 LP를 올려놓고 음악을 즐깁니다.

그러면 되는 것 아닙니까?


 

 

 

키 큰 스피커는 흠집 하나 없이 보존돼 있는데,

책장 양쪽에 넘치는 책 더미 위에 냉큼 올라가 있다.

오디오 전문가라면 스테이지감이 떨어지고

저음이 붕붕거린다며 극력 기피하는 ‘꽝 세팅’의 전형인데,

그게 무슨 대수랴?

집주인이 멋지면, 그런 허술한 구석까지도 좋아 보이는 법이다.



거실에 있는 오디오,

 이것도 대중적인 홈 오디오인 보스네요

이건 이른바 5.1채널인데, 작지만 알차요.

리어 스피커가 주먹만 해 잘 보이지도 않잖아요.

저쪽 거실 반대편에 매달린 것 말예요.

시야를 어지럽히지 않아 좋은 거죠.

전 이걸로 TV 보거나 게임할 때 쓰는데, 만족합니다.

낼 모레 정년이신데, 게임을 다 하시네요

이 재미를 왜 마다합니까?

저는 보통 한국 남자와 좀 다른지 골프장엔 아예 발도 딛지 않았고,

바둑이나 카드, 화투도 전혀 몰라요.

얼굴이 알려져서 여자가 있는 술집에도 못 갑니다.

신문이나 지하철 광고에 등장하는 덕성여대 홍보에 제 얼굴이 실려 있지 않습니까?

사실 골프, 바둑, 카드는 시간을 너무 빼앗거든요.

또 하나 저는 사회적 네트워크도 일체 끊고 삽니다.

무슨 모임에, 포럼이다 동창회, 그런 건 전혀 나 몰라라 합니다.

이원복은

경기고 시절 외국 만화를 베끼는 아르바이트를 계기로 만화와 인연을 맺었다.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뒤 독일 유학 중 권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150주년 기념호 표지를 그리기도 했다.

1984년 귀국 뒤『먼나라 이웃나라』 만화를 시작으로 세상을 이야기해 왔다. 1

993년 제9회 눈솔상을 수상했으며

권위를 자랑하는 2009 볼로냐 국제일러스트전에

우리 일러스트레이터로는 처음으로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경기중 · 고를 나와 서울대에 들어간 이른바 KS인데,

KS모임은 참석하나요

거긴 나가는 애들만 모습을 드러내요.

경기 동창들 자존심이 얼마나 센지 아세요?

어쨌거나 동창회 나가면 반나절 깨지는데 시간이 아까워요.

그 시간에 책 읽고 만화 작업을 하는 게 낫죠.

참 대단한 그는 천연기념물 내지 희귀종이다.

몰려다니며 술 퍼 마시는 몰취미의 한국 남자와 다르다.

그런 자기 관리로 밀리언셀러를 열다섯 번 하는 책을 펴냈구나 싶다.

내친 김에 우악스럽게 한마디 더 물었더니,

1초도 뜸 들이지 않고 이원복표 라이프스타일의 핵심이 바로 튀어나왔다.

그럼 무슨 재미로 사세요

이 순간 제가 하고 싶은 걸 즐기는 것,

그 이외에 뭐가 또 있겠습니까?

내키면 음악 듣지요, 게임하거나 책을 보고 DVD 감상도 합니다.

이게 자유고, 여가 생활입니다.

혼자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여럿이서도 잘 놉니다.

여기 장미 살롱에서 보는 한강 전망이 얼마나 좋아요.

저길 보면서 간혹 시간을 내서 친구 불러 대화를 나누고

멋진 와인을 곁들여 즐기는 겁니다.

 

 

장미 살롱 이 공간이 선생님 댁의 백미인데,

통유리로 한강이 한눈에 보이고,

길쭉한 작업용 책상에 간단한 조명이 참 심플하면서도 쾌적합니다

본래 여기가 뭐 하는 곳 같습니까?


뭐, 다용도실 공간을 개조한 것 아닌가요

아니에요. 본래는 빨래 널기 위한 곳이었죠.

그 베란다를 손을 대 분위기를 바꿨어요.

한강 다리 아홉 개가 한꺼번에 보이는 아파트는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자, 보실래요? 광진교, 천호대교, 올림픽대교, 잠실철교,

잠실대교, 청담대교, 영동대교, 성수대교, 동호대교….

본래는 초창기 아파트라서 북쪽 창문을 아주 작게 만들어

겨울 찬바람을 막으려 했는데, 통유리를 넣어 시야를 확 열어버렸습니다.

아시죠? 외국인들이 한강 장관을 보면 뒤로 넘어집니다.

그들은 전망을 중시해서

개천이나 도로만 펼쳐져도 집값이 올라가는 판인데 유장한 강이 보이니 뻑 가는 거죠.

언제부터 여기에 사신 거죠
저는 뭐든 바꾸지 않는 편이라서

만화 스타일도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아파트도 그래요.

 24년째 사는데, 같은 단지에서 이 집으로 한 번 이사했습니다.

복도형이 아닌 곳은 여기 한 동이고, 한강 전망이 좋아 호시탐탐 노리던 중,

어느 날 아내가 귀띔하더군요. ‘여보, 맨 꼭대기 14층에 하나 나왔대….’

그 말에 제가 못을 박았지요. ‘웃돈 주고라도 사자.’

 저는 여러 번 이 얘기를 했지만, 나중에 죽어서 여길 나갈 생각입니다.

그러고 보면 참 동안이세요
여대 교수로 있으면 좋은 것 하나, 나쁜 것 하나 있습니다.

남녀 공학과 달리 제자들이 찾아오질 않는 게 안 좋은 점입니다.

각종 프로젝트에 포함시켜 작업을 함께하지 않는 한 제자 볼 일이 없어요.

좋은 점은 늙는 걸 못 느낀다는 점이죠.

남자 제자들과는 나중에 함께 늙어간다면,

여기 캠퍼스에는 스무 살에서 스물네 살까지 절대 연령의 여학생으로 가득하잖아요.

동안은 무리하지 않는 삶, 자족하는 생활에서 올까요 젊어 보인다고 말해 주니까

실제로 늙는 걸 모르고 주책 부려본 거죠.

자, 『먼 나라 이웃나라』 얘기로 갑니다.

그걸 보며 성인이 된 부모들은

다시 자녀들에게 그 책을 구입해 주는 단계입니다.

한 사이클 돈 거죠 재미있는 말 하나 할까요?
본래 그게 1981~86년『소년한국일보』연재물이었다가

서울올림픽 전후 책으로 펴냈어요.

그랬더니 메이저 신문에서는 눈길도 안 주던 차에

벼룩시장의 무가지 기자로부터 첫 인터뷰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첫 질문이 이래요. ‘어떻게 교수가 만화 그릴 생각을 했느냐?’

 교양 만화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던 시절인데,

사람이 개를 물었다는 식으로만 바라본 거죠.

요즘 그렇게 생각하는 이는 한 명도 없지요?”
물론이죠. 지난 20여 년 우리가 압축 성장을 했다는 말도 되고요

그 전엔 더 기막힌 일도 있었습니다.

원고 싸들고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계몽사를 찾아갔습니다.

그곳 사장이 저의 경기 동창인데,

그 친구 왈 ‘야, 어떻게 계몽사가 만화책 따위를 펴내냐?’ 였어요.

보기 좋게 퇴짜 맞은 거지요.

사실 만화 대본소에서도 제 책은 인기 없었습니다.

지문, 즉 말이 너무 많아서 술술 넘어가지 않고

꼬마들이 만화 보는 시간을 잡아먹으니 돈이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펴낸 곳이 어디죠 고려원입니다.

제 책은 대본소가 아닌 서점 유통을 한 만화 제1호로 꼽히는데,

그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거죠.

그러다가 1995년 인세 수입이 1억원을 넘어설 정도로 사회가 변하더라고요.

고려원이 부도 난 뒤 김영사로 옮겼고,

2004년에 12억원 인세를 받아본 게 지금까지 최고 기록입니다.

요즘은 독서 시장이 조금 줄어서…,

또 인세로 자료 수집하고 해외 출장 나가고 해서 쌓아놓은 건 별로 없어요.

그러나 자부심은 있습니다. 아마도 가장 깨끗하게 돈을 번 셈일까요?

제 지갑은 국세청이 빤히 들여다보니 유리 지갑을 넘어 수정 지갑인데,

때문에 탈세는 꿈도 못 꾼다니까요.

결국 『먼 나라 이웃나라』는 장미 살롱에서 거둔 열매인데,

책을 관통하는 화두는 뭐죠
한마디로 글로벌이죠.

얼마 전 G20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넓은 세상을 보는 법, 열린 세상을 지향하자는 메시시를 30년 전부터 담고 싶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상식이지만, 옛날에 그런 발상을 어떻게 하신 거죠
글쎄요. 독일 유학이 도움이 됐습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가 가톨릭 국가라서 의외로 한 가지 컬러의 문화이고,

영국은 성공회에서 보듯 다소 혼합된 기독교 문화권입니다.

미국은 또 달라요. 그들은 외국어도 잘 모르면서

미국이 우주인 양 착각하는 나라인데, 제가 선택한 독일을 달랐습니다.

모든 게 섞여 있거든요.

프로테스탄트가 강한 북부 독일은 남부 지역과 또 따르고….

때문에 저는 세상을 다각적으로 보는 훈련을 그때 했던 것입니다.

둥근 공을 보세요. 밝은 쪽만 바라보면 공은 밝은 색이지만,

그늘만 본 사람들은 어둡다고 하겠지요.

때문에 모든 방향에서 고루 살펴봐야지요.

젊은이들이 『먼 나라 이웃나라』에서 그런 걸 읽어내길 바랍니다.

  조우석(문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