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전 대통령, 한국 만화가를 데뷔시키다 | |
# 만화를 그리기 위해 라틴어를 배운다?
이라크전쟁. 한국과 지구 반바퀴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이 전쟁 소식이 한 한국 젊은이에게 들렸다. 전쟁을 선포한 부시 미국대통령은 일갈했다. "우리의 역사적 책임은 테러를 응징하고 악의 세계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 합중국의 대통령은 비장하게 한마디 더 보탰다. "미국이 벌일 21세기 첫 전쟁은 십자군 전쟁입니다." 이 대목에서 한국의 젊은이는 분노했다. '십자군전쟁? 니들이 십자군전쟁을 알아?!' 그 젊은이가 만화가 김태권이다. 그가 분노했던 이유는 미국이, 부시가 역사에 대해 정말 몰라도 너무 몰랐기 때문이었다. 기독교의 눈에 보면 십자군은 성지를 탈환하려는 성전이었겠지만 이슬람의 눈으로 보면 명백한 침략전쟁이었다. 기독교 성전을 가장한 탐욕과 무자비와 오만과 억지가 온세계를 뒤흔들고 끔찍한 흉터를 남긴 전쟁을 오독하는 것이 모자라 모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김태권이 할 수 있는 일은 이 터무니없는 전쟁을 조롱하는 것뿐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만화로 말이다.
그래서 그린 만화가 그의 데뷔작 <십자군 이야기>였다.
만화가로서 그는 그를 분노하게 했던 부시에게 처절한 응징을 한다. 부시를 극중 당나귀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물론 부시는 알턱이 없겠지만. 그러나 이 만화가 진정 돋보였던 점은 철저한 조사와 준비였다. 수많은 십자군 관련 중세 역사서가 참고문헌으로 잔뜩 올라오는 만화였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회화적 이미지는 중세 유럽 문화를 기록한 프랑스의 국보 바이외 태피스트리를 오마주한 것들이었다. 그런 정성에 힘입어 이 만화는 놀라운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김태권은 한국 만화판에서 단숨에 가장 돋보이는 신예로 떠올랐다.
이후 그는 계속 자기 영역을 넓혀갔고, 한국 만화판에서 독특한 지위를 스스로 만들었다. 아마도 거의 유일한 '인문학 전문 만화가'란 위치다. 인문학? 생각해보라. 인문학책도 안팔리는데 인문학으로 만화를 그린다? 그런데 그게 팔린다? 이 어려운 미션을 김태권은 도전해서 깨고 있다. 그가 처음 <십자군 이야기>를 들고 나왔을 때, 나는 그가 '이원복 이후 최고의 교양만화가'라고 평했다. 그 뒤 그가 보여준 행보는 분명 그런 표현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르네상스 미술을 만화로 그리고, 중국 한나라 시대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고, 에라스뮈스 등 서양 고전 학자들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고 있다. 이런 만화가가 한국에 얼마나 있을까? 서양 고전에 대한 만화를 그리기 위해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우는 만화가가 말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음식문화에 대해 논문을 쓰는 만화가는 또 어디있겠느냔 말이다. 그의 만화 <르네상스 미술이야기>는 그가 전공인 미학을 잘 살려나가 계속 이어가길 기대하게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지난해 <한나라 이야기>가 나왔다. 다시 한번 그의 가능성에 대해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그 이유는 그가 도상학에 기울이는 노력이었다.
개인적으로 <한나라이야기>는 김태권에 대한 기대가 컸던 나머지 아쉬움도 많았던 작품이다. 하지만 그가 만화 중간중간 삽입한 여러 고대 이미지에는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왼쪽 페이지 마지막줄 네모칸속 그림들은 중국의 전통공예인 '전지'에서 따온 것들이고, 오른쪽 페이지 상단에는 중국 고대 청동기들의 문양을 연구하고 가져온 것이었다. 중간중간 나오는 고대 중국의 화상석(묘지나 건물 돌 위에 새긴 조각들) 이미지들은 워낙 내가 좋아하는 이미지들이어서 더욱 반가웠다. 그가 늘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음을 절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작업실을 한번 찾아갔다.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그리는지 궁금해서였다. 찾아가본 작업실은 썰렁하고 평범했지만 서가에 꽂힌 책들을 보니 그의 학구열을 족히 짐작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그의 서가에는 도상과 역사에 대한 책들이 가득했다. 인터엣으로 외국 자료집을 사 모아가며 동서양 문화에 필요한 자료들을 갖춰가고 있었다.
별로 밝지 않은 방에서 그는 저런 자료들을 뒤지며 만화를 그리고 있었다. 모든 만화가들이 프로로서 최고의 노력을 쏟아붓겠지만 만화의 콘텐츠가 되는 '지식'에 많은 시간을 쏟아붓지는 못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태도는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만화가가 평생의 길이 될지 안될지 모르던 한 젊은 지망생을 한국 유일의 인문학 만화가로 만들어주었으니 부시는 뜻밖의 역할을 한 셈이다. 나비효과도 이런 나비효과가 없다. 독자로서 그의 만화중 최고작은 그래도 <십자군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출판사 문제로 독자들과 오래 만나지 못한 채 초반 도입부에 멈춰있던 이 재밌는 만화가 이제 다시 온라인에서 연재를 시작하고 책으로도 재출간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독자로서 빨리 이 장편을 그려 계속 읽을 수 있게 마감을 잘 하라는 압박의 의미에서 그와 했던 인터뷰를 소개한다. 지난해 중국 한나라 시대 유방과 항우의 쟁패를 다룬 <한나라 이야기>가 나왔을 때 했던 인터뷰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내는 만화잡지 <코믹타운>에 썼던 글을 약간 손봤다.
지금 한국 만화판에서 가장 독특한 만화가를 꼽자면 단연 김태권(37)이다. 김태권처럼 독학으로 만화가가 된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고, 김태권처럼 교양만화를 그리는 만화가도 꼽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김태권은 인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거의 유일한 만화가다.
김태권은 한국의 대부분 만화가들과는 전혀 다른 코스로 데뷔했다. 유명작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어시스턴트 생활을 하지도 않았고, 주류 코믹스 만화잡지에 연재를 하지도 않았다. 혼자 오래 습작 과정을 거치면서 대학 학보와 노동조합 소식지에 만화를 그리다가 만화가가 된 김태권은 2003년 일러스트와 만화로 동시에 데뷔했다. 김영사에서 펴낸 <장정일 삼국지> 일러스트와, 역사교양만화 <십자군 이야기>가 그의 데뷔작이다.
<십자군 이야기>로 주목을 받은 김태권은 이후 창비에서 나온 교양서 <철학학교>(2004)의 삽화를 그렸지만 정작 만화 단행본은 새로 선보이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숨을 고르듯 책을 펴내지 않았던 그는 2009년 김태권표 교양서 세 권을 한꺼번에 선보이며 돌아왔다.
5년 만의 교양만화인 두 번째 만화 <르네상스 미술이야기>(한겨레출판)를 먼저 펴냈고, 곧바로 르네상스의 고전 교양서 에라스무스 격언집을 삽화를 곁들여 풀이한 <에라스무스 격언집>와 시사교양만화 <어린 왕자의 귀환>을 내놨다. 그리고 2010년에는 모두 10권으로 기획하고 있는 대작 역사교양만화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비아북) 1권과 2권을 동시에 출간했다.
만화가로서 김태권은 지금 도약기를 맞고 있다. 데뷔 8년차에 접어드는 작가로서 김태권이 펴낸 만화책은 사실 많은 편은 아니다. 순수 만화책으로는 3종뿐이다. 하지만 그가 일군 성과는 예상 이상이다. 첫 만화 <십자군 이야기> 는 10만부 넘게 팔렸고, 나머지 책들도 1만부 정도는 쉽게 바라본다. 세 번째 단행본 만화 인 <한나라 이야기>에 벌써 자기 이름이 책 제목에 들어갔다. 그만큼 고정 독자층이 확실하다는 이야기다. 코믹스도 1만부가 쉽지 않은 요즘, 비소설 단행본 만화로 승부하는 몇 안 되는 만화가들 중에서 이정도 판매량을 보여주는 작가는 실로 드물다. ‘이원복 이후 최고의 교양만화가’란 수식어는 이제 결코 과장이 아니다.
▲ 소설 <장정일 삼국지>에 김태권이 그린 삽화
주류 만화판에서 보면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듯한 이 만화가는 어떻게 혼자서 자기 브랜드를 갖추며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그가 다른 만화가들과 다른 점은 도대체 뭘까?
김태권이 다른 만화가들과 구별되는 차이점은 그가 그동안 없었던 ‘인문학 만화’를 개척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만화가로선 드물게 서울대를 졸업했고, 미학(미학과 94학번)을 전공했다는 것은 오히려 중요하지 않다. 김태권이 가장 돋보이는 점은 그가 끊임없이 만화가로서 자신을 공부로 단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인문학을 만화로 그리기 위해 동서양 고전 원문을 독해하고, 라틴어와 희랍어를 공부하는 만화가가 과연 누가 있을까. 책을 집에 더 이상 쌓기 어려울 정도로 사들여 읽는 만화가는 또 얼마나 될까. 김태권은 무식할 정도로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수련 과정을 혼자 몸으로 부딪쳐가고 있다. 비효율적일지라도, 따분하고 지루하더라도 원칙대로 밟아나가는 할 것이 있다면 원칙대로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자세를 고집한다. 그런 비효율성이 오히려 그를 다른 만화가들보다 빨리 확실한 만화가로 만들어주고 있다.
효율만을 좇아 바로 그 순간 시장의 흐름과 이익만을 좇는 만화가들이 결국 붕어빵처럼 닮아가며 자기 정체성과 개성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우직하고 미련하게 시행착오를 쌓아가는 김태권이 만화가로서 드물게 일반 출판시장에서 자기 브랜드를 구축해나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 지금 만화를 업으로 먹고 사는 이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모두가 그처럼 인문학 만화를 그릴 수도 없고, 인문학 만화가 다른 만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김태권은 작가 개인이 확실하게 목표를 세우고 한 우물을 파나가다 보면 자기 길을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한국 만화시장에서 코믹스 만화도 어렵고, 학습만화도 너무나 치열하고, 성인 만화 시장이 존재하지 않아 도무지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분명 틈새시장은 존재한다. 만화란 특성을 잘 살리기만 하면 교양 만화, 인문학 만화도 얼마든지 시장에서 통할 수 있으며, 만화가의 진지한 열정이 느껴지면 독자들은 뜻밖에도 확실한 반응을 보여준다는 것이 바로 김태권 만화가 지금 한국 만화계에 전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전공을 보면 만화와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만화가의 꿈은 언제부터였어요? “만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이 중학교 때부터 성당 중등부 회지나 학교 교지에 만화를 그렸어요. 본격적으로 만화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건 대학교 졸업할 때쯤이었습니다. 대학원에 가려고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만화가가 되자고 마음을 먹은 거예요(웃음). 정말 하루아침에 그렇게 결정했어요.” -대학교 때는 운동권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주로 어떤 만화를 그렸죠? “꼭 만화가가 되어야겠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만화로 사람들과 소통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학생회에서 주로 정부 정책이나 사회 이슈에 관해 설명하는 만화대자보를 그렸어요. 대학교 때 자보 형식으로 4장을 꽉 채워 그린 만화가 있었는데 ‘생산성 문제’에 대한 거였어요. 임금 인상이 생산성 상승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경제 단체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이었어요.”
-만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다음에는 어떻게 했습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정말 말도 안 되게 무모했던 것 같아요. 그림, 스토리 그리고 출판에 대한 것까지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사회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기술이 타자 200타 정도 친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취업 준비가 안 되어 있었죠. 그래서 데생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정식으로 미술을 배우지 않아서 데생력을 키우는 ‘입시미술’ 교육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입시미술학원 강사를 하는 친구에게 돈을 내고 과외를 했어요. 그 친구가 저보고 ‘네가 지금 이 나이에 따라잡으려면 죽었다고 하고 해도 힘들거다’라고 했는데, 제가 그림 그리는 것을 보더니 몇 달 안 가서 가르치는 것이 흐지부지되어버렸어요. 입시미술의 기준으로 봤을 때 아직 멀었다 싶어 답답했나봐요.”
-그래서 다른 공부 방법을 찾았나요? “시중에 나온 미술책들을 사서 보고, 2000년에 한겨레문화센터 일러스트학교에 등록을 했어요. 그림을 먼저 그리다가 온 분들이 많았는데 제 그림이 좀 특이하다 싶었는지 뽑아주시더라고요.”
-일러스트 학원과정인데도 테스트를 해서 뽑나요? “그래도 나름 경쟁률이 2 대 1이었어요(웃음). 들어가서도 계속 그림 못 그린다는 소리만 들었어요. 입시미술이란 게 가지는 자체의 힘은 분명 있거든요. 그런 것들에 주눅들은 채로 지냈죠. 한겨레문화센터 일러스트학교에 6개월 다니면서 많이 배웠는데 특히 최호철(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교수) 선생님 특강을 들으면서 특히 큰 영향을 받았어요.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실제 눈에 보이는 사물들을 어떻게 그릴 것이냐였어요. 최 선생님이 세계 미술사를 훑으면서 대가들의 드로잉 작품을 보고 설명해주신 것들이 도움이 되었어요. 석고상보다 실물 사생이 중요하다는 걸 안 거죠. 최 선생님이 크로키용 스케치북에 끈을 걸어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그림 그리는 걸 보고 저도 그렇게 따라서 크로키 연습을 하고 다녔어요.”
-스토리 연습은 어떻게 했나요? “스토리도 한겨레문화센터 시나리오 학교에서 심산 선생님 수업을 들으면서 시작했어요. 스토리는 줄기가 있고 그 이외의 부분을 가지치기하는 기술이 제일 중요한 능력이란 것을 배웠어요. 들을 때는 그러려니 싶었는데 나중에 작업하다보면 계속 기억이 나요. 아직도 가지치기가 가장 어려워요. 책으로는 토비아스가 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무 가지 플롯>이 가장 도움이 되었어요.”
-대학 졸업 이후 만화가가 되기까지 먹고 살기 힘들지는 않았어요? “일러스트학교 마치고 2년 동안 골방에서 혼자 연습을 했어요. 자취하면서 잠깐 회사도 다니고 과외도 하고 보습학원 선생도 하고….”
-유명 대학 나와서 취업도 않고 만화가가 되겠다고 하니까 부모님은 뭐라시던가요? “대화를 거의 안했죠. 나이 서른 다 된 맏아들이 혼자 끼적거리고 있으니 좋은 이야기는 안 나오죠.”
-데뷔 전까지는 어떤 수련을 했어요? “노동단체나 노조, 그리고 대학 교지에 만화를 그렸어요. 주로 풍자만화, 설명하는 만화들이었는데 제가 돈을 내고라도 할 만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은 없었어요? “이상하게 확신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아찔한 건데(웃음), 제가 만화가가 될 것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어요. 실제 만화가가 되기까지 오래 걸렸지만 안 될 거란 생각을 안했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살면서 그렇게 확신 가져 본 건 그게 유일한 것 같아요.”
-진짜로 만화가가 되었다고 느낀 건 언제였죠? “<장정일 삼국지> 일러스트를 하게 되었을 때였어요. 집에 마음 편하게 얼굴을 들이밀 수 있게 된 거죠. 2002년 겨울에 어떤 분이 <문화일보>에서 새로 삼국지 연재를 하는데 삽화가를 찾는다고 알려주셨어요. 응모를 한 뒤로 한참 연락이 없어서 떨어졌나 했는데 연락이 왔어요. 기분도 좋았고 일단 ‘아, 이제 먹고 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십자군 이야기>는 어떻게 그리게 되었습니까? “2003년 봄에 부산대 교지에 <십자군 이야기>를 20페이지 한회짜리를 그렸어요. 부시(미국 대통령) 때문에 열 받아서 그렸던 것이었는데, 출판사 길찾기에서 단행본을 내보자고 해서 인터넷 뉴스매체 <프레시안>에 연재를 했고 책으로 나왔어요.” (김태권씨는 당시 미국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은 현대의 십자군 전쟁”이라고 말한 것에 화가 나서 십자군 전쟁의 진실-기독교 문명의 일방적인 이슬람 침공이란 사실-을 그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원래부터 교양만화가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건가요? “딱 그랬던 것은 아니고요, 교양만화와 스토리만화를 모두 해보고 싶었어요. 지금은 제 자신을 ‘지식만화가’라고 생각해요.”
-어떤 만화가들에게 영향을 받았죠? “고우영 선생님하고 허영만 선생님이 제 모델이에요. 두 분 다 내러티브가 강하시죠. 만화 안에 개연성 있는 세계가 완성되어 있어서 좋아요.”
-만화가로서 가장 힘든 건 뭔가요? “가장 기본적인 고민은 만화 장르의 형식에 대한 거예요. 제 스타일 만화 어법을 만들고 싶어요. 늘 고민되는 문제고 평생 고민해도 안 되겠지요.”
-어떤 스타일을 만들고 싶은데요? “일본 만화 스타일 어법하고, 미국의 상업 만화 스타일과 인디만화 스타일, 그리고 고우영 선생님 스타일 등을 한참 섞고 있는 중이에요. 인디 만화는 그림보다도 컷 배분, 연출에 관심 더 가요.”
-인문학 공부를 따로 하는 게 인상적이에요. 대학원에 진학하고 라틴어 공부도 한다고 들었는데. “ 서울대 서양고전학 협동과정을 다니고 있어요. 희랍‧라틴 문화를 배워요. 수료는 했고 논문을 호메로스 <오디세이아>로 쓸까 해요.”
-호메로스도 이야기꾼이란 점에서는 그 시대의 교양만화가나 마찬가지였겠네요. “호메로스는 강대진(고전학자) 선생님하고 4년째 매주 희랍어 강독을 하고 있어요. 한동안은 저 혼자 수업료 드리면서 했는데 지금은 몇 명이 같이해요.”
-희랍어와 라틴어를 배우는 건 만화를 잘 그리기 위해서예요, 아니면 그냥 재미에요? “재미있어서 하는 거예요. 의무감도 있기는 하죠. 이건 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옛날부터 들었어요.”
-공부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을텐데요.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밤을 새요. 텍스트들 컴퓨터로 찾아보는 일도 많고, 마감도 해야 하니까.”
-그림에서 가장 중시하는 건 뭔가요? “매번 그릴 때마다 제 한계가 보이고 문제점들이 튀어나와요. 새 작품을 할 때마다 ‘이번에는 그걸 넘어서보자’고 마음먹고 시도해요. 작업 시작하면 미술사의 계보를 한 번씩 훑어보는데, 삼국지 일러스트 할 때는 비어즐리(오브리 비어슬리: 19세기 영국 삽화가. 아름다우면서도 퇴폐적인 분위기의 독특한 그림으로 아르누보 등에 많은 영향을 줬다) 것을 봤고, <십자군 이야기> 때는 중세 세밀화하고 바이외 태피스트리(노르만왕의 잉글랜드 정벌 장면을 그린 11세기 프랑스 직물 그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를 봤어요. 당시 자료가 많지 않아서 많이 훑지 못해서 아쉬웠어요. 지난해 유럽에서 책을 8박스를 사왔는데, 주로 중세 미술 자료들이에요.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때는 보티첼리(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의 그림과 드로잉들이 재미있었어요. 보티첼리 그림의 선과 옷주름 같은 것을 많이 참고했어요.”
-이번 <한나라 이야기>를 보면 전지(종이를 오려 무늬를 만드는 중국 전통 예술)나 화상석(중국 후한 때 유행했던 묘실 벽 석재 조각. 당시 풍속과 문화를 새긴 것들이 많다)같은 중국 고유의 문화 아이콘 이미지들을 많이 활용한 게 흥미롭던데요. “<한나라 이야기>는 문인화 이전의 중국 그림들을 참고했어요. 화상석은 그림 자체만 보면 무지하게 센 그림인데, 그 이미지를 그림으로 구현해보고 있는 중이에요.”
-참고 문헌들이 무척 많습니다. “<중국화상석전집>이나 <고대판화집성> 같은 중국 고전 이미지들을 모아놓은 책들을 주로 봤어요. 국내 서점에 주기적으로 가서 사요.”
-한 달에 책을 얼마나 사죠? “100만원 정도 쯤 쓰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집에 책을 놓을 데가 없어서 좀 덜 써요. 인터넷으로 이미지 검색도 잘 되고요.” (김 작가의 집 안은 작업실은 물론 마루, 침실, 베란다에 책들이 쌓여있었다. 본가에도 상당량을 가져다 놓았다고 한다)
-극우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는데 좌파 만화가로 이미지가 고정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없어요? “다른 분들이 저를 그렇게 생각하겠거니 하는데 의외로 그렇게 보지 않으시기도 해요(웃음). 제 정치색을 드러내는데 부담은 없어요.”
-앞으로 하려는 작업은 뭐가 있나요? “<마르크스의 청춘>(가제)이란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제목이 좀 구리다고들 하는데(웃음), 1840년대 초반부터 1948년까지 사이에 청년 마르크스와 엥겔스, 마르크스 부인, 하이네가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하는 거예요. 경직된 마르크스 해석을 지양하고. 경직된 마르크스주의를 보고 이뤄졌던 비판도 지양하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나았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자유롭게 해석도 하는 거죠.”
-지금 만화가로서 가장 중시하는 평소 공부나 자기 투자는 뭡니까? “책읽기가 가장 큰 것 같아요. 읽어야 된다 싶은 책은 가리지 않고 읽어요. 책을 읽다보면 형식에 대한 감각이 생겨요. 만화의 장르적 형식, 호흡, 연출 같은 거죠. 꼭 내러티브가 있는 글이 아니어도 잘 쓴 글에는 흐름의 호흡이 있어요. 여기서는 앞뒤에 무슨 내용이 나올 거라는 복선을 깔아 둔다든지, 여기서는 한 번 더 강조를 해준다는지, 여기서는 클라이맥스로 터뜨려 준다든지 그런 것들이죠. 서경식 선생님 같은 분 글에는 확실히 그런 게 있어요. 호메로스 서사시를 읽은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사실 별 대단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는데 몇 만 행씩을 끌고 가면서 그 안에서 이야기를 쥐었다 놨다 하는 거죠.”
-교양지식 만화는 전달하는 내용을 자신있게 일반화해 설명해야 하고 객관성을 갖춰야 하는데, 부담감은 없어요? “엄청나게 많죠. 그 것 때문에 기획하다가 엎은 작업도 많아요. 사실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책이 얹혀 있는 거죠. 참고문헌이 있어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원전에 뭐가 있고, 어떤 학자가 어떻게 이야기했고, 그 학자가 믿을만한지 그리고 나중에 그 의견을 뒤집지는 않았는지도 확인해야 하고, 다른 학자들 의견은 어떤지도 봐야 하는데 이건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보통은 원전의 문제가 되었던 구절을 다른 학자가 어떻게 봤는지까지만 크로스체킹을 해요. 그리고 전공자에게 확인을 해요. <십자군 이야기> 때는 아는 이슬람 전공자가 없어서 어려웠는데 <한나라 이야기> 때는 좀 더 많이 확인을 할 수 있었어요. 참고한 책이 공인 학술서가 아니라 일반 교양서면 다시 전공 학자가 번역한 책으로 확인을 해줘야해요. 그리고 도서관에 가서 영어 번역본 보면서 원전 확인을 하는 거죠.”
-앞으로 어떤 만화가고 되고 싶어요? “발전을 하고 싶어요. 뭔가를 하고 나면 그 다음 단계가 보이겠지, 라고 그냥 생각해요. 옛날에 제가 만화가가 될 거라고 무조건 확신했던 것처럼 무모하고 이유도 없지만 지금 한 것 하고 나면 그 다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하다보면 길이 계속 나올 것 같아요." by 구본준 http://blog.hani.co.kr/bonbon/
|
'만화신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름과 반대로 사는 ‘반전·반핵’ 만화가 (0) | 2011.05.23 |
---|---|
"10여년째 전통 장 수호천사 만화가" (0) | 2011.02.11 |
- 만화가 이원복의 장미 살롱 (0) | 2011.01.07 |
일본망가"입체작품"으로만난다. (0) | 2010.12.12 |
데스카 오사무 의 아톰 (0) | 2010.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