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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 10대1 인터뷰] "난 은퇴까지 생각했다"

강개토 2011. 1. 10. 14:27

 


이-천-수. 어느덧 그도 30대에 접어들었다. 세월이 유수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후광은 화려했다.

6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며 K-리그를 평정했다.

2003년 빅리그 진출 꿈을 이뤘다.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무대를 밟았다.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했다. 그때가 스물두 살이었다.

스페인 데뷔전에서 그의 활약은 환상이었다.

그러나 데뷔골이 어시스트가 됐다.

그의 발을 떠난 볼이 골문을 향했다.

하지만 골라인을 통과하기 직전 코바세비치가 발을 갖다댔다.
지금도 "그때 그게 골이었다면…"하며 아쉬워한다.

 

하지만 그것이 운명이었다.

 

적응에 실패, 누만시아로 임대된 후 2005년 K-리그로 돌아왔다.

곧 다시 날개를 달았다.

2005년 울산을 정규리그 챔피언에 올려놓았고, MVP(최우수선수)를 거머쥐었다.

꿈이 또 다시 꿈틀댔다.

2007년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 진출했다.

그러나 또 '향수병의 덫'에 걸렸다.

2008년 수원으로 임대됐지만

차범근 전 감독과의 불화로 임의 탈퇴됐고,

가까스로 다시 기회를 얻어 2009년 전남에 둥지를 틀었지만

 첫 경기에서 '감자 주먹' 사건으로 도마에 올랐다. 6월 또 다시 임의 탈퇴됐다.

그리고 중동으로 향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알 나스르로 이적했으나 이번에는 임금 문제가 불거져 또 짐을 샀다.

모두가 이천수의 시대는 끝이라고 했다.

지난해 여름 사실상 마지막 기회를 잡았다.

J-리그 오미야로 이적했다.

그의 과거 때문에 계약기간은 단 6개월이었다.

벼랑 끝에서 다시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창피한 일이지만 해외 팀에서 처음으로 재계약에 성공했다.

첫 시즌에 연봉이 형편없었지만 올해 400%가 인상돼 어느 정도 자존심도 회복됐다.

그는 "10억원 정도 된다"고 했다.

세상은 이천수에게 풍운아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부러지고 갈기갈기 찢어졌다.

파란만장한 삶에 울고 또 울었다. 너무 힘들어 은퇴까지 생각했다.

7일 이천수를 서울 청담동카페에서 만났다.

스승, 선후배들이 질문한 10대1 인터뷰를 통해 그의 '서른 즈음에'를 들었다. 


-지금 현재 너의 솔직한 심정이 궁금하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꿈꾸고 있니.

(허정무 인천 감독)

사우디에서 나온 후 팀 이적이 쉽지 않았습니다.

10년 이상 한 대표팀도 함께하지 못했구요.

솔직히 힘들었습니다. 운동을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오래 쉬었고, 스캔들도 많았고…. 오미야라는 새로운 팀을 찾았지만 계약기간 6개월도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러나 전 운동장에서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전 한국 사람이고, 대표팀도 하고 싶고. K-리그도 뛰고 싶습니다.

K-리그 발전에 이바지한 후 은퇴하고 싶어요.

-일본에서 2년째 선수 생활이 국내에서의 이미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냐.

(정해성 전남 감독)

외국 생활 중 일본 생활이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편안하구요 좋은 이미지를 쌓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심판과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일본에선 선수들이 넘어져 있으면 더 일으켜 세워주고 그럽니다.

처음에는 이미지 강해서 절 많이 어려워했습니다.

이제 모두 친해졌습니다.

좋은 이미지로 탈바꿈 해야죠.

빠른 시간안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겠지만 꼭 변할 겁니다.

J-리그에서 먼저 변화된 모습을 보일 겁니다.

-사우디에선 어떻게 지냈니.

  훈련과 경기 때 말고 평소에는 무엇으로 시간을 보냈는지 궁금하구나.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

유럽에선 외로웠습니다.

하지만 사우디 생활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전화와 인터넷도 잘 안되고,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유혹이 없는 나라였어요.

두 달 지나니 쉽게 포기가 되더라고요. 운동하고 집에만 있었습니다.

외로웠지만 유럽에 있을 때보다 편했습니다.

사람들이 봤을 땐 강한 이미지지만 전 A형이라 소심하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해요.

재계약 얘기도 나왔는데 임금 문제가 없었다면 더 할 수도 있었습니다.

게 불편한 건 없었습니다.

-울산에서 같이 뛴 게 엊그제 같은데. 근데 언제 국수(결혼) 먹게 해줄거죠.

   후배들도 너도나도 결혼하는데.

(이상호·24·수원, / 한재웅·27·대전, / 조용형·28·알 라얀)

네가 질문할 짬밥은 아닌 것 같은데…. (실소)

국수는 언제든지 먹여줄 수 있다.

네가 말한 국수는 딴 국수 얘기인 것 같은데. 형도 한국 나이로 서른한 살이 됐다.

유럽이나 일본 선수들 보면 경기 전 아기를 안고 온 가족이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너무 예쁘더라. 나도 내 유니폼을 입은 '리틀 이천수'와 사진을 함께 찍고 싶다.

하지만 배필이 될 사람 못 만났다. 일단 국수부터 따로 사줄게. (웃음)

-본인이 악동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는데

  이미지 쇄신을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김병지·41·경남)

(홍명보) 자선경기 때

형 골문 비우고 볼을 치고나가니 관중석에서 '또 시작했다'고 하더라구요.

욕 먹었습니다

(복수를 한 것처럼 통쾌하게 웃은 후).

욕이 아닌 거 알죠.

모든 사람이 형을 좋게 보잖아요.

저도 악동이지만 천사같은 이미지를 갖고 싶습니다.

-내가 너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아서 물어볼 것이 없다.

너 나한테 보여준 것이 전부지. 비밀이 없지. (설기현·32·포항)

형 말이 맞습니다. 비밀 없어요.

형과 대표팀을 함께할 때가 행복했습니다.

해외 생활하면서 고민도 나눴고….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대표팀에서 다시 한번 함께 뛰고 싶습니다.

-K-리그 복귀를 희망하는 걸로 안다.

  K-리그에서 뛰게 된다면 어떤 각오로 뛸 것이냐.

 (이을용·36·강원)

K-리그에 복귀하면 관중들이 많이 올 수 있도록 봉사하고 싶어요.

한때 연속골을 넣을 때 속옷 세리머니를 시리즈로 했습니다.

내 속옷을 던져줬는데, 그 팬은 지금까지 이메일을 보내옵니다.

선수들의 이벤트가 있어야지 관중을 끌수 있습니다.

관중들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선수 되겠습니다.

K-리그 관중 많다는 얘기를 듣고 은퇴하고 싶습어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로 진출했을 때 생활과 축구환경이 궁금합니다.

(김동섭·22·광주)

스페인에 가기 전 K-리그에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월드컵도 뛰었고, K-리그에서 신인왕도 차지하고. 그래서 외국 생각이 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스페인은 세계 최고의 리그였다.

스페인은 음식 맛있고, 날씨도 좋고, 사람들 인심도 좋다.

하지만 외국은 외국이다.

힘들었다. 언어가 쉽지 않았다. 스페인 축구도 정말 정교하다.

볼 한 번도 못잡을 때가 있었다.

사비 알론소와 같은 팀에 있었는데 그때는 걔도 못 뛰었다.

내 축구는 새발의 피였다. 외국 진출에 욕심이 있으면 정말 많은 생각을 해야한다.

축구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스페인, 일본, 사우디, 한국 등 다양한 리그를 경험했는데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리그는 어디니.

(박진섭·34·부산)

당연히 K-리그죠. K-리그에서 나름대로 기록도 갖고 있구요.

워낙 동료들이 좋았잖아요.

형도 같이 뛰면서 '골 넣고 스타되라'고 격려도 해 주셨잖아요. (웃음)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팬이 많은데 팬들의 시선이 부담스럽지는 않은지.

(양동현·25·부산)

▶ (한참동안 헛웃음을 짓더니) 많이 컸다.

네가 나의 부담스러운 시선 좀 가져가라 (또 웃는다).

시선이 따가운 것을 느낀다. 이젠 내일이든 타인의 일이든 엮이고 싶지 않다.

아직 축구를 하고 있다. 나쁜 시선 좋게 만드는 것이 내 일이고 직업이다.

좋은 질문 고맙다. 앞으로 전화하지마라.

-K-리그로 복귀할 마음이 있니, 있다면 어느 팀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니.

(이철호 FS코퍼레이션 대표·일본 진출을 도운 주인공)

에이전트 아니라고 할까봐.

돌아 올 수만 있다면 팀은 상관 없어요.

지방 수도권 다 있어봤잖아요.

-도대체 요즘은 어떤 마음으로 볼을 차는 거니.

(임종헌 용호고 감독·울산 시절 코치)

▶ (다짜고짜 웃으며) 근데 선생님, 제자한테 욕 좀 하지마세요.

저 만큼 선생님 사랑하는 사람 어디 있다고.

전화할 때 욕부터 해요 (웃음).

유럽에 있을 때 운동장 나가는 것이 싫었습니다.

요즘은 축구하는 것이 너무 재밌어요.

운동장에 나가려고 차를 타는 순간부터 행복합니다, 누구보다 잘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비웠습니다.

-만약에 축구선수 안했으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 됐을까요.

(고창현·28·울산)

그동안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근데 검사가 멋있더라. (웃음)

TV에도 성적표가 공개됐는데 어렸을때 나 공부 잘했다.

욕심이 많고, 지기 싫어서 공부했다.

축구를 안하고 공부를 했으면 검사를 했었을 것 같다.

(믿어달라고 하소연한 후)

너무 부럽고 멋있는 직업이다.

-결혼할 나이가 됐는데 어떤 이상형을 만나야 결혼할 겁니까.

(이 용·25·울산, 최성국·28·성남)

이상형이 바뀌었다.

편안한 여자가 좋다.

내조의 여왕처럼 같이 있는 것만으로 남자를 올려줄 수 있는 여자면 좋겠다.

나를 휘어잡을 수 있는 여자였으면 한다.

외모는 안 본다.

-형은 다른 선수들보다 오래 쉬어도

꾸준히 운동한 선수보다 몸상태나 컨디션이 빨리올라오는데 몸관리를 어떻게 하나요.

또 쉴때 주로 뭘하는지.

(김정우·29·상무)

좋은 질문이다. (환하게 웃으며). 쉬면서도 몰래 운동을 많이한다.

비시즌 중 사람을 많이 만나지만 잠깐이라도 매일 운동한다.

그게 편안하다.

살이 안찌게 끔 만들어야 복귀할 때 편안하다.

축구 선수는 살을 빼는 것이 가장 힘들다.

팀이 없을 때 산에 참 많이 갔다.

그땐 청계산에 마스크맨으로 유명했는데. 넌 잘하니까 걱정이 없다. (웃음)

-경기전 모습을 보면 긴장도 안 하고 항상 자신감이 넘쳐보입니다.

(배기종·28·제주)

나도 긴장 많이 한다. 그

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을 뿐이다.

특히 후배들에게 그런 모습 보여주기 싫다.

난 모범이 되고 싶고, 버팀목이 돼야 한다고 믿었다.

-형은 언론이나 일반에 비친 것과 실제 이미지가 다르잖아요.

하지만 역시 안티팬들이 걱정입니다. (박성호·29·대전)

▶안티팬들은 당연하다.

2006년 독일월드컵 끝나고 나니 안티팬들이 없어졌다.

지금이야 많지만…. 충분히 바꿀 수 있다.

내 노력이다. 힘

들지만 너처럼 좋은 후배들이 많잖아.

 안티팬들을 날 좋아하고 기억하는 팬들로 바꾸고 싶다.

-요즘 대표팀 후배들 잘 아시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요새 뜨고 있는 손흥민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18세인데도 정말 잘하는데.

(구자철·22·제주)

나도 18세 때 대표팀에 처음 들어갔는데.

대표팀 후배들을 100% 다 알지 못한다.

힘들어서 한동안 대표팀 경기를 보지 않았다.

꿈이 있다면 어린 선수들과 대표팀에서 함께 뛰고 싶은 것이다.

흥민이 는 TV로 봤는데, 잘 하더라.

승승장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자철아. 너와의 인사는 대표팀에 들어가서 하겠다.

난 내 자신을 테스트해보고 싶다.

대표팀에 들어가서 도움이 안 되면 정중하게 얘기할 것이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아니다라고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욕심은 부려보고 싶다.

-우리 아버지하고는 사이가 어때. (차두리·31·셀틱)

▶(고민하다) 아버님이고, 선배님이고, 감독님입니다. 늘 존경합니다.

-일본축구에 뛰어든지 반년이 넘었는데 직접 부딪혀본 일본축구는 어떻던가요.

(윤빛가람·21·경남)

생각보다 강하더라.

예전에는 수비수들이 체력적으로 약했는데 바뀌었다.

플레이도 정교하다.

미드필드 플레이는 원래 좋았지만 수비도 향상됐다.

힘이 있는 분데스리가에 일본 진출 선수들이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더라.

-은퇴후에는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천수 형은 뭔가 독특할 것 같은데요.

(김형일·27·포항)

▶ (한참 고민하다) 아직 은퇴 후의 일에 대해 생각을 많이 안해봤다.

브라질월드컵에 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내년에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내년까지 대표팀에 못 들어가면 어렵다.

만약 대표팀에 합류 못하면 일본에서 2년 더 선수 생활할 것이다.

그리고 K-리그 돌아와 후배들을 가르치면서. 플레잉코치를 하고 싶다.

 1년 정도 멋있게 하고 그만두고 싶다.

하지만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5분을 뛰더라도,

한 번 더 밟고 멋있게 은퇴하고 싶은 게 꿈이다.

-전남 시절부터 프리킥 비법은

  항상 비밀이라고 했는데, 연습 노하우 좀 전수해주면 안되나요.

(김명운·24·인천)

프리킥은 많이 차라고 얘기했잖아. 그

만큼의 비법은 없다.

많이 차면 느낌이 온다.

볼의 공기압은 똑같지 않다.

세밀한게 체크해야 한다.

수비벽은 없다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차야한다.

그리고 디딤발이 중요하다.

난 4번 정도 디딘 후 찬다.

원하는 곳에 디딤발을 놓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자신감도 빼놓을 수 없다.

골키퍼와의 심리싸움에서는 무조건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천수 10대1 인터뷰 후기] "(박)지성이 형은 감동입니다"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천수(30·오미야)의 10대1 인터뷰가 마침표를 찍었다.

문을 나서기 전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카타르아시안컵에 출전 중인 박지성(30·맨유)의 국가대표 은퇴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둘다 1981년생이다.

하지만 차이는 있다.

박지성이 일곱 살에 학교에 들어가 학번이 하나 위다.

이천수는 박지성을 형이라 부른다.

이천수는 "최고의 선배다.

맨유에서 정말 잘하고 있다.

후배가 봤을 때 감동적이다.

은퇴에 대해 내가 뭐라고 얘기하긴 좀 그렇다"고 한 후 생각에 잠겼다.

한참 뒤 조심스럽게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는 "형이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난 더 대표팀에서 형의 플레이를 보고 싶다.

내가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함께 하고 뛰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대표팀에서 처음을 함께한 형이다.

맨유에서 더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하기 위해 대표팀 은퇴를 염두에 둔 것 같다.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존중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도 힘들 었을때 울기도 많이 했다.

한국 축구의 에이스가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

후배로서 존중한다.

후배들이 더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고 아쉬워 했다.

둘은 고교시절부터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그때는 이천수가 위였다.

2003년 빅리그(스페인)도 먼저 경험했다.

하지만 박지성의 타고난 성실함과 철저한 자기관리를 따라가지 못했다.

박지성과 이천수, 이름 석자의 무게가 현주소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