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를 볼 때 나는 탕웨이가 아닌 '애나'였어요.
내 모습이 어땠나 하는 것보다 그저 '영화 속 저 안개가 빨리 걷혀졌으면 좋겠다'는 절박한 심정이었지요."
배우 현빈은 탕웨이에 대해
"아직 '애나'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고 우려했다.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탕웨이는
'애나'처럼 다소 무미건조했고, 알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생각에 빠졌다.
다소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과 이따금씩 지은 미소에는 엷은 슬픔마저 느껴졌다.
'애나'였다.
그러나 영화 밖의 이야기에는
특유의 당찬 모습과 매듭지어진 말투로 솔직한 소회를 풀어나갔다.
'색계'로 세계적인 스타덤에 오른 탕웨이(32)에게 이번 첫 한국영화 출연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중국 내의 한류 열풍이 거센 만큼
오래 전부터 그는 유수의 한국 배우·감독과 함께 호흡을 맞춰보고 싶었고,
때마침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현빈과 인연이 닿았으니 이번 작품에 대한 만족도는 생각보다 컸다.
탕웨이는 '만추'에서
기존의 이미지를 벗고 수수감된 지 7년 만에 모친상을 당해
특별 휴가를 나오게 된 '애나' 역을 맡아 절제된 연기를 선보였다.
'만추'는 1966년 이만희 감독의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 한 것으로, 토론토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호평받기도 했다.
탕웨이는 이번 캐릭터를 위해 오랜 시간 마음을 비웠다.
감독은 그에게
'마음을 다 비우라'고 지시했고
텅 빈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 예정보다 일찍 촬영지인 시애틀을 찾았고,
그곳 화교들이 사는 지역에 머무르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몇 달을 살았다.
"시애틀을 너무 좋아하게 됐어요.
고향인 항조의 날씨와 닮았어요,
축축하고 음산하고…. 자살률이 높은 도시이고, 그래서 그런지 우울함이 느껴지기도 해요.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오래된 도시이고 역사나 문화 아름다운 배경이 있어요."
극중 탕웨이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남자 '훈'(현빈 분)과의 짧고 강렬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훈은 애나에게 햇빛 같은 존재예요.
7년 간 마음이 잠들어 있었고 그를 만나면서 얼었던 마음이 녹고 다시 삶을 살아간다는 희망을 얻어요.
애나는 오랜 시간동안 기다림이라는 단어도 잊고 있던 캐릭터죠.
훈을 만나 마음의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훨훨 날아가는 기분이었을 거예요.
그런 훈을 누가 싫어할 수 있겠어요."
배우 현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현빈 씨는 본인 나이보다 많은 나이를 살고 있는 것처럼 성숙하고 진지해요.
일에 대해 그리고 농담을 받아들이는 자세까지 진지하죠.
배우 현빈은 마치 영화 속 훈과 같아요.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주잖아요. 보조개가 돋보이는 현빈의 미소는 햇빛 같아요."
두 사람의 키스신은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현빈과 탕웨이의 키스신은 무려 1분 30초에 달한다.
"한국영화 멜로 사상 가장 긴 키스신에 도전하는 것"이었다는 감독의 목표대로
한국영화 키스신의 신기록을 세웠다.
"시나리오에는 키스신이 없었어요.
장례식 장면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키스신이 필요할 것 같다는 얘기를 감독으로부터 들었는데,
갑자기 심장이 뛰었어요.
나도 모르게 '아, 키스신이 필요하겠다'라고 몰입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키스신이 기대되기 시작했죠."
한국을 비롯 해외에서 많은 러브콜을 받는 그는 본인의 어떤 점을 높이 산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요즘에는 모든 나라 분들이 국제화되어 다른 나라 사람하고 일하는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지금은 어디서나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
나 또한 다른 나라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색다르고 재미있어 좋아한다"고 말했다.
"김태용 감독은 매우 세심하고 어린 아이와 같이 눈빛이 반짝여요.
하지만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죠.
말도 길게 하지 않고, 짧게 짧게 학생처럼 말하지만 주장은 강해요.
귀엽지만 은근히 전단력은 크고 진정성이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해외 생활을 즐기는 것은 외국어에 대한 관심과도 귀결된다.
'만추' 홍보 관계자는 "외국 배우 중에 한국말을 가장 빨리 습득하는 배우"라고 귀뜸 했다.
영화 시사회에서 들려준 탕웨이의 '현빈왔숑, 현빈왔숑'은 세간의 화제가 됐었다.
"이렇게 공식 행사가 아닌 비공식적으로 한국을 다시 찾고 싶어요.
한국인들과 함께 하며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요.
한국어가 아름답고 좋게 들리거든요.
중국어와 어순도 다르지만 호기심이 생기고, 배울 때마다 알아듣는 재미도 쏠쏠하죠."
때문에 영화 촬영 때는 통역을 부르지 않고 직접 얘기하는 것을 즐겼다.
탕웨이가 말하는 영어와 감독이 말하는 영어는
100%의 소통을 이뤄주진 해주진 못했지만,
어떠한 언어로도 전달하기 힘든 세밀한 감정의 교류를 가능케 했다.
통역사를 내세우면 빠르고 정확하게 소통이 가능할 텐데, 이렇게 직접 부딪히는 과정을 그녀는 사랑했다.
때로는 상대를 힘들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나,
이 때문에 감독하고 완벽한 호흡을 맞출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확신했다.
탕웨이의 실제 성격은 '애나'와는 정 반대다.
남자처럼 털털한 성격에, 평소 찢어진 청바지를 즐겨입는다.
최근 여성 레이서 역을 맡아 영화를 촬영했는데,
그의 엄마는 "딱 너 같다"고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을 인정했단다.
탕웨이는 한국영화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는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최소 100편은 봐야 어떤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모두들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다.
'정말 영화를 사랑하는 구나'하는 몰입하는 깊이가 느껴졌다"고 했다.
영어 대사를 무난히 소화한 그는 "감정에는 세상에 경계가 없는 것 같다"며
"또한 전혀 힘을 발휘하지 않는 것이 언어"라고 말했다.
영화 촬영 전 1년여 년 간 영국에 머물렀다.
때문에 영국식 영어를 미국식 영어로 발음해야하는 데에 신경을 쏟았다.
'만추'의 중국 상영은 아직 미정이다.
탕웨이는
"홍콩 신문에 '현빈 바이러스'라는
헤드라인으로 크게 기사가 실릴 만큼 중국에 현빈 씨 인기가 폭발적이다"라며 "
내 주변에도 현빈 씨에게 미쳐 있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에 같이 가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잠시나마 다양한 캐릭터로 분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낀다.
탕웨이 또한 연기에 발을 들이며
"이렇게 재미있고 편하고 좋은 직업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고 했다.
그는 "언젠가 미치광이 같은, 평소 할 수 없는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일상 생활에서는 표현하고 싶어도 못하는 감정이 있잖아요.
그런데 연기는 가감없이 진심을 표현할 수 있구나 느껴요.
사람들은 내 표현을 의심하지 않죠.
극중 미치광이가 될 수 있는 것이 배우의 특권 아니겠어요."
/ 두정아 기자 violin80@segye.com
/ 사진 한윤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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