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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바보 정치인’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이 2011년 12월 30일 새벽 별세했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고문’을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아오다 결국 세상을 떠났다.
향년 64세.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았던
김근태 상임고문은 지난 11월말부터 뇌정맥혈전증으로
서울대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병세가 악화되면서
딸의 결혼식에 참여하지 못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는데,
최근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별세하고 말았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상징과 같았던 인물이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 의해 물고문, 전기 고문을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김근태 상임고문에 대한
독재정권의 고문은 결국 세상에 알려지게 됐고
한국사회에서 고문을 단절시키는 계기가 됐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독일 함부르크 재단에 의해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이 12월 30일 새벽 별세했다.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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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 민주화운동에 힘써오다
지난 1996년 15대 총선에서 정치권에 합류했으며,
민주화운동 출신 정치권
인사들의 맏형 역할을 했다.참여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과 열린우리당 의장 등을 역임했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정치인답지 않은 정치인이다.
눈앞의 이익을 쫓기보다는 대의를 쫓았고,
정치 유․불리를 재기보다는 원칙을 뚝심 있게 지켰던 인물이다.
2009년 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을 때 그의 손을 잡아준 사람도
김근태 상임고문이었다.
모두들 검찰의 칼날에 다칠까봐 겁을 먹고 있을 때
김근태 상임고문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정치수사 중단’을 촉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는 줄 알면서도 지역주의 벽에 맞서 원칙을 지켜나갔던 인물로
사람들은 그를 ‘바보 정치인’이라고 불렀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또 하나의 ‘바보 정치인’이다.
정치부 기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참으로 드문 인물이다.
정치인들을 지근거리에서 바라보는 기자들은
정치인의 생활 태도부터 언행까지 그들의 장단점을 잘 알기 마련이다.
기자들에게
평가받는 정치인은 흔치 않지만,
김근태
상임고문은 그 대표적 인물이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한국에 민주화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도록 그 씨앗을 뿌렸던 인물이다.
김근태
상임고문을 따르는 사람도 진정성과 원칙을 중시하는 이들이다.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대표적인 인물이고,
정봉주 17대 국회의원도 김근태 계열로 분류됐던 인물이다.
정봉주 전 의원은
감옥에서 ‘김근태 별세’ 소식을 듣게 됐다.
김근태
상임고문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와 재야 민주화운동, 정치인생 등을 함께 해온
한명숙 이해찬 손학규 정동영 박원순 등 주요 인사들이
서울대 병원을 찾아 기적처럼 회복하기를 기원했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까지
한국정치의 역사를 이끌었던 중요한 인물들이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
김근태
상임고문의 최측근이었던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운 별이 졌다.
김근태의 깃발은 내려지지만
수백수천만의 가슴속에 해방의 횃불로 타오른다.
그의 이름은 민주주의!.
역사의 심장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