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남도 잡가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간드러지게 넘어가는 곡조가 멋을 부리더니 어느덧 흐느끼는 울음으로 변해 굽이굽이 한을 남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남도소리를 많이 듣고 그 소리가 귀에 배어 지금까지 좋아한다.
내 감수성은 성장해서 보다 유년시절에 더 강해 그때의 자연과 인정이 더 뚜렷이 머릿속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같은 인간성이 요즘같은 사나운 사바를 헤쳐 나가기엔 비상한 노력이 필요한데, 한 가지 다행스러운 건 내가 화가라는 점일 것이다.
나는 그림을 구상할 때마다 오랜 시간을 처음으로 내 시각 속에 배인 자연의 푸른 빛깔이라든지 무슨 꽃인지 하얀 꽃들의 인상을 쫓아 황홀한 행복을 느끼고,
그 무렵의 아름다운 인정을 그리워하고 비가 내리거나 함박눈이 내리는 날, 산과 마을이 희뿌연 회색으로 물들어가던 때를 떠올리며 행복감을 느낀다.
언젠가 이런 일도 있었다.
빨갛게 핀 영산홍 앞에서 아버지는 뒷짐을 지고 “노류장화를 꺾어들고…”하는 애조의 콧노래를 부르셨다.
그리고 나는 그 시대의 하이칼라풍(서양풍으로 치장하는 것)에 마음이 끌려 어느 유치원에서 결혼식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꼭 구경을 갔고,
그 희게 너울거리는 면사포와 하얀 구두굽을 볼 때마다 무한히 아름다운 꿈을 꾸었다.
내 작품에 그 신부와 멋장이 신사의 화신같은 게 많은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래도 노래는 남도 잡가가 좋다. 내 생활에 배인 노래들이기 때문이다. 그
렇다고 외국노래가 다 싫다는 건 아니다.
아르헨티나 탱고나 스페인 민요, 아일랜드 창가곡도 좋다.
천경자作 ‘孤’ |
이제 봄이 올 것이다. 내 고향 고흥 땅에는 하얀 오랑캐꽃이 피고, 참꽃도 애처롭게 피어날 것이다.
건넌뱅이 언니 등에 업혀서 본 살구나무도 다시 연분홍 꽃을 피울 것이고.
꽃을 좋아하던 할아버지 덕분에 뜰 가득 환하게 꽃이 피어있던 옥하리 외가 초가집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짜야, 짜야’ 부르시던 외할아버지, 귀염머리 땋아주시던 외할머니.
밥도 맛나고 할아버지가 들려주던 옛날 이야기도 재미나던 옥하리 시절을 잊을 수가 없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내 나이 어느새 여든이 넘었다.
그동안 여기저기 세상 구경하면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전시회도 몇 번 열었다.
이제 내게 남은 힘이 없다. 지나간 일만 생각날 뿐이다.
그리고 내게 남은 시간을 생각한다. <천경자 저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중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 중 한명인 천경자(86) 화백은
전남 고흥 출신으로 동경여자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평생을 채색화 작업에 몰두했다.
그가 남긴 강렬한 눈빛의 여인상은 굴곡진 삶을 살아온 작가의 분신이다.
천 화백은 글솜씨 또한 남달랐고,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스케치화도 여럿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