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신문

이끼의작가-만화가윤태호

강개토 2010. 7. 24. 17:17

'이끼' 원작만화가 윤태호, "고생한 배우들 틈에서 '인간적 고통'을 느꼈다"

 이런 만화가는 아마 처음일 것 같다.

영화 < 이끼>의 원작자 윤태호씨(41).
원작 만화가로서 영화 기획 단계부터 적극 참여하고, 홍보에도 발벗고 나서고 있다.
윤 작가는 정지우 감독이 쓴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했고, 배우 오디션 과정에서도 의견을 냈다.
또 정재영 박해일 유준상 유선 등 배우들과 함께 시사회 무대인사도 했다.
요즘에는 영화의 주말 예매율까지 챙기고 있다.
일단 판권을 영화사에 넘기고나면 한 발 물러서는 여느 소설가, 만화가와 다르다.

 영화 < 이끼>는 순항하고 있다.
지난 14일 개봉 후 흥행 1위다.
강우석 감독은 <이끼>를 통해 국내 최초로 누적관객 3000만명을 돌파했다.
영화의 흥행 성공으로 윤 작가는 요즘 배우 못지않게 바쁘다.
하루 2, 3차례 인터뷰를 소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언론 매체, 방송 프로그램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말할 정도다.
다음 주까지 스케줄이 꽉 차 있다.

 이는 영화도 영화지만 만화 < 이끼>가 워낙 인기작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화 <이끼>는 포털에 연재되면서 총 3600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히 열혈 마니아가 많았다.
"그 동안 수많은 일본 만화를 보면서 자괴감마저 들었다.
<이끼>를 보면서 만화 자체로 가슴이 뛰고, 한국 만화의 힘을 보여 줄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감에 더욱 가슴이 뛴다",
"대한민국에 이런 만화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는 톤의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윤 작가에게 < 이끼>는 의미가 큰 작품이다.
자칫 사장될 뻔한 위기를 넘기고
매체를 옮겨 연재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그게 빅히트했다.
최초로 영화로 제작된 작품이다.
윤 작가는 "나는 그동안 언더와 메이저의 경계에 있다고 생각했다.
작품의 캐릭터, 스토리, 개인 성향, 만화계에서의 위치가 그랬다.
이젠 메이저의 세계에 한 발 진입한 느낌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작가는 만화계에서 오래 전부터 실력을 인정받아 왔다.
허영만, 조운학의 문하생 출신이다.
이두호 화백도 차세대 만화가로 윤 작가를 첫손에 꼽는다.
허영만 화백은 < 이끼>에 대해 "태호. 항상 네 작품의 내면을 믿었다.
그림 좋고, 긴장감 놓치지 않는 연출 좋고,
시대는 당신들 것이다"라고 평가하면서
"이제라도 칼라 공부를 해야 쓰겄다. 윤태호에게 지지 않겠다"고 털어놨다.
윤씨는 1993년 <비상착륙>으로 데뷔해
'오늘의 우리 만화상'(99년),
'대한민국 출판만화대상 저작상'(02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우수상'(07년),
'부천만화상 일반만화상'(08년) 등을 수상했다.

 

 

 

◇만화가 윤태호 <스포츠조선 DB>
 -배우 못지않게 바쁜 것 같다.
 ▶인터뷰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다.
영화 흥행이 잘 된다고 좋아하거나 할 상황이 아니다.
막바지에 가야 그런 기분을 느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유명해진 것은 없다.
강풀처럼 아이콘이 되면 모를까.

 -연재 초반에 영화화가 결정됐다.
 ▶20회 쯤에 결정됐다.
18개 영화사가 관심을 보였다.
그때는 만화의 캐릭터나 전개, 결말 등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야기의 규모, 특히 캐릭터들의 고통의 크기를 규정하지 못했다.
나도 이렇게 서사 규모가 커질 줄 몰랐다.
이영지에 대해서도 판단을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강우석 감독이나 시나리오를 담당한 정지우 감독은 모든 얘기를 다 해달라고 요구했다.
 캐스팅하는데 필요해서 그랬을 것이다.
나는 만화를 시작하면서 결말을 확정하지 않았다.
물론 큰 줄기는 있지만, 대사 하나로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 영화는 의심나는 모든 것에 답을 내린 다음 전체 틀을 갖추고 시작하더라.
장르의 특성에 따른 차이라고 본다.

 -시나리오에도 참여했는데.

영화에서 원작에 없는 신을 넣을 때 부분적으로 대사를 써 줬다.
필요할 때마다 용병 역할을 한 셈이다.
김덕천(유해진)이 류해국(박해일)의 집을 혼자 방문했다가 미쳐서 말을 마구 쏟아낼 때,
마을 사람들이 육회를 먹는 장면에서 하는 "이것도 생식 아냐?"라는 대사 등이다.

 -원작과 결말이 다른 점은 서운하지 않나.
 ▶영화는 감독의 것이다. 영화의 결말은 강 감독의 선택이다.
강 감독은 처음부터 영화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갖고 있었다.
천용덕(정재영), 이영지(유선)의 비중과 역할에 대해서 만화보다 비중있게 생각한 것 같다.
초반에 '깜짝 놀랄 캐스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때 이미 천용덕 이장 역으로 정재영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강우석 감독은 원작이 부담됐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는데.
 ▶원작이 유명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만화의 이야기가 너무 넓어서 다듬기 힘들다는 것,
해명이 안 된 채 진행되는 원작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만화적인 뉘앙스를 지워야 하니까. 시나리오 회의를 하면서 내 만화가 '구멍 뚫린 치즈같다'는 걸 느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이 많았다.
강 감독이 그런 점들을 전부 고려해서 영화로 만들었다.
작업할 때의 그의 열정과 집중력을 보고 무척 놀랐다.

 -만화와 영화는 장르적으로 많이 다른데.
 ▶만화는 문하생 두 명과 그렸다.
이야기 뼈대는 혼자서 만들 수 있지만, 풍부하게 하는 것은 여러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는 한 장면에 감독과 음악, 미술, 조명 등 각 분야 스태프들이 참여한다.
촬영을 마친 후에도 가편집해서 내부 시사회를 수십 회 하더라.
특히 미술팀이 컴퓨터 작업하는 장면에서는 서러울만큼 부러웠다.
물론 감독이 조타수 역할을 한다.
또 만화는 캐릭터 변화의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면 대사로 처리하거나,
문장만으로 한 회를 채워서 마무리할 수도 있지만 영화는 그걸 다 설명해야 한다는 점이 달랐다.

 -캐릭터의 성격 변화도 많다.
 ▶이영지와 김덕천이 특히 그렇다.
그중에서도 이영지는 만화에서 반전의 도구로만 활용해 미안했는데,
영화에서는 존재감을 보여줬다. 주체적인 행동을 하면서 서브 텍스트가 확연히 드러났다.
김덕천은 지능이 떨어지는 바보에서 백지 같은 순수한 사람으로 변했다.
또 전반적으로 인물들의 대사 옥타브가 올라갔다.
만화에서는 모든 캐릭터가 저음이다. 우울하고, 어둡고, 진지하다.
영화적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서 변화를 준 것 같다.

 -원작에는 없는 코믹 요소가 새로 가미됐는데.
 ▶강 감독이 관객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승부수였고, 그게 맞아 떨어졌다.
쉼표를 주려는 감독의 감각을 존중한다.
영화는 산업적 요소가 강하다.
인터넷을 잘 못하는 시골 어르신들이 봐도 재미있어야 한다.
류해국의 "119야 1588이야" 대사는 좀 과하다 싶었지만.(웃음)

 -영화 공부를 한 적 있나.
 ▶내가 문하생 시절 때는 만화 교재가 없었다.
허영만 선생님 화실에서서 < TV카메라 촬영감독 교본>이라는 일본 책을 봤다.
미장센(화면 배치) 개념도 그때 배웠다.
나중에 <모래시계>나 <올드보이>의 시나리오를 구해 베껴쓰기도 했다.
개론서 <영화의 이해>나 러시아 감독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이론서 등도 읽었다.
다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만화의 류해국과 영화의 박해일의 이미지가 비슷하다.
 ▶찌질이에다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사람의 눈빛, 행동, 패턴을 그리려 했다.
뉘앙스를 중시했다.
이미지가 잘 안떠오르면 < 연애의 목적>이나 <질투는 나의 힘>에 나왔던 박해일씨를 떠올리며 그렸다.
하여튼 류해국은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이면 사소한 일이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져 진실을 파헤치는 인물이다.
우리 시대에도 그런 인물이 필요하지 않은가.

 -배우들과 무대인사까지 했는데.
 ▶서울극장 시사회 때 6개 극장을 돌았다.
뛰어난 배우들 틈에서 '인간적인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배우들이 영화 찍으면서 고생하는 걸 다 목격했는데, 안할 수 없었다.

 -평소에 영화는 많이 보나.
 ▶물론 영화를 좋아한다.
여러 영화를 보는 것보다 좋아하는 작품을 여러 번 보는 스타일이다.
이창동 봉준호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다 챙겨봤다.
 < 복수는 나의 것>, <살인의 추억>, <시>, <밀양> 등을 좋아한다.
최고작은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을 꼽는다.
극장, 비디오, DVD, 케이블TV 등을 합쳐서 아마 20번은 봤을 것이다.
주인공 김영호가 감당할 수 없을만큼 절망하는 걸 보면 속이 애리다.
영화를 보면서 어느 순간 '저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 텐데...'하는 생각을 하면, 속상하고 안타깝다.
그의 내면이 내 안에 쩍쩍 달라붙는다.
<시>도 정말 쓰라린 이야기와 달달한 이야기가 공존하는, 씁쓸+달콤한 느낌이 좋다.
'내 안의 감정을 속이고 싶은데 속이지 못하는' 할머니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외국영화 중에서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엑조시스트>를 좋아한다.

 -자신을 마이너 작가라고 했는데, 그건 무슨 의미인가.
 ▶주인공이나 스토리가 메이저답지 않았다는 것이다.
패배하는 주인공, 비장미 등에 가치를 뒀다.
20권짜리 < 야후> 그릴 때 주인공 5명 중 4명을 죽였는데, 그때 정말 나도 미치는 줄 알았다.
이제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싶다.
현재 직장인과 바둑을 접목한 만화를 구상 중인데, 그 작품에서는 변화를 주고 싶다.
하지만 페이소스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또 만화계 안에서도 언더와 메이저의 경계에 있었다는 의미다.
<이끼>로 조금 위치가 이동한 것 같다.

 -만화 연재 때 열혈팬들이 많았다.
 ▶단순한 지지보다 논쟁이 벌어진 점이 고마웠다.
악플러가 있기도 했지만, 그런 것에 일희일비할 나이는 지났다.
앞으로 독자들이 생각하는 퀄리티를 유지해야 하는 게 중요하다.

 -영화 시나리오를 써볼 생각은 없나.
 ▶만화에서 성취한 게 없는데 감히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앞으로도 영화를 탐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해외시장 진출이 목표다.
국내에서 그려서 그 작품을 수출하는 게 아니라, 아예 해외로 거처를 옮겨서 그 현장에서 작업하고 싶다.

 < 임정식 기자 dad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