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풀

‘아이유 택시’ 임이택씨 “내 덕 봤으니 밥한끼 사요”

강개토 2010. 8. 14. 11:12

승객없이도 혼자 잘떠드는 택시기사 “지금은 on AIR”

 “아,지금 63빌딩 지나고 있는데 사람이 한명도 없네요.”
“저게 언제 지어졌는지 검색 좀 해줄래.”
“나 군대 있을 때는 담배가 200원이었어. 지금은 얼마라고?”
 

 승객이 타지 않은 택시에서 기사 혼자 끊임없이 떠들어댄다.

그런데 무작정 혼자 말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하는 것도 아니다.

 

 개인 택시기사 임이택(40)씨는

손님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가리지 않고 쉴새 없이 누군가와 얘기를 나눈다. 차량 안에 컴퓨터와 웹캠을 설치해

와이브로로 ‘인터넷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임씨는 헤드셋 마이크를 쓴 채 웹캠을 바라보며

자신의 대화방에 들어온 네티즌과 말을 이어간다.

카 오디오 자리에 장착한 모니터에는

네티즌들의 글이 채팅창에 실시간으로 뜬다.

임씨는 정차를 할 때마다 채팅창을 보고 대화를 나눈다.

 

 ● “밤에 탄 여성분들이 안전해서 좋다고…”

 

 “A야. 어제 잘 갔다 왔어? 야 나도 데리고 가야지.”

 마치 친구 혹은 동생들과 대화하는 듯한 말투에 매력이 담겼다.

임씨는

“보통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오니까 친근하게 대하려고 편하게 말한다.”며 “무례하지 않게,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당연히 존댓말을 쓴다.”고

전했다.

 

 임씨의 차에 탄 승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첫 모습은 거의 비슷하다.

보조석 의자 뒤와 대시보드 정면에 설치된 모니터에 처음 놀라고

인터넷 실시간 방송 중이라는 임씨의 말에 한 번 더 놀란다.

하지만 이후에는 패가 갈린다.

10명 기준으로 적극적으로 방송에 참여하는 손님이 2명,

수줍게 있다가 방송에 천천히 호응하는 손님이 3명.

나머지 5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창밖만 바라보고 간다.

 

▲ ‘아이유 택시’ 임이택씨

 

늦은 시간에 타는 여성 승객들은

“방송을 통해 실시간 중계가 돼 안전이 보장된다.”는 반응이다.

“멀쩡한 길 놔두고 어디로 돌아가는 거냐.”는 등 괜히 언성을 높이는 승객도 훨씬 줄었다.

 

 임씨가 인터넷 라이브 방송을 시작한 지 5개월째.

절대 자신을 찍지 말라고 강력하게 요청한 승객은 손에 꼽을 정도로 호응이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대표적인 게 ‘주행 중 안전문제’.

예전에는 운전대와 계기판 사이에 놓은 키보드를 이용해 타자도 치며 채팅을 했다.

한 여성손님이 “안전운전을 먼저 생각해라.”고 따끔한 충고를 한 뒤,

주행 중에는 일절 키보드를 건드리지 않는다.

또 안전을 위해 아예 대화방이 나오는 모니터를 끄고 달린다.

▲ ‘아이유 택시’ 임이택씨

 

임씨는 ‘멘트를 날리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 조력자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초창기 애청자 중 2명이 자발적으로 그를 돕겠다고 나섰고,

이후 음악을 틀고 채팅방 관리 및 자료 검색 등을 도맡아 하고 있다.

 

 ● “가수 아이유와 듀엣으로 노래…로또 맞은 격”

 

 인터넷 방송 초기엔 방문객 수가 고작해야 1~2명이었지만,

꾸준한 방송 덕에 어느 정도 고정 시청자를 확보했다.

평상시 10~20명 정도가 들어와 단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던 임씨의 대화방에 최근 부쩍 방문객이 늘었다.

새로 온 이들이 하는 질문은 한결 같다.

 

“아이유 택시 맞아요?”

 

 최근 우연히 손님으로 탄 가수 아이유가

임씨 라이브 채팅의 ‘특별 초대 손님’이 됐기 때문이다.

임씨는 아이유에게 노래를 불러줄 것을 요청했고

아이유가 라이브로 ‘잔소리’를 열창하는 모습이 웹상에서 퍼져 화제가 됐다.

실시간으로 방송을 본 사람들은 20~30명에 불과했지만, 2주일만에 30만명이 ‘아이유 택시 동영상’을 감상했다.

 

 “진짜 로또 맞은 거죠.

평상시에도 가끔 ‘연예인이 타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은 했는데…

그렇게 진짜 탈 줄은 몰랐어요.

 

먼저 옆에 앉은 남성분이 방송 출연을 거절해서

‘그럼 노래라도 불러달라.’고 했는데

여성분이 ‘제가 할까요?’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알고보니 진짜 가수.

와! 노래 틀고 같이 부르던데 어찌나 떨리던지 막 얼굴이 화끈거리고 음정도 다 틀렸어요.”

 

▲ ‘아이유택시’ 임이택씨

 

임씨는 “오히려 아이유가 제 덕을 본 거죠.

그때 저랑 잘해서(천성이 착해서 였겠지만) 검색어 순위 1위에도 올라가고….

그런데 연락 한 번 없고…밥이라도 한 번 사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유 택시’가 화제가 된 뒤

임씨가 열어 놓은 대화방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너도 나도 대화방에 들어와

“그 택시가 맞냐.”고 물을 땐 ‘아이유 택시’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일이 벌어진 후 임씨는 어떤 무명 가수로부터 “나도 한번만 태워달라.”는 전화도 받은 적이 있다.

 

 ● “장비 구입에만 200만원…경제적으론 손해”

 

 이외 방송국에서 두어번 섭외 연락이 온 것 말고는 다른 이득을 얻은 건 없다고 한다.

임씨의 택시를 호출하는 이가 더러 있었지만, 장난전화인 경우가 많아 오히려 돈벌이에 방해가 됐다.

 

 한편 원치 않는 유명세도 치렀다.

‘아이유와 짜고 친 고스톱’이라며 기획사로부터 돈을 받고 계획한 일이라는 흠집을 잡는 사람들도 많았다.

또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무작정 욕을 해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택시 전반에 대한 불만을 그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방송을 위해 장비를 구입하는 비용으로만 200만원을 썼다.

컴퓨터 설치를 위해 내부를 파헤친 날에는 영업을 하지 못했다.

여러모로 손해다.

그런데도 임씨가 꿋꿋이 방송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택시에 대한 승객들의 인식을 바꾸고

비효율적인 택시 정책을 바꾸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이어 “사랑방이라고 불리던 택시 문화가

어느 순간 부정적인 소식들이 많이 전해진 뒤부터 안 좋게 변했다.

손님과 기사간에 대화가 단절되고 서로 불신하게 됐다.

이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 방송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