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풀

ㆍ내년, 비유럽권·시에 ‘기대’

강개토 2010. 10. 11. 22:36


“내 이름이 거론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루 출신의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지난 7일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밝힌 수상 소감이다.
실제 그는 지난 20여년 동안 10월만 되면 유력한 수상 후보로 오르내렸다.

 

 

지난 4월 <만인보> 완간 기자회견에서의 고은 시인.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의 수상소감은 고은 시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8년째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해는 특히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결국 고배를 마셨다.
국민들과 고 시인은 내년 가을을 또 기약하게 됐다.
 
고 시인은 노벨문학상 발표 후 한 측근에게
“한국에서 시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언젠가는 보여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후보군은 작가 김동리와 황순원, 영어로 소설을 쓴 재미작가 김은국 등이다.
80년대가 되면서 서정주, 박경리 등이 거론됐으나 스톡홀름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한 채 모두 세상을 떠났다.

2000년대 에는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더욱 체계적인 노력이 시작됐다.
한국문학번역원을 중심으로 작품을 번역하고 해외에서 작가를 소개하는 행사가 열렸다.
스웨덴 측에서도 한국 문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2000년 무렵 서정주, 고은, 이문열, 황석영, 최인훈 등 5명에 대한 상세 정보를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 시인은 한국 문학의 노벨문학상 도전사에서 가장 목표에 가까이 접근한 인물이다.
 고 시인이 수상 후보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다.
2005년과 올해는 수상이 유력하게 점쳐졌다.
 
올해의 경우 발표 당일 AP통신,
스웨덴 공영 SVT 방송에서 유력 후보로 지목하면서 수상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고 시인의 수상 시 대통령과 장관의 축하메시지 전달,
축하행사 마련,
수상자 작품의 번역지원 확대 등 조치 사항까지 점검했다.
 
문화부의 역대 노벨상 수상 여건과 수상자 분석에 따르면 수상 시점 전 스웨덴어 번역 출판이 필수적이다.
최근 10년간 수상작가의 경우 평균 6.6권이 스웨덴 현지에서 번역, 출간됐다.

노벨문학상이 전세계 문학을 대상으로 하지만
해당 작가가 스웨덴에 소개되지 않았을 경우
한림원이 상당한 부담을 갖는다는 것이다.
 
바르가스 요사를 포함,
역대 수상자 107명 가운데 아시아권 수상국가는
인도·이스라엘·일본(2회)·중국·터키 등 5개국에 불과할 만큼 서구 편중의 선정도 고쳐지지 않았다.

현재 고 시인은 해외 지명도에서 가장 앞서 있다.
그의 작품은
16개 언어권에 58종이 번역, 출판돼 있으며
이 중 스웨덴어 번역은 <고은시선> <만인보> 등 4종이다.

올해의 경우 96년 이후 수상자 가운데 시인이 없었고,
최근 6년간 수상자가 모두 유럽 출신이란 점에서 고 시인의 수상이 유력시됐다.
바르가스 요사는 남미 출신이지만 사실상 유럽 중심으로 활동해 왔고
소설가란 점에서 고 시인의 ‘패’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상황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김주연 한국문학번역원장은
“노벨문학상 수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원작의 우수성과 서구에도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보편성이 중요하다”
“한국 문학 번역을 주요 언어로 집중
다양한 우수 작가들을 소개해 중장기적으로 체질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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