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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손님 음악수다 - 뮤직 BAR 단골손님들이 전하는 음악 이야기

강개토 2010. 10. 16. 14:39

보이고 느껴지며 들리어도 만져질 수 없는...
이 앨범을 만들기 전까지 김태원은 '폐인'에 가까웠다.
아끼던 보컬 이승철은 솔로로 독립했고, 자신은 약물 후유증에 빠져있었다.
금단현상을 이기기 위해 본인의 표현대로 "아이스크림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사발로 마시던" 시절이었다.
부활을 잠정적으로 해체하고, 게임(Game)이라는 새로운 밴드를 만들기도 했지만 시장에서 철저하게 실패했다.
그렇게 잉여의 삶을 살고 있을 때 그의 앞에 김재기가 나타났다.

 

 

 

 

 

 

김재기.

'비운의 보컬리스트'라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탁월한 노래꾼.

하늘은 그에게 천부적인 재능을 줬지만, 그 재능을 제대로 사용할 기회는 주지 않았다.

작은하늘의 두 번째 앨범을 통해 공식적으로 모습을 보인 그는 김태원과 함께 부활의 재건을 꿈꿨다.

김재기의 목소리에 흠뻑 취한 김태원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김재기의 목소리에 맞는 노래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둘의 꿈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1993년 8월 11일, 녹음 도중 김재기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앨범명
3집 기억상실
발매일
1993 
아티스트명
부활 
타이틀곡 :  
사랑할수록  
앨범설명 :
ELECTRIC AND ACOUSTIC GUITAR / 김태원 VOCAL / 김재기 ADDITIONAL MUSICIANS
BASS / 정준교 (기억상실, 그리움 그리운 그림) 남정호 (사랑할수록, 소나기, 흑백영화, 흐..

 

그래서 이 앨범은 미완성이다.
김재기의 목소리가 들어간 노래는 3곡뿐이다.
하지만, 그래서 이 앨범은 더 절절하다.
 
김태원은 앨범의 나머지 부분을 김재기에 대한 추모로 채웠다.
앨범의 전체적인 정서는 그리움과 아련함이다.
2집 [Remember]를 통해 스케일이 큰 음악을 추구했던 김태원은
이 앨범을 통해 '감성적 록'이라는 부활의 노선과 색깔을 새롭게 제시했다.
 
그저 '결이 곱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김재기의 목소리는 김태원의 음악 안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런 미성의 보컬은 김태원이 평생을 찾아다닌 목소리였다.
겨우 세 개의 노래만으로 이런 존재감을 드러낸 가수는 없었다.
김태원의 기타 역시 전과 같은 속주나 기교 중심의 연주 대신
철저히 김재기의 목소리에 맞춰 선을 그려간다.
'소나기'와 '사랑할수록'에서 들려주는 김태원의 기타 솔로는 따로 떼어 음미해볼 만하다.
거기에 부분부분 김재기의 목소리와 더해지는 김태원의 코러스 역시 훌륭하다.
 
'사랑할수록'으로 완벽한 재기(부활!)를 이룬 부활은
김재기의 동생인 김재희와 함께 네 번째 앨범 [잡념에 관하여]를 발표한다.
그 앨범 안에는
"보이고 느껴지며 들리어도 만져질 수 없는 그리운 이에게 우리의 네 번째 앨범을 바친다"
는 글귀가 써있다.
[기억상실]은 바로 그런 앨범이다.
보이고 느껴지며 들리어도 만져질 수는 없는 아련한 그리움 같은 앨범.
 
[글: 김학선 웹진‘보다’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