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 제이를 가볍지 않은 신예 정도로 느슨하게 생각했다가, 앨범을 듣고 나서는 아예 시야가 달라졌다.
힙합 프로듀서의 손을 넘치지 않은 선에서만 빌려와 진지하게 자기세계를 구축한 앨범에 가까웠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닮은꼴을 찾기 시작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조금 더 쿨하고 도도한 제니퍼 허드슨을 만난 것 같았다.
그러다가도 자넬 모네가 지난해 발표한 대작 앨범 [The ArchAndroid]의 축소판을 듣는 것 같았다.
영화 [드림 걸스]에서 선보인 육체적 가창이 말해주는 대로
제니퍼 허드슨이 비교적 정통에 가까운 소울과 알앤비를 추구하고 있다면,
제시 제이는 기존의 근본 장르를 적당히 유지하고 때때로 비틀어 표현하고 있었다.
그런 변주의 총화는 지난해 자넬 모네가 시도했던 대형 이벤트와 비슷했는데,
제시 제시의 데뷔앨범 [Who You Are]는 그보다는 스케일이 작았다.
좌우간 팝스타와 아티스트의 자질 모두를 가진 물건이 등장했다는 얘기다.
- 앨범명
- 1집 Who You Are
- 아티스트명
- Jessie J
- 타이틀곡 :
- Abracadabra
- 앨범설명 :
- 2011 올해의 발견 Jessie J (제시 제이) / Who You Are
- 첫 싱글
국내 디지털 차트 1위! - 2주 연속 UK 싱글 차트 1위!
- 2011 BBC 올해의 노래 선정! 2011 브릿 어워드..
‘Nothing on You’로 지난해를 해치운 B.o.B.가
래퍼로 참여한 ‘Price Tag’은 우리의 헐렁한 지갑을 위로하는 노래다.
돈이 무슨 상관이냐고,
재물이 무슨 대수냐고,
오늘만큼은 ‘가격표’를 잊고
순수하게 즐기며 행복을 찾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진부하거나 피상적인 낙관론에 머물지 않도록 이끄는 세련된 장치는
가벼운 연출을 경계하는 듬직한 사운드, 그리고 여느 소울 가수 못지않은 그녀의 탁월한 성량이다.
‘Price Tag’과
또 다른 대표곡 ‘Do It Like A Dude’와
‘Nobody's Perfect’ 등
수록곡의 대부분은 차트가 끌어안을 만하면서도,
그러나 지나치게 차트에 목매지는 않는 성향을 동시에 드러낸다.
클럽에서 통하고
거리의 스피커가 무던히 받아들일 리듬의 음악,
라이브 무대에서 선보일 성량의 폭발이 기대되는 보컬의 음악,
그리고 보편 이상으로 창의를 고민했을 것이고
일관성 이상으로 다양성을 고민했을 것이며
그리하여 차트는 물론 매체가 환영할 법한 무게의 음악이다. 성과가 말해준다.
‘Do It Like A Dude’는 UK 차트 2위,
‘Price Tag’는 1위를 기록했고,
그녀는 2011 브릿 어워즈를 통해 비평가 선정 아티스트로 호명됐다(이른바 ‘Critics’ Choice’).
영국에서 왔다.
본명 제시카 엘렌 코니시(Jessica Ellen Cornish),
런던 레드브리지에서 나고 자란 1988년생으로, 듣자 하니 영 재미없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위로 언니가 둘인데
두 언니 모두 학교를 대표하는 학생, 이른바 헤드 걸(head girl)이었고,
관심이 있든 없든 그녀를 알고 스쳐가는 모든 주변인들이
두 언니와 같은 지성과 품위와 모범을 기대했다고 회고한다.
그런 반응에 스트레스를 느낄 만큼
제시카는 공부에 매진하는 바른 학생의 일과에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간섭없이 옷과 악세서리를 고르고,
노래를 부르고 만들면서 언니들과는 다른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즐거웠다.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는 노래는 어린 소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학교의 성가대는 열한 살의 제시카에게 자진탈퇴를 정중하게 의뢰했다.
혼자만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너무 튄다고,
그래서 성가대 입단한 또래 친구들이 열등감을 느껴
방과 후 수업 활동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는 학부모들의 요청 때문이다.
성가대를 견디지 못한,
아니 성가대가 견디지 못한 에너지의 목소리는
무려 열한 살의 제시카를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극단으로,
이어서 영국의 대중음악 전문학교 브릿스쿨로 안내했다
(아델이 그녀의 동창이라 한다).
그런데 심장박동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아갔다가 무려 열한 살에 뇌졸중 판정을 받는다.
무사히 데뷔한 걸 보면 어느 정도 관리가 따른다면 크게 위험하지 않은 수위인 것 같은데,
좌우간 열한 살 시절부터 표현하는 자유 이상으로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엄중한 현실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병원을 출입하면서 신의 존재를 의심하기도 했다.
병실을 같이 쓰던 소년이 위독한 상태에 이르자
밤새도록 친구를 지켜 달라 신에게 기도했는데,
그날 밤 신은 무정하게 소년을 데려갔기 때문이다.
데뷔앨범 [Who You Are]에
라이브 버전으로 실린 ‘Big White Room’은 그 시절에 썼다.
간소한 편곡과 진한 육성으로, 절박했고 절망스러웠던 어떤 순간을 복원하는 살 떨리는 노래다.
‘Price Tag’의 정반대편에서,
소름 돋게 노래하는 ‘Big White Room’은 제시 제이의 어쿠스틱 성향을 대변한다.
한편
‘Casualty Of Love’는
알앤비 또한 소홀하지 않게 연마했음을 이야기한다.
마지막까지도 장난이 아니다.
‘Mamma Knows Best’ ‘L.O.V.E.’ ‘Stand Up’ 등의
후반부 수록곡은 아레사 프랭클린(의 가창)과 우피 골드버그(의 유머)를 동시에 소환한다.
풍성하고 요란하게 쏟아지는 가스펠 세례이자 보통 신예가 아님을 증명하는 노래들이다.
흑인음악의 전 분야를 망라하는
이토록 출중한 실력에 넘치는 의욕을 가진 이에게,
앨범데뷔의 운은 참 늦게 찾아왔다.
계약했던 회사가 파산했기 때문에 늦었고,
공백이 생긴 동안 작곡가의 자질을 테스트하느라 늦었다.
크리스 브라운의 앨범에 참여했고 마일리 사이러스의 ‘Party In The U.S.A.’를 공동작곡 했다.
결국 성공적으로 데뷔했지만, 데뷔가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어디 가서 굶지 않을 재원이었던 것이다
[글: 이민희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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