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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날두의 4골 보다 빛났던 디 마리아의 패스

강개토 2010. 10. 24. 15:38


[스포탈코리아] 한준 기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홀로 4골을 몰아치며 또 한번 베르나베우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라싱 산탄데르에 거둔 6-1 대승의 일등공신은 앙헬 디 마리아(22, 아르헨티나)였다.

 

↑ ⓒBPI/스포탈코리아

 
레알 마드리드 공격진에서 디 마리아는 가장 주목도가 떨어지는 선수였다.
메주트 외칠의 창조성은 카카에 대한 그리움을 잊게 하며 베르나베우의 신임을 얻고 있다.
지난 시즌 최다 득점자인 원톱 곤살로 이과인은 많은 기회를 놓칠 때나,
득점포가 가동되기 시작하고 있는 지금이나 주목의 대상이다.
호날두는 이미 설명할 필요가 없는 베르나베우 최고의 스타다.

끊임없이 입지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카림 벤제마. 스페인 청소년 대표팀의 에이스인 '어린왕자' 세르히오 카날레스.
무리뉴 감독과 한 차례 진통을 앓았던 페드로 레온까지.
이슈 메이커라는 점에서 디 마리아는 가장 쳐지는 편이다.
하지만 이제 디 마리아를 주목해야 할 때가 왔다.

무리뉴의 팀이 최근 거둔 위대한 승리 행진의 결정판이 된 23일 밤(현지시간)
라싱 산탄데르전 대승의 주역은 누가 뭐래도 디 마리아다.
디 마리아는 팀이 6골을 넣는 동안
오늘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하트 골 세레머니를 한 번도 선보일 수 없었지만
팀이 6골을 기록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선수였다.

이날 레알 마드리드 공격진의 구성은 전과 다름 없었다.
4-2-3-1 포메이션에서 이과인은 최전선으로 올라갔고,
호날두는 왼쪽 측면을 기점으로 상대 진영 깊숙한 곳을 파고들었다.
외칠은 2선의 중심에서 공격을 이끌었다.
왼발 잡이인 디 마리아는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 배치됐다.

우측에서 다소 처진 위치에 자리한 디 마리아는
평소에 비해 직접 돌파를 시도하거나 슈팅을 시도하기 보다 패스를 뿌리는 것에 집중했다.
우측에서 디 마리아가 왼발로 전개한 패스는 라싱 수비진을 흔들었다.
시즌 초반 각기 다른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에 급급하며
엉성한 모습을 보였던 레알 마드리드 공격진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그 중에서도 디 마리아의 변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우리 모두 유기적으로 뭉치고 있다. 조금씩 우리는 팀으로 성장하고 있다.
아직 우린 서로를 알아가고 있는 과정이지만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
중대한 임무를 해내기 위한 기본은 단합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 같은 방향으로 정렬해야 한다."

골 잔치의 뒤에 디 마리아가 있었다

디 마리아의 패스는 전반 10분 만에 선제골을 만들어 냈다.
중원 우측에서 전방 좌측으로 보낸 디 마리아의 긴 로빙 스루패스는 라싱 수비진의 배후를 공략했고,
이과인이 이어받아 깔끔한 마무리 슛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5분 뒤 득점자인
이과인이 호날두의 골을 어시스트했을 때까지만 해도
지난 시즌부터 골 잔치를 합작해온 둘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하지만, 전반 27분 외칠의 패스에 이은 호날두의 세 번째 골이 터졌을 때
사람들은 호날두와 외칠의 포옹 보다 디 마리아와 주제 무리뉴 감독의 포옹에 더 감명 받았다.
외칠이 호날두에게 볼은 건네기 이전에 라싱 수비진을 무너트린 스루 패스
또다시 우측면의 디 마리아에게서 이어졌다.
선수들이 호날두와 외칠의 주위에 몰려 골을 축하할 때
무리뉴 감독은 만족스런 웃음을 머금고 벤치에서 뛰쳐나와 디 마리아를 격려했다.

디 마리아는 곧바로 전반 33분에도
페널티 박스 우측에서 반대편의 이과인에게 매끈한 패스를 뽑아주며 득점 상황을 만들어 줬다.
골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이와 같이 감각적인 패스 연결은 수 차례 이어졌다.
라보나킥을 통한 패스와 절묘한 발 뒤꿈치 패스 등
이날 디 마리아는
그 동안 자신의 장기로 알려진 탄력적인 중거리슈팅과 드리블 돌파 대신 볼 배급에 집중했다.
개인 보다 팀에 집중한 것이다.

디 마리아의 활약은 후반전에도 계속됐다.
후반전 시작 2분 만에 페널티 박스 우측을 무너트린 뒤
수 많은 라싱 수비수들이 진을 치고 있던 문전에서
호날두에게 정확히 패스를 연결해 자신의 두 번째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어 후반 10분에는 직접 페널티 박스를 파고들다가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이를 호날두가 성공시키면서 점수 차는 5-0이 됐다.
페널티킥 유도를 어시스트로 인정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였다면 디 마리아는 도움 해트트릭을 달성한 것이다.

레프트백 자원이 부족한 레알 마드리드는
주중에 있을 코파 델레이 경기를 위해 마르셀루를 쉬게 한 뒤 디 마리아를 레프트백으로 기용했다.
디 마리아는 프로 데뷔 이후 처음 맡아보는 포지션을 무난하게 소화했다.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경기가 끝날 때쯤 만족감을 느꼈고, 잘 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리뉴가 세공할 원석, 디 마리아

후반 43분경 이미 세 장의 교체 카드를 모두 사용한 가운데
디 마리아가 상대의 거친 파울로 경미한 부상을 입자 무리뉴 감독은 지체 없이 그를 벤치로 불러들였다.
이미 승패가 갈린 상황에서 10명으로 뛰게 되더라도 디 마리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무리뉴는 벤치로 들어오는 디 마리아를 나서서 맞이했고, 관중들의 박수를 유도했다.
디 마리아가 이날 베르나베우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직접 보여준 것이다.

경기가 끝난 뒤 스페인 언론의 헤드라인을 도배한 것은 호날두다.
하지만 '마르카'는 이날의 최고 선수로 디 마리아를 꼽았다.
디 마리아 본인도 경기가 끝난 뒤 믹스트존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입단 이후 가장 큰 만족감을 표했다.
담담하면서도 자신감이 충만했다.

"팀의 승리와 우리의 경기력에 아주 행복하다.
우린 아주 좋은 경기를 해냈다.
개인적으로는 팀에 뛸 수 있는 자격을 증명한 훌륭한 경기를 해냈다고 생각한다.
난 매 경기 모든 것을 쏟아낸다. 팬들이 이제 나의 노력을 알아차렸으리라 생각한다."

축구의 꽃은 골이다.
하지만 골은 오직 득점자 만의 영광이 아니다.
디 마리아는 자신이 갈락티코 군단에서 결코 다른 별들에 뒤지지 않는 빛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디 마리아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많은 재능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
디 마리아라는 원석이 무리뉴 감독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은 그의 앞날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BPI/스포탈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