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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혜 "화장 안하니 외모논란 없어지더라"(인터뷰)

강개토 2008. 2. 25. 00:00
박은혜 "화장 안하니 외모논란 없어지더라"(인터뷰)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김태은 기자]
ⓒ송희진 기자
박은혜(30)는 다소곳하리라는 선입견과 달리 무척 연기 욕심이 많고, 적극적인 배우였다. 독서를 즐기는 그는 자신에 대한 객관적 시선도 분명했고 연기관도 뚜렷했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 '밤과 낮'으로 제58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참석하고 온 뒤 효의왕후로 출연 중인 MBC 사극 '이산'을 이어가고 있는 박은혜를 만났다. 30시간 이상 잠을 자지 못하고 강행군중이라는 데도 다행히 생기가 넘쳐 보였다.

국내외 통틀어 첫 영화제 참석이었다는데. '밤과 낮'에서 박은혜는 대마초를 피우고 파리로 도피한 화가 성남(
김영호 분)이 현지에서 만나는 미술학도 유정 역을 맡았다. '욕망의 모호한 대상'처럼 알 수 없는 여자다. 성남을 유혹하는 팜므파탈 같기도 하고, 유부남인 그에게 놀아난 피해자같기도 하다.

쉴 새 없이 자신의 의견을 쏟아놓는 모습에서 그 만큼 연기에 대한 갈증에 시달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청순함의 대명사였던
홍콩 배우 왕조현을 닮은 외모로 주목받은 그는 그 이미지에 갇혀야 했던 갑갑함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밤과 낮'의 유정 역을 통해 그 조갈이 어느 정도 해소됐음에 만족한 표정을 보였다.

"홍상수 감독님께서 '오! 수정', '남자는 여자의 미래다', '해변의 여인' 때 각각 보자고 하셨는데, 또 부르시길래 '쓰지도 않으시면서 왜 또 부르실까' 하며 갔어요. '전에는 하려던 역할이 편집돼서 없어졌다. 이번에는 주인공이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그 앞에서 웅변을 토했어요. '제가 이 영화의 흥행이 도움이 되지도 않고, 연기력도 만족할 만하지 못해 득이 되지는 못할 테지만 이제 데뷔 10년이고, 연예인이 아니라 연기자가 되고 싶다. 출연하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솔직하게 얘기했죠. 그 자리에 있던 프로듀서, 조감독 등 연출부와 함께 저를 캐스팅하자고 결정하셨대요."

ⓒ송희진 기자

그의 열정이 통했던 것이다. 이러한 연기력에 대한 갈구는 데뷔 초부터 있었다고 했다. 예쁜 얼굴이라 정형화된 이미지에 갇히게 됐고, 배역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박은혜는 거기서 오히려 '연기자'가 돼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제가 예쁜 배우쪽에 속하니까 튀어서 조연은 시킬 수 없는데, 주연을 하기에는 연기의 폭이 적다고 하시더라구요. 연기력을 키워야겠다 싶었고, 곧 그런 깨달음이 오더라구요. 청순한 이미지는 20대 중반이면 끝날테고, 더 어리고 예쁜 친구들이 계속 나올텐데 정말 '연기자'가 돼야겠다구요. 정말 작품성있는 영화에 출연할 필요가 다급했는데, '밤과 낮'이라는 기회가 왔어요."
그 기회가 쉽게 온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초 출연했던 SBS 드라마 '
사랑하는 사람아'에서는 지금까지 맡아왔던 역보다 비중이 작은 역도 맡아야 했다. 그러나 그것도 배우로서 '깨달음'이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선택이었다.

"한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사람은 자기 몫보다 작은 일을 해야할 때가 있는데, 그 때의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구요. 그래서 이 작품부터 바꿔보자, 어떻게 늙어가느냐를 생각해보자 싶었죠. 영화 '사생결단'에서
김희라 선생님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장면을 봤는데, 얼굴에서 그 인생이 느껴지더라구요. 그런 연기자가 되고 싶었죠. 생각해보니 인정받는 선배 연기자들은 인내를 지니고 계시더라구요. 오래 가는 것이 이기는 거라고 생각했고, 진정한 연기자가 되보자고 결심했죠."
ⓒ송희진 기자

외모로 먼저 시선을 끌었던 젊은 미모의 여배우가 어떻게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그리고 바로 '밤과 낮'이라는 기회를 잡았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 스태프에게 빌려입은 옷을 걸치고는 연기에만 열중했다. 그냥 자신을 버리고 '유정'이 됐다.

"영화 '어느날 갑자기 첫번째 이야기-2월29일'에 출연할 때 화장을 안하니까 '예쁘다 안예쁘다' 논란이 없어지더라구요. 연기에 대해서만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알았죠. 내가 예쁘게 보이려한다고 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그걸 초월했을 때 관객도 그를 넘어선다는 것을요."
노출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홍 감독의 영화는 지금까지 수위 높은 노출과 베드신으로 화제를 모아왔기에 벗는 연기에 대한 부담은 없었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박은혜의 신념은 확실했다. '내가 못하는 것까지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벗고, 안벗고로 연기에 대한 열정을 가늠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사람마다 다른 거죠. 이미 저는 나이도 들고 살도 찐걸요. 제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해서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는 않아요. 감독님께도 '벗는 것만 아니면 할께요'라고 했어요. 감독님이 노출이 없다고 하셨는데도 안믿겨져서 촬영을 하면서도 수백번을 물어봤어요. 감독님이 나중에는 지치셔서 '절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못을 박으시더라구요."
ⓒ송희진 기자

박은혜는 홍 감독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현지에서는 '동양의 바비인형'이라는 찬사도 들었고, 그의 사진을 프린트해와 사인을 받아가는 독일인들도 있었다.

"베를린 국제영화제 같은 곳에 가는 건 평생 연기해도 있을까 말까 한 기회잖아요. 꼭 연기를 잘했다고 가는 것도 아니고, 감독님 덕분에 갈 수 있었던 거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프랑스에서 영화를 전공하는 유학생을 만났는데 현지 교과목에 일본영화는 있는데 한국영화는 없다며, 곧 한국영화 과목이 생기면 홍 감독님 페이지가 생길테고 그러면 제 사진이나 이름도 등장할 수 있다고 하는데 큰 영광으로 느껴지더라구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연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악역이다, 아니다, 이런 틀을 벗어나는, 사람 냄새나는 역을 해보고 싶어요. 발랄하고 푼수 같은 역도 좋구요. '작은아씨들'에 함께 출연했던 김해숙 선생님이 '너를 완전히 깨버리고 너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역할을 해보면 새로운 시야가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를 위해서는 정말 정신병자나 미친 사람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