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찹니다. 마른 낙엽이 ‘사그락 사그락’ 굴러갑니다. 머그잔의 온기가 손을 타고 전해옵니다.
코끝을 간질이는 고소한 향, 혀에 감기는 알싸한 기운,
입안 가득 퍼지는 묵직한 질감. 움츠러든 어깨가 스르르 풀립니다. 커피의 계절입니다.
커피도 유행을 탑니다. 옛날엔 커피 믹스 ‘다방커피’ 한 가지였지요.
중저가 원두에 인공 향을 가미한 헤이즐넛이 엉뚱하게 고급커피 대접을 받던 시절도 있었고요.
그 뒤로 ‘별다방(스타벅스)’
‘콩다방(커피 빈)’의 에스프레소(기계를 이용해 고압의 물로 빠르게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가 천하를 통일했지요.
그런데, 요즘 커피동네가 술렁입니다. 조용히 영토를 넓히고 있는 ‘핸드 드립’ 커피 때문이지요.
핸드 드립은 직접 볶은 원두에 손으로 물을 부어 천천히 커피를 내리는 방식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원두를,
어떻게 볶느냐에 따라,
또 어떤 물을, 어떤 온도로,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지요.
‘손맛’ 커피인 셈입니다.
옛날엔 소수의 매니어만 즐겼지만 요즘엔 조금만 발품 팔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답니다.
서울·지방 할 것 없이 핸드 드립 커피하우스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거든요.
이번 주엔 week&과 커피 볶는 냄새를 따라가 보시죠. 첫 목적지는 강릉입니다. 대관령 너머의 조용한 이 도시가 커피 명소로 뜨고 있거든요.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커피 도사’ 셋이 우연찮게 강릉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우리나라 커피 1세대, 일본식 핸드 드립의 ‘최고수’가 이곳에서 커피를 뽑고 있습니다.
“커피는 음식”이라며 1993년부터 ‘내 맘대로’ 커피를 만들어 온 ‘히피’ 아저씨도 있고요.
서울의 일급 호텔, 레스토랑에 원두를 공급하는 프리미엄 커피 브랜드 공장도 여기에 있지요.
세 곳의 ‘주인장’을 만나 그들의 커피 사랑, 커피 철학을 들어봤습니다(W2면).
가을 커피여행, 출발하실까요. 차에서 들을 음악은
소프라노 바버라 보니가 부르는 바흐의
‘커피 칸타타’ BWV 211 아리아 ‘아, 커피 맛이 얼마나 달콤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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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좋아서 눌러앉았죠
“가장 맛있는 커피요? 가장 잘 볶은 커피죠.”
‘하수’의 우문에 ‘고수’의 현답이다. 말이 진하고 묵직하다. 꼭 자신이 만드는 커피 맛을 닮았다.
박이추씨가 말한다.
여운이 남는 커피를 만드는 게 프로의 임무라고. 그래서 그는 맛 없는 커피를 만나면 화가 난다
박이추(57)씨는 우리나라 커피 1세대로 꼽힌다.
커피라곤 ‘인스턴트 다방 커피’ 한 가지뿐이던 시절,
자가(自家) 로스팅 문화를 퍼뜨린 ‘3박(朴) 1서(徐)’ 중의 한 명이다.
특히 그는 원두를 강하게 볶아 진한 맛을 내는 일본식 커피의 대가다.
1988년 서울 대학로에 커피 하우스 ‘보헤미안’을 연 것을 시작으로 20년 내리 ‘커피 인생’을 살았다.
상호 탓이었을까? 정말 그는 보헤미안처럼 떠돌았다.
개업 4년 만에 안암동 고대 후문으로 가게를 옮겼고, 2000년엔 아예 서울을 떠나 강원도 오대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1년 뒤엔 경포대, 다시 그 3년 뒤엔 강릉 외곽의 현재 자리로 옮겨왔다.
가게는 명성에 비해 그리 화려하지 않다. 산골의 펜션 느낌이다.
커피는 도시인들의 기호품이건만 그는 도시를 버리고 사람을 피하고 화려함을 멀리한다.
이유가 뭘까?
“바다의 포용력이 좋아서”란다.
또 선문답이다.
어눌한 말투(박이추씨는 재일교포 출신이다)로 툭툭 던지는 몇 마디 말 속에 그의 다른 속내가 비쳤다.
“요즘 사람들은 남들 앞에 콩 볶는 걸 자랑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난 숨어 만드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하는데."
커피 그 자체가 아니라 커피 만드는 사람, 커피 만드는 ‘이벤트’가 주목 받는 분위기가 내키지 않는 눈치다.
“에스프레소가 낫다, 핸드 드립이 낫다, 말들 많지만
중요한 건 유행이 아니라 10년, 20년 뒤에도 마실 수 있는 커피를 만드는 거죠.
” 트렌드에도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커피엔 어떤 진실이 따로 있어요.
단순히 ‘맛있다, 없다’를 뛰어넘는 그 무엇. 커피 만드는 사람은 그걸 추구해야 해요.
설령 소비자의 기호와 안 맞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서 난 돈벌러 커피 하우스를 내겠다는 사람은 무조건 말려요.”
이쯤 되면 헷갈린다.
과연 이 사람, 커피를 파는 사람일까, 커피를 섬기는 사람일까?
차(茶)를 덖으며 불도를 닦는 고승처럼, 커피 속에서 인생을 찾는 사람.
그래서 박이추씨의 커피는 진지하다.
‘보헤미안’ 커피가 가장 맛있는 커피는 아닐지 몰라도, 가장 ‘깊이’ 있는 커피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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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 왔다가 '필'이 꽂혔어요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통이 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직화식 수동 커피 로스터.
‘열 받은’ 원두가 부풀어 오르며 ‘타다닥타다닥~’ 껍질을 터뜨린다.
구멍을 빠져 나온 껍질 가루가 불길에 닿아 ‘화르륵~’ 불꽃 춤을 춘다.
황홀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열심히 통을 돌리는 남자 모습이 범상찮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장발, 빨간색 깃털 장식을 단 검정색 신사모를 썼다.
이 사람, 판초만 안 걸쳤다 뿐이지 영락없이 안데스 산맥에서 날아온 인디오.
하지만 이병학(50)씨는 ‘의외로’ 서울 사람이다. 놀러 왔다가 강릉에 ‘필’이 꽂혀 주저않았을 뿐이다.
서울·의정부에서 하던 커피숍을 정리하고 지금 자리에 가게를 연 게 1993년.
그가 운영하는 ‘언덕 위의 바다’는 이 일대 최초의 ‘전국구’ 카페·펜션이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입지도 입지지만, 손재주 좋은 이씨가 직접 꾸민 인테리어가 예쁘다고 소문이 났다.
전국에서 예약이 밀려든다.
하지만 손님들도 잘 모르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이병학씨가 이 일대에서는 처음으로 원두 커피를 선보인 주인공이라는 것.
로스팅을 시작한 건 2년 전이지만, 카페 문을 열 때부터 글라인더를 갖춰 놓고 커피를 뽑았다.
원두는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것을 주로 썼다.
“처음엔 주로 찾아오는 사람이 이 근처 어부들이었어요.
‘언니’들 데리고 다방 커피 마시러 왔다가, 커피가 이게 뭐냐고 화를 내며 바닥에 쏟아 버리기 일쑤였지요.”
그에게 커피는 뭘까? 바로 “음식”이란 답이 돌아온다. 폼 잡는 건 사절.
맛있게 만들어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란다.
그래서 그는 전동 로스터 대신 수동식 ‘통돌이’로 하루 두 번씩 커피를 볶고,
흔한 ‘달팽이 기법’ (분쇄한 커피 위로 동심원을 그리며 물을 붓는 방식) 대신
투박하게 ‘뚝, 뚝’ 물을 떨어뜨려 커피를 내린다.
이병학씨의 인터넷 카페, 블로그 닉네임은 ‘히피 커피’ 다.
격식 없고 자유분방한 그에게 딱 맞는 이름이다. ‘언덕 위의 바다’ 커피 향엔
장작 난로 위에서 익어가는 고소한 고구마 냄새가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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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은 원두 95%를 서울서 가져가요
“규모가 크다고요? 이제 걸음마 단계예요. 외국 전문가들에게 보여주기 창피한 수준입니다.”
김용덕 사장은 내내 ‘부끄럽다’는 말을 반복했다.
‘테라로사’는 하루 평균 200~300㎏의 원두를 생산하는 커피 공장이다. 30㎏짜리 대형 로스터를 갖췄다.
생산량의 95% 이상을 서울에,
그것도 신라·코리아나 같은 특급호텔, 청담동 안나비니 같은 잘 나가는 레스토랑 등에 납품한다.
얼마 전부터는 편의점 ‘바이 더 웨이’에도 자체 브랜드 커피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자랑할 만한 프리미엄 커피 브랜드이건만 김 사장의 반응은 다소 의외였다.
“일본에는 30년 이상 한 나라 원두만 연구한 산지 전문가가 수두룩해요.
커피 매니어들이 스타벅스·커피 빈을 무시한다고요? 그건 정말 난센스예요.
잘 모르니까 그런 소리를 하죠.
원두의 신선도가 조금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들의 ‘시스템’만큼은 우리가 영원히 따라가지 못할 거예요.”
김 사장은 누구보다도 커피를 많이, 그리고 다양하게 마셔본 사람 중 하나다.
여행하며 커피를 마신 게 아니라, 커피를 맛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탔다.
한참 땐 한 해 2억원을 커피 마시는 데 썼단다.
그렇게 2년쯤 지나자 비로소 “혀가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늘의 ‘테라로사’는 그렇게 태어났다.
은행원 출신답게 김 사장은 실용적이고 신랄하다.
“커피 만드는 데는 공식이 없어요.
맛있는 커피가 최고죠. 맛없는 커피는 다 가짜예요.”
글=김한별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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