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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결혼 후 아들 낳은 타이거 JK·윤미래 커플의 속사정

강개토 2008. 8. 23. 07:07

레이디경향


가요계에 또 한 커플이 탄생했다. 바로 국내 힙합계를 이끄는 두 버팀목, 드렁큰 타이거

의 타이거 JK와 윤미래다.

지난해 6월 비밀 결혼을 치르고 올해 3월 아들까지 출산했다는 소식에 대중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타이거 JK의 아버지 서병후씨를 직접 만나 비밀 결혼의 내막과 며느리 윤미래와의 각별한 인연에 대해 들었다.



"늦어도 손자 돌 즈음 아들, 며느리 결혼식을 다시 올려줄 생각입니다"

지난 7월 중순 서울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달려 타이거 JK의 아버지 서병후씨가 몸담고 있는 경기도 광주시의 한 선원을 찾았다.

낮은 담장 너머로 조근조근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조용한 곳이었다.

처음 기자를 맞은 선원 관계자는 "그동안 많은 기자들이 찾아왔다"며 "회주님(서병후)은 출타 중이니 돌아가시라"고 했다.

서병후씨는 이미 홈페이지를 통해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대해서 정중히 거절하겠다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밝힌 바가 있다.



선원을 나와 10분쯤 흘렀을까.

다시 문이 열리고 선원 관계자가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하고 기자를 마당 안 대청으로 안내했다.

잠시 후 시원한 차 한 잔과 함께 서병후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라는 말로 기자에게 첫인사를 건넸다.



척수염 앓던 JK의 치유 판정, 결혼 발표의 계기


"한꺼번에 너무 많은 관심을 보여주셔서 본의 아니게 피할 수밖에 없었어요.

연예인으로 활동하는 사람 주변에 가족들이 자꾸 나오면 보기 안 좋더라구요.

발표는 내가 했으니 나머지는 아이들과 매니지먼트사 쪽에 맡기기로 한 거예요."



타이거 JK(본명 서정권·34)와 윤미래(27)의 결혼 사실을 맨 처음 알린 이가 바로 서병후씨다.

그는 7월 초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샤카무니 선원' 홈페이지에

척수염으로 고생하던 아들이 치유 판정을 받은 것을 기뻐하며 결혼과 출산 소식도 함께 알렸다.

결혼이 죄도 아니고 자랑스러운 일인 데다, 사랑스러운 아이까지 태어났으니 더 이상 감출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JK가 몸이 너무 아팠어요. 한국에 와서 힙합을 하면서 이런저런 고생도 많았는데 몸까지 아프니 옆에서 지켜보기 안타까울 지경이었죠.

그러다가 몸이 나았다는데 그것처럼 좋은 소식이 어디 있겠어요?

투병하며 거동이 불편한 아이한테 지팡이를 만들어줬는데, 이제는 필요 없다고 돌려주더라구요.

척수염은 완치될 수는 없지만 상태가 아주 좋아졌다는 거, 잘하면 완쾌도 가능하다고 하니 이보다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어요.

게다가 결혼도 좋은 소식이잖아요. 제가 발표를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사랑스러운 손자가 태어났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였어요."



처음부터 당당히 밝히고 싶었지만

'몸도 아픈데 결혼을 하고 애도 낳았다'는 사실이 대중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다.

두 사람의 소속사 측에서도 발표를 만류했다.

자칫 앨범 홍보 수단으로 전락해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발표 후 대중의 반응은 예상외로 무척 긍정적이었다.

그는 "내가 발표하리란 걸 구체적으로 알고 있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동의했던 아들 내외도 대중의 축하에 대해 아주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이 만나기 전, 윤미래 먼저 안 각별한 인연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그는 한 가지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며느리 윤미래와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아들보다 제가 미래를 먼저 만났어요.

10년 전쯤 지방 공연에 가다가 잠깐 들른 카페에서 타샤를 만나 대화를 나눴거든요.

그건 아무도 모를 거야. 시아버지가 먼저 본 걸. 그때는 내 며느리가 될지 몰랐죠(웃음)."



지금은 금강승불교에 귀의해 역경과 설법에 주력하고 있는 서병후씨는

1968년부터 1995년까지 주요 일간지와 주간지에서 연예부 기자로 활동한

베테랑 언론인이다. 미국 음악 잡지 「빌보드」의 한국 특파원을 지내며 국내 최초의 팝 칼럼니스트

로 활약한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 외모나 퍼포먼스가 아닌 가창력으로 정도를 걸었던 윤미래를 좋게 보던 중 우연히 만나 격려를 해줬다고 한다.

자신에 대해 물어보길래 "우리 아들도 힙합을 한다"고 대답해줬으니 이미 10년 전 윤미래에게 JK를 소개한 셈이다.

그 후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언제부터인가 윤미래가 JK와 함께 할머니를 자주 찾아오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의 교제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어머님이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시기 전부터 미래가 와서 어머님을 잘 돌봐드렸죠.

설법, 강의하느라 바쁜 저의 빈자리를 미래가 많이 채워줬어요.

나중에 들었는데 한번은 어머님이 미래에게 '늙으니까 찾아오는 자식도 없다'고 푸념을 하셨나 봐요.

그랬더니 미래가 '할머니, 제가 모실게요'라고 약속을 했대요. 그렇게 각별했어요."



JK와 윤미래가 서둘러 결혼식을 올린 이유도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두 사람이 맺어지는 모습을 꼭 보고 싶어 하셨기 때문이다.

당시 척수염으로 고생하던 JK는 성대하게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할머니를 비롯해 가까운 일가친척만 참여한 자리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비공개 결혼식을 올린 데에는 그러한 사정이 있었다.

시아버지가 보는 며느리 윤미래는 어떨까.

그는 "음악 하는 사람에게 가장 이상적인 파트너가 누구겠는가.

같이 음악 하는 사람 아니겠나. 배우자가 자기가 하는 일에 호흡이 맞는다는 건 매우 좋은 일이다.

두 사람은 매우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라며 흡족해했다.

서병후씨와 윤미래는 1950, 60년대 소울 음악을 함께 들으며 음악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눈다고 한다.

그는 윤미래를 '음악 후배로서, 며느리로서 손색이 없다'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정식 결혼식은 손자 돌 즈음에

이제 백일을 넘긴 손자 '조단(祚檀)'의 이름은 서병후씨가 지었다.

'조'는 행운이라는 뜻이고 '단'은 불교의 수행 비법

육바라밀

가운데서 제일 먼저 나오는 단바라밀의 이름에서 땄다.

'단'은 다른 사람에게 베푼다는 뜻으로 '조단'은 '남들에게 행운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언론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예쁜 손자를 자랑하고픈 마음에 홈페이지에 사진을 올렸다가 소속사의 만류로 다시 내린 해프닝도 있었다.

JK와 윤미래 중 누굴 더 닮았느냐는 물음에 '눈을 감고 있으면 JK, 눈을 뜨면 미래'라는 애정 어린 답이 돌아왔다.



JK의 건강 상태가 좀 더 안정궤도에 접어들고 출산 후

몸을 추스르고 있는 윤미래도 좀 더 활력을 찾으면 지인들을 모시고 결혼식을 올리고 싶은 계획이 있다.

'늦어도 조단이 돌 즈음엔 두 사람의 결혼식을 다시 올려주고 싶다'는 게 아버지의 바람이다.

 

 

서병후씨의 바람이 이루어진다면 내년 봄, 꽃이 필 때쯤 JK와 윤미래의 결혼식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이성훈, 경향신문 포토뱅크